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浮遊)

by 송준

W 마을은 원래 항구 마을이었다. 처음에는 바닷속 물고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미생물까지 누군가가 체로 긁어 가져가 버린 것처럼 없어진 후에는 파도도 볼 수 없어졌다. 여기까지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력까지 없어진 건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보이지 않는 것들에 기대어 설명하려 들었지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사람들의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 논리적인 사람들이 여러 가지 가설을 내세워 나름대로 설명하려 했으나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부력이 ‘거의’ 사라진 바다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소였고, 수십 년을 이어온 항구와 시장을 잃어버린 마을이 사람들을 모조리 토해내는 데는 반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비어버린 마을을 찾아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영주였다.

영주가 머무는 집은 그녀의 할머니가 살던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뒤귀깍’, ‘그 뒤귀깍’, ‘뒤귀깍 집’ 등으로 부르곤 했는데, 여름이 되면 그 집에는 어디에서도 열리지 않는 특별한 열매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여름의 햇빛을 받기 시작하면 시멘트 담벼락을 타고 솜털로 뒤덮인 새끼손가락 두께의 질긴 줄기에 매달린 연녹색의 넝쿨 잎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무더위에 잔뜩 달궈진 바람이 담벼락과 넝쿨 사이를 넘나들면 잿빛 점박이 꽃이 피어났고, 그로부터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뒤귀깍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아주 오래전 이무기를 보았다며 매일 바다 아래서 살다시피 했던 한 여인의 일그러진 귓바퀴 뒷모양을 빼다 박았다는 그 열매는 영주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손녀에게만 알려준 비밀스러운 재료였다.

“알알이 집어 든 뒤귀깍을 체에 걸러 흙먼지만 털어내고 남은 것들을 먼지 하나 없는 그릇에 넣고 빻아야 하는데, 수분이 스며 나올 때까지 멈추면 안 돼. 그릇의 종류는 관계없어도 절구는 반드시 나무로 된 절구를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맨손으로만 짓이기렴.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꾹꾹 눌러 짓이긴 뒤귀깍이 죽처럼 묽어지면 주걱으로 덜어내어 펴 발라야 한단다. 바르기 전 한나절 내지는 한낮 동안 차갑고 서늘하고 건조한 장소에 보관해야 하지. 이 과정을 모두 거치면 비로소 불하지가 되는 거야. 이 불하지를 차갑게 뭉쳐놓은 상태에서 곧장 바르면 돼. 빈틈없이 발라낸 불하지는 서너 시간 정도 지나면 그물처럼 벌어지는데, 볼품없이 성겨지더라도 떼어내지 말고 완전히 뒤덮일 만큼 계속해서 덧발라야 해.”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물길은 찾은 거니?”

불하지가 준비되고 난 이후 그녀의 일과는 단순했다. 불하지를 펴 바른, 널찍하고 모서리가 둥근 나무 보드와 노를 들고 잠잠한 바다로 나가는 일.

영주가 해안가에 도착하자마자 얕은 바다 표면 위로 보드를 올렸지만 역시나 금세 가라앉아 버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보드를 집어 들고 바다를 둘러보며 어디론가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물길을 찾았다. 그 길은 성인 여성이 두 팔을 활짝 벌린 정도의 너비로, 해안에서부터 족히 오백 미터는 떨어져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버려진 듯 자리 잡은 짙은 갈색 바위까지 이어져 있었다. 날이 흐리든 비가 오든 자기 몸집의 두 배는 되는 기다란 보드를 타고 살아있는 물길을 따라 바다로 나아가, 잠들었는지 죽었는지 모를 바다의 고요함에 심취했다. 심지어는 바닷물이 서로 부딪히거나 모래를 뒤섞는 소리조차 없었다. 가끔 영주의 물길에서 쉬려고 내려왔다가 자신을 띄워주지 않는 바다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바닷새 몇 마리의 날갯짓을 빼면, 그곳은 소리를 지워버린 영상 속 장소처럼 적막했다. 오로지 태양만이 온 바다와 영주를 태워버릴 기세로 난리를 피워대고 있었지만, 여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아서였는지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었다.



괴롭고도 처절했던 무더위를 견뎌내니 가을이 찾아왔다. 해가 기울어 갈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영주는 제 할 일을 마친 보드를 마당 한쪽에 대충 눕혀놓고 현관문을 열기 위해 몸을 풀었다. 문은 한쪽으로 기울어서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아 힘껏 위쪽으로 들어 올려 당겨야만 들어갈 수 있었고, 닫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간 뒤에는 힘에 부쳐 포기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최대한 닫아놓기만 하고 안으로 들어와 조명을 켜지 않은 채 곧장 거실 한쪽으로 가 보일러를 작동시켰다. 보일러는 집안을 데울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조용히 돌아가고 있어서, 추위 때문에 늘어난 영주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온 집안을 메우는 듯했다. 영주는 몸에 붙은 불하지를 모두 떼어버렸고 모락모락 김을 뿜어대는 그녀의 상체는 끈적이듯 달라붙은 물기와 짓이겨진 모래의 존재를 알리며 욕실로 향했다.

“야옹.”

잠시 후, 뜨거운 물줄기에 파묻힌 그녀의 귀에 어디선가 들려온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닿았지만, 영주의 머리는 집에서 날 리 없는 그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말끔하게 씻고 나온 그녀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기다리던 것은 어둠뿐인 거실이었으나, 곧 욕실에서 나온 빛이 수증기를 타고 거실로 향했기 때문에 굳이 거실 불을 켜지 않았다.

“야옹.”

그러나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던 영주가 멈칫한 건, 현관문을 통해 들어온 고양이가 바닷가 옆 도로를 비추는 주황색 불빛을 머리에 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였다. 그녀는 허락 없이 집안에 들어선 누군가를 내쫓는 법을 알지 못했고 그건 고양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런 생각도 방법도 떠올리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그대로 대치하던 중 바닷바람이 불어 현관문을 세차게 밀어버렸다. 그러자 아무리 애를 써도 닫을 수 없던 현관문이 거짓말처럼 닫혔고, 그 순간은 물론 그 이후에도 현관문이 닫힌 일과 자신이 고양이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 의무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잊지 않았지만, 고양이를 내쫓기는 어려워졌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세게 닫힌 현관문이 되려 고양이를 안으로 몰아넣었고, 녀석은 영주의 명치 높이쯤 되는 넓은 탁자를 가운데 둔 거실을 크게 빙 둘러 그녀의 앞으로 도망쳐 왔다. 이미 이 집에 들어서리라 굳게 다짐한 것이 분명했고, 어디서 어떻게 뒹굴었을지 모를 녀석을 씻겨야 하는 것도 분명했다. 이제 막 씻고 나온 터라 맨손으로 고양이를 잡고 싶지 않기도 했으나,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잡아 욕실로 들어갈 자신도 없었다. 대신 슬그머니 욕실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살살 손뼉을 치자 녀석이 얌전히 따라 들어왔다. '이리 와.' 그녀는 소리 없이 이야기랬다. 이어 그녀를 따라 살랑거리던 꼬리가 완전히 문을 통과하자 발끝으로 천천히 욕실 문을 밀어 닫아 버렸다.

영주와 고양이가 거실로 나온 건 한 시간 가까이 지난 후였다. 거실 중앙에 매달린 라탄 등은 옅은 노란빛을 내며 정사각형의 탁자와 영주와 고양이를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있었다. 등받이도 없는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은 영주의 허벅지 위로 몸을 교차하듯 널브러진 녀석을 영주는 가만히 쓰다듬었다. 뻣뻣하지만 깨끗하게 씻긴 털과 바짝 말라 부드러워진 수염이 그녀의 살결을 간지럽히듯 따갑게 만들어 소름이 돋았다. 영주는 현관과 마주하고 앉아 바람에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며, 고양이가 자세를 바꾸거나 그녀에게서 떨어져 앉기를 바라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가만히 주저앉아 눈알만 굴려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유령 마을이 된 후로 살아있는 건 모두 떠나간 지 오래였으므로 마을에 살던 고양이는 아닌 게 분명했다. 고양이는 몸을 위아래로 나눈 것처럼 네 발바닥부터 몸통의 중간까지는 검은색, 그 중간에서부터 위쪽으로는 흰색이었다. 경계를 나누는 선이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직선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졌다. 심지어는 꼬리에도 경계가 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니 녀석도 잠시 고개를 들어 영주를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탁한 회색으로 물들어 버린 녀석의 오른쪽 눈동자에 영주의 시선이 모였고, 그 시선을 고양이의 왼쪽 눈이 쫓고 있었다. 곧 영주가 시선을 거두면서 녀석도 다시 고개를 내려 누워버렸다. 자신의 양쪽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잠든 고양이의 성별이 문득 궁금해진 그녀는 녀석의 엉덩이에서 시작해 가랑이 사이로 조심스레 손을 옮겼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도착하기 직전에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닥으로 내려가 버렸다. 당장 확인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하며 고양이를 거실에 둔 채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고, 문을 닫은 직후부터 침대로 가는 동안 영주는 고양이의 이름을 몇 개 생각했다.

“올드만.”

아침이 되어 거실로 나가 아직 녀석에게 주지도 않은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올드만은 어젯밤 그들이 함께 앉았던 그 의자에 몸을 완전히 밀착시키고 누워있었다. 혹시라도 추위에 떨지 않을까 걱정되어 켜놓은 보일러는 집 바깥에 떠오른 햇살보다도 뜨겁게 집안을 데우고 있었고 영주의 목소리를 들은 고양이는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정면으로 둔 얼굴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왼쪽 눈만 치켜떴다. 그녀의 집에서 이름이 없던 유일한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고양이를 그대로 지나쳐 가던 영주는 바다 쪽으로 난 거실 통창과 담벼락 사이를 가득 메운 가을의 햇살을 보자 재채기가 나오려고 했다. 실내에서 본 햇살도 재채기를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영주는 궁금해하며 거실 귀퉁이에 붙어 있는 작은 주방으로 걸어갔다.

“올드만.”

정말로 괜찮은 이름일까, 한 번 더 고민해 보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올드만의 얼굴이 탁자 위로 올라와 영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녀석의 오른쪽 눈은 전날보다도 더욱 탁하게 보였다. 마냥 안타깝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탁한 얼룩을 닦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어떻게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영주는 바다로 향했다. 이제는 홀로 남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남았다고 하기보다는 혼자 남았다고 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녀를 태운 보드가 흔들거렸고, 새의 부리처럼 기다란 챙으로도 가리기 버거울 만큼 쏟아지던 가을의 햇살이 그녀가 가는 길 주위에 아름다운 윤슬을 뿌리는 듯하더니 이내 쓴웃음인지 미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영주의 모호한 입술 모양을 자세히 보기 위해 그녀의 하관을 거칠게 찔러왔다.

목적지인 갈색 바위는 성인 두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만 튀어나와 있었다. 영주는 보드를 바위 위에 반쯤 걸쳐 놓은 뒤 바위에 앉았다. 바다 표면에 고루 퍼져 부유하던 햇살은 얼굴을 찡그리게 했지만, 먼 곳을 눈에 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갈 때쯤이 되어서야 작은 주먹밥을 꺼내 질겅질겅 씹어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바람은 완전히 멈추었고 물의 표면은 미동조차 없어서 마치 벌판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작은 바위 위에 노를 세우고 있던 그녀의 두려움을 타고, 언젠가 영주가 내다 버린 수치의 산물이 까마득히 넓은 벌판을 따라 빠르게 접근하는 것만 같았다. 서둘러 노를 저어 땅으로, 집으로, 올드만에게로 도망쳤다. 거실 조명이 멀리서, 평소보다도 더 멀리서 태연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올드만의 왼쪽 눈마저 급격히 탁해지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찾아간 수의사가 말하길 영양실조와 높은 안압 때문이라고 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듣고 싶었던 말도 아니었다. 올드만의 나이가 꽤 많아 보인다는 말과 방법이 없다는 처방만을 가지고 집으로 향하던 영주는, 진작 내보냈어야 했나,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 말을 직접 들었을 때 비참하고 쓸쓸해지는 건 올드만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영주는 고양이를 보드에 태우고 녀석에게 가슴줄을 채워 허리에 연결한 채 바다로 향했다. 올드만이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둘은 바위에 걸쳐 놓은 보드 위에 나란히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불하지를 온몸에 발라 하얘진 영주의 등과 원래부터 하얀색이었던 올드만의 등이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잔잔한 물결이 부드럽고도 느릿하게 보드를 흔들어서인지 졸음이 몰려왔고 그녀는 아예 보드 위에 누워버렸다. 영주의 머리맡에 앉아있던 올드만의 등을 쓰다듬던 손이 점점 느려지더니 아예 멈추어버렸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켜켜이 쌓여 그녀와 고양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의 문턱을 넘어섰음에도 완전히 통과하지는 못했던 영주는 손끝으로 흰색 털과 검은색 털의 경계를 찾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영주는 기어코 두 색깔의 경계를 찾아내고서야 잠에 들었다. 경계선에 손을 댈 때마다 올드만의 몸에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짧고 깊은 잠에 빠져든 영주가 잠에서 깼고, 몽롱하고 나른한 편안함을 통해 희열하던 그녀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옆에서 자고 있던 올드만을 확인하고 손뼉을 두 번 쳤다.

‘짝짝’

올드만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곧 가까이 다가왔다. 올드만의 시력이 더욱 나빠지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일종의 신호였다. 짝, 한번은 여기를 봐. 짝짝, 두 번은 이리 와.

“가자.”

영주는 올드만을 한번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를 양쪽으로 번갈아 저을 때 떨어진 물방울이 올드만의 정수리에 고인 모습을 보며 영주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옆구리에 보드를 끼고 집으로 걸어가던 그녀는 올드만이 쉬이 따라올 수 있도록 모래를 세게 밟아 바스락 소리를 크게 내며 천천히 걸어갔다.

추위가 빠르게 다가오고 보드가 창고로 들어가면서부터, 올드만은 굳게 닫힌 현관문 옆으로 난 길고 얇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을 쳐다보며 앉아 앉아있었다. 영주는 올드만의 몸 중간을 가로지르는 선과, 창틀의 그림자가 만든 얇은 선이 교차하는 부분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짝짝, 문틈으로 스미는 한기를 개의치 않고 앉은 녀석을 불렀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다시 짝짝, 짝짝, 짝짝, 영주의 손뼉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친 그녀가 거실 의자에 앉아 벌겋게 부어오른 손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한참을 앉아있던 영주는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앉아있던 올드만이 쓰러지듯 힘없이 누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코끝을 좌우로 흔들며 냄새를 맡던 올드만은 그제야 현관 바닥에 널브러진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이끌어 집 안으로 들어와 엎드렸고, 고장 난 문과 올드만과 영주는 일직선으로 앉게 되었다. 올드만은 점차 기력을 잃어갔고 영주는 몇 배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올드만도 결국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면서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었다.

바람이 집안으로 불어왔고 올드만은 바깥을 향해 목을 쭉 내밀었다. 올드만이 바다를 그리워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영주는 다시 한번 바다로 향했다. 겨드랑이 양쪽에 올드만과 보드를 각각 낀 채로 정수리로 내리쬐는 태양 아래를 가로질렀다. 올드만은 노를 젓는 영주의 발 사이에 얌전히 앉아있었고, 바다는 고요하고 잠잠한 편이었지만 평소와 달리 조금씩 찰랑거리던 물살 덕에 바위의 면적이 작아지고 커지기를 반복했다. 날이 추워 코끝이 시려오더니, 이내 온몸이 움츠러들며 굳어갔다. 가까스로 바위에 도착한 영주가 바위에 올라서자, 심장이 발작하듯 뛰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머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짝짝’

이번에는 단번에 다가온 올드만을 앉은 채로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올드만은 영주의 팔꿈치와 가슴 사이로 파고들었고, 영주는 그런 올드만의 얼굴이 조금 더 가려지도록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여전히 영주의 떨림은 멈추지 않아서 끝내 온몸을 타고 흘러갔고, 현기증이 나는 바람에 상체를 웅크리며 주저앉듯 쪼그려 앉았다. 너무 세게 머리를 조여서인지 올드만이 잠시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고개를 들어 영주를 보았다. 그러고는 자세를 바꾸어 영주의 허벅지에 걸터앉은 올드만은 영주의 눈에 시선을 묻었고 영주는 그런 올드만의 등을 쥐어짜듯 쓰다듬었다.

영주의 등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작은 소란을 틈타 기온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굳었던 근육들이 조금씩 풀리며 마치 여름날로 돌아간 것처럼 나른해졌다. 맥없이 풀려버린 근육들은 졸음을 불러오려 하고 있었다. 올드만도 영주도 이겨내기 벅찬 졸음이었다. 결국 영주는 졸음과 손을 맞잡아 버렸고, 그 졸음이 영주를 무더위의 환상 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괴롭고도 처절한 무더위였다.



아직 올드만을 만나기 전이었다. 마지막 남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찾아온 첫 여름이었다. 지나치게 고요한 여름날이었고, 씻어낼 수 없는 열기가 득실거리던 날이었다. 모래 위, 땡볕 아래 앉아있던 영주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정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온몸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옹골지게 뭉쳐진 땀방울 하나가 목덜미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속옷과 등 사이를 기분 나쁘게,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지나쳐 엉덩이골 정중앙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정수리에서 피어난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 선글라스에 숨어 바다를 바라보던 눈까지 침범하는 바람에 충혈된 눈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밤새 불어오던 산바람에 밀려 저 멀리 물러섰던 바닷바람이 뜨거운 땅을 뒤덮고 있었다. 얼마나 힘껏 불어대는지 그 소리가 온 해변을 쓸어가 버릴 정도였지만, 유독 영주의 집만은 피해 가고 있었고 이글거리는 흙을 맨발로 밟으며 나아가던 그녀는 문 앞에서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채 구부정하게 서 있던 남자와 마주쳤다. 영덕이었다. 오영덕.

5년 전, 학교 선후배였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영덕의 병실에서였다. 그는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 선배에게 이끌려 찾아간 영주와 영덕이 처음 인사를 나누기는 했으나 어느 쪽도 서로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영덕이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병이 온몸으로 번져있던 영덕이 누군가를 반가워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았거나, 처음 보는 사람을 무작정 반가워할 사람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주 역시 그를 반가워하지 않고 있었고, 신입생 대표로 병문안을 온 것으로 그에게 할 수 있는 도리는 모두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점,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던 그 짧은 병문안 동안 영주는 너무 지쳐 텅 비어버린 그의 눈과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 보이기 힘든 그의 몸짓에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졸업 축하해.”

영주의 졸업을 축하할 때쯤에도 영덕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병을 뿌리치지는 못했지만, 눈빛만큼은 전과 다르게 여유로워졌다. 영주는 죽어가는 그의 모습을 모두 품어주는 것은 물론 그 무엇도 해줄 수 없어서, 영덕의 삶이 그 누구보다 짧다고 해서 굳이 무언가를 더 해주려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가 영주를 탐탁지 않아 했던 건. 조바심을 내지 않아서, 영덕의 죽음을 늦추고 싶다는 열정이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아서. 그래도 영주의 몫까지 더해 조바심을 내던 그가 결국 아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게 만들기는 했다. 삶에 집착하는 법을 잊어버려 그 무엇도 선택할 줄 모르던 아들의 동의 없이 진행했던 임상실험 덕분이었고, 임상실험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아남은 영덕의 수명 덕분이었다. 그때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영덕 자신의 비밀스러운 노력이나 욕망과 욕구 때문이었는지, 곁을 지켜준 영주 덕이었는지, 부친의 의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이야기가 아직은 더 쓰여야만 했던 것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면서도 영주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많았고 영원히 알아낼 수 없는 것들 역시 넘쳐났으니까. 마치 영덕의 회복이 영주에게 이별을 불러온 것처럼.

영덕이 자리에서 일어나 쭉정이처럼 마른 다리로 재활하는 모습을 영주는 끝내 보지 못했다. 그의 온몸을 짓누르던 통증이 사라지면서 영주가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홀로 돌아다니지도 못할 만큼 힘겨워했던 그에게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면서부터, 영덕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애초부터 그 남자의 결말을, 촛불처럼 자지러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위태로이 꺼져가는 장면을 영덕 홀로 마주하게 하지 않으려 했던 노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실하게 깨달았다. 결국 죽음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것만큼 영주는 영덕에게서 멀어져갔다. 인생의 종착점으로부터 멀어진 영덕에게 줄 수 있는 감정이 그 무엇이든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고, 사랑이 아닌 그 무엇이든 간에 사랑으로 포장할 재주도 없기 때문이었다.

애끓는 사랑을 주고받아 본 적 없는 연인. 영주는 그렇게 둘 사이를 정의할 수밖에 없었다.

“잘 있었어?”

어떻게 영덕이 자신을 찾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해안마을에 관해 이야기 해주었고, 여행과 모험을 소망으로 삼아 세상을 내달리던 스물두 살의 청년이 잃어버린 수 년의 시간 동안 들었던 모든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였을 터였다. 영주는 ‘잘 지냈어. 그런데 여기는 왜 왔는지 모르겠네. 마을이 통째로 사라져서 나도 이사 준비를 해야 해. 바쁘니까 이제 가줄래?’ 하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할 준비를 했다. 몇 번이고 대사를 곱씹으면서도 영주는 그 모든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거짓말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말하자면 영주는 잘 지내지 못했고, 영덕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고 있었으며, 마을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몇 번을 이 근처까지 와봤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끌려 돌아온 영덕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제법 건강을 찾았는지 몸에는 적당히 살이 붙어 있었고 한결 부드럽고 환해 보였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것들, 심지어 흐르는 시간조차 막아내고 있는 듯했다.

상대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 안달이 나서 몸이 앞으로 굽어진 남자와, 충혈된 눈이 들통날지 몰라 걱정하며 선글라스를 벗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바짝 든 채 삐딱하게 선 여자 사이에는 꽤 오랫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흐르지 않았다. 여자는 차갑게 바라보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전혀 입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위로했다.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 아니면 그냥 갈까?”

“그냥 가.”

무의식적으로 잘 가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애써 준비하고 연습한 말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단호하게 잘 끊어낼 수 있는 표현이라고 또 한 번 위로했다. 애처로운 자신을.

그럼에도 영덕은 집에 들어왔다. 날이 너무 덥지 않았다면, 바닷바람이 영주의 집에도 들렀다면, 그가 완치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추측하지 않았다면, 집에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그가 몰고 온 차가 눈에 들어왔더라면 그대로 매몰차게 돌려보냈을지도 모를 터였다. 그날의 영주에게는 그를 들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고 그걸 모르는 건 영주뿐이었다.

“건강해 보이네.”

거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영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선글라스는 벗지 않고 있었다. 짜증이 솟구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더운 바깥의 공기로부터 도망쳐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 앉은 그녀는 그 어떤 것이든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얼굴을 타고 흐르던 짜증도 주름도 모두 사라진 영주는 자신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려 거듭 뻐끔거리다가 입을 닫고 마는 영덕을 아무 뜻 없이 훑어보며, 과거 처음 영덕을 마주한 순간부터 그를 떠나온 순간을 거쳐 다시 만났을 때까지도 느끼지 못했던 두근거림을 힘겹게 소화 해내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던 영덕을 처음 만나 인생을 함께 지켜봐 주고 싶다는 알량한 동정심 혹은 미흡한 적선,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숭고한’ 정신이 그녀를 옥죄어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그 감정이, 느낌이, 매정하게 식어버려 몸속 어딘가에 가라앉은 길을 다시금 트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몸부림은 서로 탐하지 못해 지나쳐 버린 애틋함으로 가득 찬 커다랗고 끝없는 과거를 한없이 줄여가고 있었다.

이후 두 사람이 알몸 상태가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가 병실에 누워만 있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그는 영주가 까치발을 들어도 정수리가 턱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키였다. 그러나 영덕이 그녀를 쉬이 들어 올렸으므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상체에 덕지덕지 퍼진 선크림과 영주의 몸을 덮은 불하지가 섞여 두 사람의 몸을 오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얼굴마저 하얗게 얼룩질 만큼 시간이 지나고 그 얼룩이 다시 지워질 만큼 격렬한 시간조차 지나자, 바깥의 더위는 사그라져 갔다.

영덕과 포개어 위에 누운 영주는 턱을 한껏 올려 그의 턱을 쳐다보았다. 거실에서 들어오는 희끄무레한 조명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반쯤 삐져나온 그 얼굴을 영주가 물끄러미 바라볼 때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때의 얼굴과 많이 달라 보여 끝내 어색함마저 느껴졌다. 여전히 어둠 속에 묻힌 나머지 얼굴은 전처럼 익숙하겠으리라 생각하던 순간,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영덕이 속삭였다. 그러나 영주는 그 무엇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영주야, 나는…”

이어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면서도 익숙한 대답이 돌아왔고, 낯익지만 생소한 감정을 마주해야만 했다. 영주는 티 나지 않게 잠시 그 감정을 몸속 어딘가에 잠시 치워두기로 했다. 그러고는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해가 뜨자마자 바다로 나간 영주는 보드에 영덕을 앉혀놓고 허리를 곧게 세워 노를 젓고 있었다.

“이 길로만 떠다닐 수 있어.”

영덕은 미소 띤 얼굴로 영주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영덕이 보기에 그녀는 흥이 난 얼굴이었다. 아마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바다 아래에도 물길이 있어.”

영주는 태연하게 물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야.”

“무슨 색이야?”

“총천연색.”

“총천연색?”

“응. 그리고 커다란 구렁이가 지나간 자리처럼 계속 남아있어.”

“그 길을 따라서 헤엄치면 가라앉지 않겠네?”

“불하지를 바르고 들어가면 저절로 끌려가게 되어있어. 미끄럼틀처럼.”

“끝까지 가면 뭐가 나와?”

“가보지 않아서 알 수 없네.”

“가볼 생각은 없어?”

“어차피 끝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끝이 있다고 해도 가기 도착하기 전에 지칠 거고. 혼자 가기에도 겁이 나.”

수평선과 평행선을 이룬 보드가 두 사람을 나란히 앉혀놓고 있었다. 영덕은 예전처럼 영주의 무릎을 베고 누웠고, 영주는 온몸의 힘을 빼고 표면 위로 비친 바닷속 물길과 영덕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적나라하게 그의 얼굴을 비추면서 전날 밤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익숙함이 그녀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그제야 영주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서며 몸속 어딘가에 놓아둔 어제의 감정을 다시 꺼냈다. 그녀는 몹시 들떠있었다. 자기의 감정을 빈틈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으므로. 또 조절하고 다룰 수 있다고 확신했으므로.

“가자.”

그 말 한마디를 던지며 일어선 영주는 영덕을 자신의 발아래 앉혀놓고는 손가락 끝에 피가 고여 터질 정도로 노를 꽉 쥐었다. 문득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전혀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영덕이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다. 내리쬐는 햇살이 영주의 손을 잡아주는 듯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단번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영주는 확신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보드가 해변에 다다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다는 언제나처럼 고요했고 영주의 심장처럼 차가웠다. 그렇게 훗날 올드만이 영주의 집에 오기 전까지, 영주는 W 마을에 홀로 남게 되었다.

“끼이이익-”

찢어지는 듯한 새소리가 그녀를 깨웠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다가 날아갔는지, 날아가며 소리를 질러댔는지 모를 일이었다. 영주는 아직 잠든 올드만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섰다. 바다 아래 물길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서였다.

“야옹.”

그러나 예민한 올드만은 금세 일어나 그녀를 찾았다. 영주는 한 뼘 정도 떨어져 앉아있는 올드만을 불렀다.

‘짝짝.’

가뜩이나 가까웠던 영주와 올드만이 더욱 가까워졌다. 올드만이 거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힘겹게 그리고 천천히 영주와 눈을 마주쳤고 영주는 무릎을 꿇고 앉아 올드만을 바라보았다. 날이 추워 며칠째 바다에 나오지 못해 답답했던 올드만의 마음이 풀리는 순간이자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러나 영주는 올드만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올드만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늘어지기를 반복하며 약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득 영주는 영덕과, 영덕을 처음 만난 순간과, 영덕의 마지막을 연달아 떠올리면서도 올드만에게서 신경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올드만은 어쩌면 영주가 기뻐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인지는 알아낼 방법은 없었고 영주는 올드만이 안심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갑자기 올드만이 쉴 새 없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놀란 영주는 올드만을 품에 안아 보드 위에 곧게 올라선 뒤 갓난아이를 달래듯 위아래로 살살 흔들면서 두 팔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올드만의 등에 밀착시킨 채 바다와 바람을 등지고 섰다. 올드만과 맞닿은 가슴과 배, 어깨에 얹은 올드만의 고개가 그녀를 따뜻하게 데워주어 소름이 돋았다. 거대한 벽에 일어난 작은 균열 같은 소름이 온몸으로 퍼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이윽고 올드만이 잠잠해졌다. 떠날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영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깨에 기대어 잠든 올드만의 머리를 턱으로 쓰다듬고는, 그 눈이 바라보던 방향이 어느 쪽인지 가늠해 본 뒤 천천히 몸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닷속 물길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동시에 올드만의 경계에서 몇 초가량 떨림이 있었고, 웅크리듯 껴안고 있던 영주는 온몸으로 진동을 느꼈다. 온몸이 하얗게 덮인 올드만을 품에서 떼어낸 영주는 그 어떤 인사말도 없이 선명한 물길 속으로 올드만을 보내주었다. 올드만은 부력이 없는 곳에서보다 훨씬 더 천천히 가라앉으며 물길을 따라갔다. 검고 하얬던 작은 몸이 물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으로 변해갔다. 혹시나 길을 벗어나 영덕과 마주치지 않을까, 그와 마주쳐 그의 병이 올드만에게 옮겨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그녀의 보드를 통해 물 아래서부터 오는 떨림이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동도 없이 겨울에 둘러싸인 영주의 몸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러나 구불구불 복잡하게 이어진 물길을 따라 흘러가던 올드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영주의 바람과는 달리 올드만이 물길을 벗어날 듯 보였고, 올드만이 일으킨 떨림이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곧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딱딱하게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몸, 영덕을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같이 영주가 물 아래로 쉽사리 뛰어들지 못할 수많은 이유가 있었고, 이번에는 그 모든 이유를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물의 표면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댄 채로 올드만을 불러 거기가 아니라고, 그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어야만 했다.

짝, 짝, 짝짝, 짝짝, 짝짝, 짝, 짝.

하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해진 손바닥이 찢어지며 쉬지 않고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바다 위로 퍼져나간 소리는 물길을 피해 곧장 물 아래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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