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과 스타트업의 지식재산 포지셔닝

by 김영채

I. 미중 기술 분쟁이 한국 기술 기업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자본 시장과 산업 환경이 미국과 중국의 기술 분쟁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초기 창업자들은 이러한 거시적 분쟁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두 강대국의 갈등은 하위 공급망 전체에 강력한 지식재산권 검증을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소재와 부품 그리고 장비를 개발하는 한국의 딥테크 스타트업은 기술의 원천성과 권리 소유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면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 진입 자체가 차단된다. 과거에는 가격 경쟁력과 납품 속도가 벤더 선정의 핵심 기준이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수요 기업들은 부품을 납품받기 전 해당 기술이 중국의 특허를 침해할 여지가 없는지 혹은 중국산 원천 기술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가장 먼저 따진다. 이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스타트업이 보유한 특허명세서의 청구범위와 선행기술조사 보고서다.


투자 시장의 논리도 이에 맞춰 급변했다. 벤처캐피탈은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를 산정할 때 기술의 범용성보다 지정학적 리스크 회피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아무리 뛰어난 배터리 관리 시스템이나 반도체 검사 장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 기술의 권리 범위가 특정 국가의 제재 망에 걸려 있거나 경쟁사의 특허 장벽을 우회하지 못한다면 투자금 회수는 불가능해진다. 창업자는 자신들의 기술이 독자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항변하지만 법적으로 등록된 특허권이 없다면 시장은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기술 침해 경고장을 받는 순간 납품 계약은 즉시 해지되며 이는 곧 스타트업의 폐업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기술 기반 창업팀은 사업 계획 초기 단계부터 목표 시장의 특허 지형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경쟁사가 어느 국가에 어떤 권리를 확보해 두었는지 파악하고 그들이 설정한 권리 범위를 회피하는 설계를 기술 개발 과정에 실시간으로 반영해야 한다.


분쟁의 여파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는 창업 기업은 오픈소스 활용 비율이 매우 높다. 특정 국가에서 개발된 오픈소스나 라이선스가 제한된 데이터셋을 무단으로 차용하여 상용 서비스를 구축할 경우 향후 글로벌 진출 시 막대한 법적 분쟁에 휘말린다. 지식재산권 분쟁은 단순히 기술을 베꼈는지의 문제를 넘어 국가 간 데이터 안보 이슈로 격상되었다. 스타트업은 자사 서비스의 핵심 알고리즘 중 어떤 부분을 영업비밀로 감추고 어떤 부분을 특허로 공개하여 독점권을 확보할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기술의 출처를 세탁하거나 모호하게 처리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창업자는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는 순간부터 자사 기술의 법적 청정성을 입증할 서류를 준비해야 하며 이것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스타트업이 생존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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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의 필수 권리 확보 방안


공급망이 우방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프렌드쇼어링 추세 속에서 스타트업은 자금의 한계를 극복하고 핵심 시장에 특허를 선점하는 압축적인 실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범하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국내 특허청에 출원하는 것만으로 전 세계에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특허권은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는 속지주의 원칙을 따른다. 미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면 미국 특허청에 진입할 자본을 미리 확보하고 출원 일정을 역산해야 한다. 다수의 국가에 진출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조약에 따른 우선권 주장 제도나 특허협력조약 국제출원을 통해 진입 시기를 1년에서 2년 반 정도 유예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기술을 특허화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스타트업의 특허는 논문 실적을 쌓는 용도가 아니며 경쟁사의 진입을 물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핵심 길목에 집중되어야 한다.


권리 범위를 설정하는 명세서 작성 실무 또한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많은 창업자가 특허청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발명의 구성 요소를 불필요하게 세분화하여 청구항을 좁히는 우를 범한다. 등록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허의 가치는 경쟁사가 우리 제품을 모방하려 할 때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필수 공정이나 하드웨어 구조를 독점하는 데 있다. 기술의 여러 요소 중 타사가 우회하기 가장 까다로운 병목 구간을 찾아내어 독립항으로 구성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발명의 경우 서버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 과정만 기재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 단말기에서 표출되는 인터페이스의 변화나 데이터 송수신 단계를 함께 권리화하여 침해 적발의 용이성을 높여야 한다. 침해 사실을 외부에서 입증하기 어려운 백엔드 기술은 특허로 출원하기보다 사내 보안 규정을 강화하여 영업비밀로 묶어두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나아가 조인트 벤처 설립이나 해외 파트너사와의 업무 협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탈취에 대비해야 한다. 해외 기업은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척하면서 핵심 기술 구조만 파악한 뒤 자체 개발로 돌아서는 전략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비밀유지계약서는 법적 구속력이 약하고 실질적인 손해배상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창업자는 파트너사에게 기술 자료나 샘플을 제공하기 직전에 반드시 핵심 기술에 대한 가출원이라도 완료하여 출원 번호를 확보해야 한다. 명세서 작성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연구 개발 과정에서 작성된 실험 노트나 기획 문서를 그대로 특허청에 제출하는 형식의 출원을 진행해서라도 권리 발생의 기준일을 선점해야 한다. 이러한 즉각적이고 방어적인 지식재산 확보 조치만이 힘의 균형이 무너진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서 스타트업이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를 마련해 준다.


III. 독자적 기술 블록화에 대응하는 크로스 라이선스 활용


기술 블록화 현상은 특정 국가나 거대 기업 연합이 자신들의 특허를 무기화하여 외부 기업의 시장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배타적 장벽이다. 자본력과 법무 조직이 취약한 초기 스타트업이 이러한 거대한 장벽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때 생존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 고도의 실무 전술이 바로 크로스 라이선스 즉 교차 실시권 계약이다. 크로스 라이선스는 대기업 전유물이 아니다. 스타트업 역시 자신만의 날카로운 특허 한 두 개를 무기로 삼아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과 권리를 맞교환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타겟 기업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역분석하여 그들이 아직 권리화하지 못했거나 기술적 공백으로 남겨둔 틈새 영역을 정확히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타겟 기업이 향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차세대 부가 기능이나 기존 공정의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개량 발명을 스타트업이 먼저 출원하여 길목을 차단한다. 이후 타겟 기업의 주력 제품이 우리 특허를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도록 유도하거나 해당 특허가 없이는 신제품 출시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이 단계가 완성되면 스타트업은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대신 상대 기업이 보유한 방대한 원천 특허를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교차 실시 조건을 제시한다. 상대방 입장에서도 특허 무효 소송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일정 부분 기술을 공유하고 분쟁을 조기에 종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협상 과정을 통해 스타트업은 천문학적인 로열티 지급을 면제받고 합법적으로 글로벌 기업의 기술망에 무임승차하여 자사의 제품 라인업을 고도화할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협상용 특허를 설계할 때는 청구범위의 명확성과 타격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종속항을 촘촘하게 배치하여 상대방이 무효 심판을 청구하더라도 핵심 권리의 일부는 끝까지 살아남아 발목을 잡도록 구조를 짜야 한다. 크로스 라이선스 전략은 단기적인 매출 증대보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방어적인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지식재산권을 공격적인 영업 자산으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창업자는 개발실에 앉아 코드를 짜고 시제품을 만드는 시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경쟁사의 특허 명세서를 읽고 시장의 기술 흐름을 예측하여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한 권리의 빈 공간에 말뚝을 박아야 한다. 특허는 발명가의 노고를 치하하는 상장이나 장식품이 아니라 잔혹한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생존 밧줄이며 가장 강력한 사업화 도구다. 창업의 성패는 이 도구를 얼마나 냉혹하고 정교하게 휘두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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