숫자의 환상, 정체성의 위기
유학생 20만 명의 그림자 – 숫자의 환상, 정체성의 위기
한국 유학이 ‘인기 여행지’처럼 변해가고 있다. 10만 명을 넘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유학생 수는 이제 20만 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문제는 구조이고, 방향이며, 철학이다.
대학과 정부 모두 이 속도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지금 한국의 대학 어디를 가도 외국인 유학생을 만날 수 있다. 기숙사, 식당, 강의실, 캠퍼스의 어느 공간이든 그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날수록, 대학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전공 강의에 앉아 있는 학생들, 그들의 손에는 졸업장이 쥐어지지만, 학문적 성취는 남지 않는다. 대학은 국제화의 이름으로 유학생을 받지만, 그 실상은 교육이 아니라 행정의 부담이 되어버렸다.
정부 역시 ‘유학생 유치 확대’를 외교적 성과로 포장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체계도, 철학도, 관리 기준도 없다. ‘몇 명을 더 유치했는가’라는 숫자 경쟁만 있을 뿐,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가치로 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실종되었다. 이것이 바로 ‘20만 명의 그림자’다.
지방대학의 현실은 더욱 절박하다.
등록금 수입이 줄자, 외국인 학생은 새로운 수입원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절반의 등록금, 부족한 언어 지원, 형식적인 수업은 교육이 아니라 대학의 생존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유학생은 배우러 온 학생이 아니라, 대학 재정의 숨통을 틔워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 부작용은 강의실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특히 중국인 유학생이 대거 몰린 일부 대학의 경우, 캠퍼스 주변 상권이 중국식 식당과 상점으로 빠르게 재편되었다. 심지어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한국 학생이 “중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채용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것은 단순한 문화 교류의 현상이 아니라, 도시 공간이 ‘유학생 의존형 경제’로 변질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대학은 지역과 공존하는 교육기관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지역 경제가 대학의 본질을 압도하고 있다. 뉴욕의 차이나타운이나 런던의 소호처럼 자연발생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책적 무계획이 만든 인위적 풍경이다.
더 황당한 것은 정부의 태도다. 이미 대학 현장은 과부하 상태이고, 언어와 정체성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오히려 “2027년까지 30만 명의 유학생 유치”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도대체 이 정부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문제의 원인을 직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위에 숫자를 덧씌워 국가 전략을 마치 ‘유학생 수 늘리기 경기’처럼 만들어버렸다. 교육이 아니라 행정의 성과, 철학이 아니라 외교의 장식품이 되어버린 셈이다. 언어도, 문화도, 교육의 질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30만 명”이라는 숫자는 국가의 자랑이 아니라 정책적 무책임의 상징이다. 숫자를 세는 정부는 있어도, 학생을 가르치는 정부는 없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유학생의 졸업 후 취업과 정주를 장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현실은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유학생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어렵고,
전공 학문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졸업한다. 한국은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다. 언어 장벽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취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유학생의 국내 취업 확대”를 외친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한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는 프랑스어로, 독일은 독일어로, 미국은 영어로 외국 학생을 가르친다. 그것이 문화이고 학문의 주체성이다. 오직 한국의 대학만이 한국어를 ‘장벽’으로 보고, 영어 강좌를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언어를 버린 국제화는 자존을 포기한 선택이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사유와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이 한국어를 버리는 순간, 그 대학은 더 이상 ‘한국의 대학’이 아니다.
이제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유학생 정책은 ‘무한 개방’이 아니라 ‘유한 책임’의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언어 능력이 부족한 학생은 입학이 아니라 언어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학은 일정 수준의 한국어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입학을 허가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 역시 단기적인 유입 수치에 매달리지 말고, 유학생을 장기적 인적 자산으로 키우는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자율은 허용하되, 기준은 엄격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의 품질을 높이고, 한국 학문의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20만 명의 그림자’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이유는 빛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유학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학생이라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대학의 자존심이다. 언어를 잃은 대학은 정체성을 잃고, 정체성을 잃은 나라는 머지않아 자존을 잃는다. 교육이 무너지면, 문명은 그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