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누구한테 미안한가
나는 분노한다.
3,500억 달러라는 거액을 약탈당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 돈은 종이 위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땀과 노동, 그리고 다음 세대의 희망이 깎여나간 자리다.
나는 침묵에 분노한다.
분명 도둑맞았는데도 사람들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건 위로가 아니라 체념이다. 정의를 가장한 굴종의 언어다.
나는 자화자찬에 분노한다.
굴욕을 포장한 협상을 잘했다고 말하는 이들, 그들의 말속에는 진심이 없다.
진짜 협상이란 불리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품격을 지켜내려는 치열한 노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도둑맞고도 박수를 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센 놈 한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꼴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는 망각에 분노한다.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 왜 분노해야 하는지를 잊는 순간, 역사는 같은 수치를 또다시 되풀이할 것이다. 조지아에서 족쇄와 수갑을 차고 끌려가던 모욕을 그새 잊었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 분노를 기록한다. 분노는 증오가 아니라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기록이 다시는 같은 굴욕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저항이 되기를 바란다. 옆집보다 덜 털렸다고 좋아하며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들. 상대가 까다로운 협상가라고 칭찬을 하니 어깨를 으쓱하며 좋아하는 초딩 수준의 사람들.
나는 후손에게 미안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삶의 토대를 남기지 못했다. 물려주어야 할 것은 가능성과 희망이었지만, 남겨준 것은 빚과 부담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미처 풀지 못한 매듭을 대신 풀어야 한다. 우리가 서명한 잘못된 계약의 무게를 그들의 청춘과 노동으로 갚아야 한다. 그게 가장 슬프다. 한 세대가 실수하면, 다음 세대는 삶을 걸고 그것을 복구해야 한다. 그런 역사가 반복되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부끄러움을 기억하려 한다. 후손에게 짐이 아닌 길을 물려주기 위해, 오늘의 잘못을 기록하고, 내일의 교훈으로 남기려 한다. 우리에겐 오래된 속담이 하나가 있다.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밟히면 몸을 틀며 저항한다는 뜻이다. 그건 생명의 본능이자, 존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몸짓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밟히고도 꿈틀 하지 않았다. 주권을 짓밟히고도 침묵했고, 자존심을 빼앗기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치욕은 단순한 외교의 실패가 아니라,
존엄의 상실이다.
이 치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밟히는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다. 이번 협상의 결과를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닥칠 한미 방위비 협상의 결말도 이미 눈에 보인다. 트럼프는 한때 10배 인상을 요구한 적이 있다. 아마 이번에는 2배쯤 올려주고, “그래도 많이 깎았다”며 잘했다고 자화자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다시 그 말에 속고,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우리가 스스로의 자존을 되찾지 못한 채, 굴욕을 합리화하는 기술만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의 굴종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의 굴종은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면 체질이 되고, 체질이 되면 그것은 역사로 굳어진다.
나는 그게 두렵다.
밟히고도 꿈틀 하지 않던 그 장면이,
앞으로도 반복될까 봐.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우리의 후손이, 우리가 남긴 굴욕의 언어를 다시 배우게 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