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가슴으로 젖어드는 베네치아의 밤은 깊어가고....
베네치아의 건물들은 매우 특이한 점이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한 치의 틈도 없다. 좁은 골목길의 양쪽으로 지은 2~3층 높이의 건물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소운하 사이의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독일의 구 시가지를 갔을 때도 건물들은 서로 붙어 있었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방식은 이해가 안된다. 대체로 집을 지을 때 옆집과 간격을 두고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 그런 것일까?
건축물의 변화는 시대의 역사성을 담고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의 건물들이 조밀한 구조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시대부터다. 우리나라와 달리 땅도 넓은 나라에서 건물은 밀집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그렇다. 왜 이렇듯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건물과 건물을 붙여서 지은 것일까? 베네치아는 예외적인 부분이 있기는 해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건물과 건물을 서로 붙여서 지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면적의 협소성 때문인데 그 이유는 중세 봉건제도에 기인한다. 중세시대 유럽의 봉건제는 왕 아래에 영주와 선제후가 일정 지역의 영지를 보유하고 다스리는 제도였다. 영주는 자신의 영지에 살아가는 농민과 영토를 보호하고 농민은 영주에게 세금을 내는 관계를 형성한다. 평화시에는 영주의 성밖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전쟁이 일어나면 성안으로 들어가야 생명을 보존해야 했다. 전쟁이 빈번해지면서 농민들은 점차 성안에서 안주하는 농노가 되었다. 성은 아무리 넓어도 성벽이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정해진 면적에서 많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건물과 건물의 간격을 붙여야 했던 것이다.
둘째는 건축물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유럽의 궁전이나 대성당은 무거운 대리석으로 화려한 건축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석재나 벽돌 혹은 목재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 재료를 가볍게 하여 아파트처럼 층을 올리는 벽식 구조다. 벽식 구조는 벽이 곧 구조체이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 있는데 옆집과 벽을 공유하면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공사의 시공비를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옆집, 옆집이 이어져 우리나라의 옛 복도식 아파트처럼 횡렬식으로 연결된 건축물이 된 것이다.
셋째로 중세 봉건제의 세금과도 연관성이 있다. 왕이나 영주들은 자신의 통치 아래에 있는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었다. 현대와 마찬가지로 세금은 늘 적정성이 문제가 된다. 왕이나 영주는 많이 거두려고 하고 백성은 적게 내고 싶어 한다. 따라서 적정성의 범위를 벗어나면 조세 부담을 지는 백성은 대항하거나 회피하려 한다.
중세시대에 부과했던 벽난로세(Hearth Tax)와 창문세(Window tax)가 그것이다. 벽난로세는 벽난로 수에 따라 창문세는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백성들은 과세되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 수를 줄였던 것이다. 기존 건물은 창문을 판자로 막아 줄이거나 신축 건물에는 아예 창문을 없앴다. 창문을 줄이기 위해 건물의 전면은 좁고 후면 길게 만들었으며 옆집과 벽을 공유하면서 측면의 창문을 없앴다.
넷째로 유럽 건축물의 단열 효과 때문에 벽체를 붙여서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유럽은 집 안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벽난로를 사용한다. 벽난로는 불을 때면 열기가 위로 올라가서 내부의 단열 효과가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온돌 방식으로 따뜻한 열기가 방바닥에서 위로 올라가 실내 온도를 높여서 전체적인 보온을 유지한다. 이것을 구들장이 따뜻함을 보존한다고 해서 구들문화라 부르기도 한다. 유럽의 벽난로는 내부의 열기가 외부로 손실되는 양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외부 단열재를 시공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건물의 벽을 공유하여 붙이는 방식이 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베네치아의 경우에 모두 해당된다. 아드리아해 석호의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석호에 말뚝을 박아 건물을 올린 연약한 지반을 보존하며 추운 겨울을 지낼 건물 내부의 단열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필요충분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베네치아 건물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열었다.
대문이라고 했지만 마치 현관문 같은 입구다. 1층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 것도 없었고 사용한다면 창고 용도일 것 같았다. 좁은 계단을 통해서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들이 며칠간 머물 방는 2층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우리를 반긴다. 방과 거실은 깨끗하고 아늑했다. 파울로 씨는 방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바닥의 대리석이 캐리어에 의해 긁히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짐을 풀고 창문 커튼을 젖혔더니 바로 앞에 건너편 집이 보였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지만 그 집의 창문도 커튼이 닫혀 있었다. 커튼이 없으면 서로의 사생활이 노출될 정도다. 사생활을 보호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 창문의 커튼을 닫고 생활해야 했다.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의 집들이 마주보고 있으니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예사인 듯 싶다. 만약에 두 집의 사람이 창가로 와서 커튼을 열었을 때 서로 마주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가볍게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면 커튼을 도로 닫고 돌아서야 할까?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니 소운하가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상점은 벌써부터 불을 밝혔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큰 길이 아니어서 그런지 가로등이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건물의 벽에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상가들은 운하쪽으로 식탁을 차려놓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서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 여행은 관광지를 구경하며 다니는 것도 중요하만 그 못지않게 동행한 사람과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것도 좋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잘 안된다. 고쳐보려고 노력하지만 매양 실패하고 만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다.
탁자와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땅바닥에 퍼질러 앉거나 서서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야외용 비닐 매트도 없는 그냥 맨바닥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그런가 하고 보았더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낭만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서서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내가 불편했다. 내 염려와는 달리 그들은 일상적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어울려 즐기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그런 이유를 알게된 것은 시간과 날짜가 한참 지난 후였다.
흔히들 베네치아를 '물의 도시'라 부른다.
물 위에 집을 짓고 살다보니 그런 소리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새파란 바닷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베네치아는 불규칙적이지만 바닷물이 범람하여 해수면을 높이면 거리가 바닷물로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멀쩡한 거리가 갑자기 바닷물에 침수된다는 사실이 상상이나 될까? 범람하는 물의 수위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해수면이 110cm를 초과하면 아쿠아 알타(Acqua alta)로 규정한다. 아쿠아 알타는 '높은 물'이란 의미다.
베네치아의 해수면을 높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로 조수간만의 차로 만조 수위가 높아지는 것이다. 지구 자전의 원심력과 달과 태양의 중력으로 인한 만유인력에 의해서 만조(밀물)와 간조(썰물)가 발생한다. 베네치아가 있는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는 한국의 서해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서해보다는 아드리아해가 더 좁은 편이다. 한국의 인천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의 거리가 대략 370km인데 반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슬로베니아 코페르 사이의 거리는 약 110km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발생하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정도를 알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조수간만을 생각한다면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시로코(Sirocco) 바람이다. 시로코는 아라비아나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지중해성 열풍으로 3월과 11월에 최고조에 이른다. 특히 3월에 두 사막에서 시작되는 시로코가 아드리아해를 가로질러 불면 바닷물을 북쪽인 베네치아쪽으로 밀어 올리는데 이때 밀물과 결합하면 아쿠아 알타 현상이 발생한다.
셋째로 저기압의 영향이다. 엄격히 말하면 지중해성 온대저기압은 아쿠아 알타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다만 온대저기압은 겨울에 지중해의 편서풍 영향으로 기온이 온화하고 비가 자주 내려 우기철을 맞이한다. 이런 기후가 간혹 조수간만의 차와 겹쳐질 경우 배네치아가 침수된다. 이때를 일컬어 비로 인해 홍수가 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침수다.
넷째로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의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지구온난화 현상은 계속되었고 근래에 들어 북극의 빙하와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해발 고도는 거의 1m에 불과하다. 언제라도 침수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가 않다. 또한 베네치아의 지표면이 점점 낮아지는 지반 침하 현상은 멀지 않은 미래에 베네치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 피자집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디고 간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곳이 음식점일 경우에는 맛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피자 가게 이름은 Pizzeria da Zorma였다.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니 구글 리뷰가 무려 4.8이었다. 가게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니 아주 작았다. 오로지 테이크아웃으로만 판매하고 있었다. 그 속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속된 말로 바글바글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내와 나는 피자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 먹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기다려야 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무려 1시간을 넘게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주변을 걸으면서 구경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지만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모두 현지인은 아닐테고 관광객이라는 생각을 하니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베네치아 시는 2025년 4~7월의 주말 동안(4월은 2주 연속)에 54일간 한시적으로 본섬을 여행하는 '당일치기 방문' 관광객에게 5유로의 입장료를 부과했다. 성수기에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수요 억제 정책으로 시행한 것이었다. 단 베네치아 시의 본섬에서 숙박하는 사람은 입장료 납부가 면제되지만 사전에 예약하고 QR코드를 다운 받아야 하며, 입장권 QR코드 미소지로 검문 중에 적발되면 50~300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간에 베네치아를 방문한 당일 관광객은 43만8,000명 가량이었고 이들이 지불한 입장료는 219만 유로였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33억 원이다. '제발 베네치아로 오지 마세요. 오시면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라며 떠밀어 내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으니 베네치아는 과연 복 받은 도시일까? 아니면 불행한 도시일까?
주문한 피자를 받아 들고 숙소로 들어가 저녁 대신에 먹었다.
이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후에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피자를 사 먹었지만 베네치아 da Zorma의 여운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이탈리에서 처음으로 먹었던 피자 맛의 신선한 충격 때문이었을까?
피자는 한국에서도 가끔씩 먹었다.
대부분 미국식의 투박하게 만든 것이거나 한국형의 잡탕스러운 방식으로 만든 피자를 사 먹었다. 그런데 오늘 먹은 피자는 얇은 반죽에 토핑은 아주 단순하고 심플한 마르게리타 피자였다. 이렇게 단순한 조합에서 어떻게 그런 심오한 맛이 나올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