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도남 Feb 29. 2024

차르신을 떠나보내며..

안녕 SM520 그동안 고마웠어

우리집에는 두 가지(?)의 어르신이 존재 한다. 하나는 지금 11살이된 우리집 강아지 "다이아" 인데 우리는 얘를 개르신이라고 부른다. 사람나이로 환산하면 약 70대 노년의 견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작년 상반기까지 우리 부부의 발이 되준 차르신 02년식 SM520 모델이다. 그리고 약 1주전, 나와 와이프는 8년여의 기간동안 정들었던 차르신을 떠나 보냈다. 


차르신은 잿모래 색의 똥차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외관을 지닌 친구였다. 털털한 성격의 장모님이 몰고 다니시던 차라서 외관상 관리는 거의 되어 있지 않으며, 차에 남아있는 몇몇 스크래치와 도색 벗겨짐을 볼때면 이 차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곤 했었다. 특히 차 뚜껑부분에 발생한 도색 벗겨짐은 마치 탈모가 온 할아버지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짠함은 배가 되곤 했다. 좀 더 애착을 가지고 타보고자 도색 비용을 알아본 후,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그냥 타자고 스스로 되내이며 포기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사진으로는 외관의 짠함이 다 표현되지 않지만, 외관만 놓고 보면 그냥 똥차 그 자체다.


장모님은 03년에 주행거리가 5000키로가 되지 않는 이 차를 요즘 말로는 "민트급" 상태로 중고 구매하셨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영업직으로 근무중이셨기에 이 차로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고 다녔다고 하셨다. 그러다 2016년쯤 직장을 그만두게 되셨고, 가끔 눈치보며 차를 쓰던 와이프가 장모님이 직장을 그만두신 이후로는 이 차의 주인 아닌 주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와이프와 연애중 이었던 나는 그 낙수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우리는 차 없이 연애 할때와는 달리 서울이 아닌 근교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이 기간 동안 여러 좋은 장소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 이 차는 법적으로는 장모님 차이지만 사실상 우리 부부의 차로 귀속되었다.


이 차는 요즘 나오는 차와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기능이 아날로그로 동작한다. 심지어 시동을 끄고 나서 백미러를 수동으로 접어야 할 정도이며, 전방/후방 센서도 탑재 되지 않은 흔치 않은 차다. 심지어 차의 앞 뒤 길이도 매우 길고 디자인이 클래식하다. 결혼 후에 주차 공간이 협소한 빌라와 구축 아파트에 살아왔기에 운전이 서툴렀던 나는 아예 이 차의 운전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와이프가 그걸 이해해준 덕에 나는 이 차를 전용 운전기사를 둔 높은 사람 마냥 누릴 수 있었다. 


와이프는 이 차의 주행감을 퍽 좋아했다. 외관은 똥차이지만, 주행감 만큼은 요즘 나오는 중형 세단 못지 않다고 종종 칭찬하곤 했었다. 나중에서야 삼성 자동차에서 최초로 출시한 SM52X 라인업은 이건희 회장님이 사활을 걸고 만든 명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조립하여 제작되었으며, 그 덕에 잔 고장이 없는 차로 명성이 자자한 제품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SM5 초기 모델을 자기 입맛대로 커스터마이징 하여,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2018년경에 약 200만원의 수리비를 들여서 차를 고쳐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큰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돈을 써서 차를 고쳤다. 왜냐면 200만원이 아니라 500만원의 돈으로도 이정도 퀄리티의 차를 절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차와 비슷한 주행감의 차를 새로 구매하길 원한다면 "렉서스" 브랜드 차를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좌절하기도 했다.


결혼 후에 우리부부는 정말 많이 싸웠다. 인생의 가치관이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답 없는 주제로 치열하게 다퉜고, 서로 너무나도 힘든 결혼 생활을 해왔다. 그래도 우리부부가 결혼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자전거 동호회 활동이었다.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되면, 종종 지방의 풍경 좋고 한적한 국도를 달리게 된다. 지방까지 자전거를 싣고 가야하므로 당연히 자차는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비록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울 외관을 가진 차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주행에는 전혀 문제 없었기에 우리 두명의 자전거를 뒷자석에 테트리스 하듯이 싣고, 지방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 경치 좋은 도로를 달릴때면, 주중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씻어내려가는 느낌이 들어서 퍽 좋았다. 우리는 그렇게 힘든 결혼생활을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통해 버텨냈고, 차르신이 그 부분에 있어 큰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2021년 아들이 태어 났고, 우리는 차르신에 카시트를 설치했다. 그 흔한 isofix 규격의 어댑터가 없었기에 우리 부부는 중고거래를 통해 안전벨트로 고정하는 예전 규격의 카시트를 구해서 설치 했고, 탈부착이 불편한 것 말고는 큰 문제없이 아들과 함께 여러 곳을 여행 했다. 연비가 정말 좋지 않은 차여서 도로에 기름을 뿌리고 다니다 시피했지만 우리는 아들이 어릴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매 주 여기 저기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2022년 겨울쯤 부터 다시 차에 하나 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 했다. 와이프가 아들과 문화센터 수업을 들은 후, 8차선 도로를 지나가는 도중 차가 갑자기 멈춰 버린채로 시동이 꺼졌다. 와이프는 그때 멘탈이 나가버렸고, 다행히 경찰관님이 잘 통제해주신 덕분에 사고 없이 견인처리 해서 카센터로 올 수 있었다. 그때 수십만원의 수리비를 지불하고, 발전기라는 부품을 교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작년 5월 즈음 에어컨 냉매 가스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서, 충전을 했으나 몇 주 지나지 않아 냉매 가스가 모두 새어 나가 버렸다. 우리는 모두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더 이상 차르신을 여름에 이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외에도 크고 작은 고장으로 차르신은 우리의 얇은 지갑을 끊임 없이 공격했다. 그리고 슬슬 우리는 차르신을 보내야 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근데 기가 막히게도, 차를 사야하나 고민하던 순간에 쓸 수 있는 차가 다시 생기게 되었다. 처남이 본인이 쓰던 19년식 국산 중형 세단을 장모님께 양도 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그 차를 우리가 쓰게 되었다. 지금 글을 쓰는 현 시점에 우리는 그 차를 사용중이다. 법적으로 두대의 차를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차량 2대분의 세금과 보험료를 납부하였고, 이 부분은 외벌이 가장인 나로써는 생각보다 꽤나 부담이 되는 부분이었다. 혹시나 장모님이 차르신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 차르신을 주차해 놓고, 1년을 기다려 봤지만 장모님은 이미 퇴직을 하신 이후라 생각보다 차를 사용하는 빈도가 거의 없으셨다. 그리고 올해 자동차세와 보험료를 갱신해야하는 시점에 도래해서 더이상 불필요한 비용 낭비를 여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차르신을 보내주기로 결심 하였다. 


폐차를 하기 위해 차르신의 트렁크와 실내에 모든 짐을 빼면서 나의 상상 이상으로 퍽 슬펐다. 이 차와 함께한 추억이 꽤나 길었기에 나도 모르게 애착관계가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짐을 다 뺀 후에 빈 차에 앉아서, 꽤 오랜시간 사색에 잠겼다. 

짐을 다 뺀 후에 차 실내의 시트와 마감재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차 정리를 끝낸 후, 와이프가 폐차 플랫폼을 통해 차르신 폐차에 대한 금액을 경쟁 입찰 했고 결과론적으로 차르신은 떠나면서, 우리에게 80만원이라는 금액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 운행하는 차의 1년치 보험금과 거의 비슷한 금액이다.)  후에 전해 들었지만 업자가 폐차하기 위해 차를 가져갈 때, 장모님은 마음이 아파서 아예 나오시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장모님 역시 그 차에 대한 추억이 우리보다 훨씬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2024년 2월 20일 차르신은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대학생이 될 때 까지도 자가용을 운행하지 않으셨었다. 때문에 나는 차르신을 만나기 전까지 자차가 있는 삶을 모른채로 인생을 살아 왔었다. 하지만 차르신을 통해 자차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덤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나는 결과론적으로 차르신에게 꽤 많은 돈을 지출 했지만, 떠나보내는 마당에는 고마운 마음밖에 남아있지 않다. 



"잘가 차르신.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함께 하는 동안 관리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너와 함께 쌓아간 추억은 소중히 간직할게"

작가의 이전글 루이저 로스차일드의 벼룩 실험 -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