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또 아니지 않다고 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지는 않지 않은가 싶기도 한데….”
드라마 속 어린 아들은 친구들에게 엄마 없냐고 놀림을 당한다. 그런 아들에게 사직서를 내러 갔다가 도리어 승진하게 된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아들은 기대 가득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내일이면 안 나가는 거냐고 물어온다. 엄마는 결국 말장난 같은 황당무계한 대답을 하고 마는데…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상황과 대사,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찰떡이었다. 그땐 몰랐다. 말장난 같던 대사가 페터 한트케의 『관객 모독』을 읽는 내내 생각나게 될 줄은.
관객 모독』은 페터 한트케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하다. 연극을 위한 극본이며 줄거리가 없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굉장히 은유적이고 엄청난 철학적 메시지들이 가득한 것만 같았다. 얼마 가지 않아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너 지금 말장난해?’라는 당황스러움과, 심오함을 깨닫지 못했다는 모욕감까지 더해져 생각들이 분노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분노는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이 작가는 천재다. 굉장히 독창적이고 그보다 더 빛나는 것은 용기였다. 이 글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오다니! 사람들의 반응이 무섭지 않았을까? 적어도 대중적이고 조금은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틀을 벗어던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관객 모독』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작가는 유명해졌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천재성일까 용기일까?
나는 빛나는 재주도 없고 영특한 두뇌도 없다. 스물다섯에 결혼해 15년을 주부로만 살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15년 동안 ‘육아’라는 방패로 나를 꽁꽁 싸맸다. 아이가 커가면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의 방패가 점점 사라져 갔다. 육아 동지였던 엄마들도 한 명씩 복직이라는 것을 하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며 세상 밖으로 나갔다.
우울한 날들이 쌓였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봤다. 벽이 높은 일도 많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진 않았다. 엑스코에서 단기 알바로 일주일 동안 아기띠를 팔았다. 연일 완판이었다. 그 후로 사장님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러주셨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곤욕이었지만 설명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뿐.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더욱 커졌다.
다른 일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게 위로 따윈 주지 않았다. 경력도 자격증도 하나 없는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영어 학원에서 초등부 강사를 찾는 공고였다. 궁금했다. 내가 갈 수 없는 곳은 어떤 곳일까. 창을 열었다. 몰래 열어본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 순간 지난 시간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코로나를 지나는 동안 영어 공부에 미쳐있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실력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낙담과 함께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마음은 후회와 미련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절대 안 되겠지?' 머리로는 아닌데 또 창을 연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가고 싶은 곳을 넘나들었다. 그날도 하루 종일 그 공고 생각뿐이었다. 이력서를 펴본다. 여전히 쓸 거라곤 없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무슨 생각으로 지원을 한 거냐며 어이없어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찌해 볼 도리 없이 창을 닫았다. 그 순간 이력서에는 쓸 수 없는, 영어 공부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날 보낸 한 통의 문자 메시지는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세상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많은 것이 변했다. 하고 싶은 것이 끊임없이 생기기 시작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지금은 비록, 영어 선생님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 몰래 들여다보았던,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세계에서 말이다.
문자를 쓰던 날, 영어를 포기했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모진 벽을 세웠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바꿔 준 관객 모독에는 천재성은 없다. 그럼에도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용기가 선물해 준 나만의 관객 모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