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운하와 골목길의 풍경
# 기지개를 켜는 아침 골목길
아침은 늘 새롭고 활기차다.
상점들은 간밤의 열기를 보듬고 긴 잠에 빠져 있지만 사람들은 가려고 하는 목적지를 향해 바쁜 걸음을 움직인다. 베네치아는 운하와 골목길이 함께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특이한 풍경이다. 대운하는 하나지만 소운하는 여럿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운하를 따라 운행하는 교통 수단인 수상 버스가 다니고 정류장이 있어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기도 하다. 관광객을 유혹하는 곤돌라도 좁은 운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환경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적응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침 햇살은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건물은 높지 않지만 서로 붙어서 길게 늘어서 있기에 햇빛을 막고 있다. 5월이지만 쌀랑한 것은 이런 내 마음 탓일까? 그림자를 벗어나 햇살을 찾아가려고 해도 미로 같은 골목길은 끝날 줄을 모른다. 소운하를 따라 걷다 보니 건물이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층 공간을 비워 두고 기둥을 설치하는 필로티는 20세기 초에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유행시키지 않았던가?
베네치아 건물들은 이미 그 이전에 만들어졌다.
건축 양식은 비잔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으로 변화했어도 1층의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케이드 형식의 아치형 기둥을 외부에 촘촘히 설치함으로써 예술성과 실용성을 살리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베네치아는 처음부터 해양으로 진출하여 무역과 상업을 발전시킨 나라다. 대운하를 따라 수많은 선박들이 오가며 수출할 물건을 싣고 수입한 제품을 건물에 하역했다. 따라서 건물의 1층을 하역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아치형의 기둥으로 개구부를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아치형의 기둥 사이에 운하쪽으로 계단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용도다. 구태여 필로티 구조라 하지 않아도 베네치아 사람들은 삶의 필요성으로 건물 1층에 아치형 기둥을 세웠던 것이다.
골목길은 미로처럼 복잡하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방향 감각은 이내 상실되고 만다. 간혹 넓은 거리에서 특별한 조형물이나 건물을 보면 잠시 기억이 나다가도 다시 골목길로 접어들면 미아가 된다. 그렇다. 베네치아 머물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바로 거리의 미아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저녁에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갈 수 없다면 어찌될까?
둘째 날 저녁에 그런 아슬아슬한 일이 일어날 뻔 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5%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더군다나 보조 배터리도 챙기지 않았었다. 휴대폰이 꺼지면 구글맵은 무용지물이 된다. 숙소까지 가려면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았는데 골목길을 가면서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애태우며 종종 걸음으로 바삐 걷는데 눈에 익은 사람이 앞서 가고 있었다. 파울로 씨였다.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숙소까지 거의 가까이 왔지만 파울로 씨 덕분에 바로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탈리아 여행이 끝날 때까지 휴대폰 충전은 물론이고 보조 배터리까지 완전히 충전해서 가방에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 눈길을 사로잡는 운하와 건물들
소운하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젖줄이자 외지 관광객에는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현장이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운하를 따라 세워진 건물들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건물들은 소운하로 흐르는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외벽 아래는 조수간만의 차에 따른 물높이 흔적이 꽤 높아서 만조 때는 건물의 문까지 물이 닿을 정도다. 물에 잠겼던 부분에는 해조류의 이끼가 덕지덕지 붙어서 시간의 나이테처럼 보인다. 이따금씩 곤돌라가 지나가면 찰랑거리는 물의 파동은 건물 벽에 부딪혀 작은 포말을 일으킨다. 나는 이런 곳에서 그냥 살아라고 해도 도더히 못 살 것 같다.
그나마 대운하쪽은 좀 낫다.
소운하 주변에는 서민들이 살고 있었다면 대운하 주변에는 귀족들이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반 시설이 월등히 좋게 만들어져 있다. 건물의 높이도 높고 외관은 한층 멋을 부렸다. 때로는 시대적인 건축 양식이 건물에 녹아 있다. 넓은 운하에 배들을 정박하기도 용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 버스가 지나가면 운하의 바닷물이 인도쪽으로 넘쳐 흐른다. 운하를 따라 걷던 아내가 질겁을 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껄껄껄 웃었더니 못마땅한 듯 눈을 흘긴다.
여행을 하면서 나라는 달라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식이나 인식은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개인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삶의 질과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이다. 그것이 곧 행복의 척도로 이어지진 않아도 최소한의 가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이었다. 독일을 여행하면서 한 노파가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그 안에 든 음식 찌꺼기를 꺼내 먹는 것을 보았다. 충격적이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그것도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 나라에서 남루한 행색의 거지를 본 것이다. 그 노파가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에 대한 전후 속사정은 몰랐지만 그 이면에 잠재된 문제는 경제적 안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약 3개월 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노인들은 부부가 함께 손을 꼭 잡고 여행을 다녔고 결혼한 부부는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젊은이도 보기 좋았다. 행복에 대한 감정은 주관적이라 저마다 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웃으며 쉬는 그 순간이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 성가시고 불편했던 운하의 다리
베네치아에는 소운하를 건너는 다리가 참 많다.
대운하는 운하의 폭이 길어서 긴 다리가 필요하므로 현재 4개만 설치되어 있다. 반면에 소운하의 다리는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중요한 길목이다. 그래서 다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 숫자 또한 당연히 많다. 근거는 알 수 없으나 대략 400여개 라고 한다. 다리는 배가 다닐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만들어져서 낮은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낮은 계단이 허리가 아픈 내겐 너무나 성가시고 불편했다. 며칠 안되는 머뭄이었지만 다리를 계단으로 하지 말고 경사형으로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욕심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불편할 것 같았다.
베네치아 운하에 건설된 다리와 관련해서 이런 일도 있었다.
2019년 8월 이탈리아 법원은 베네치아 대운하에 코스티투치오네 다리(Ponte Costituzione)를 설계한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에게 벌금 7만8천유로를 내라고 판결했다. 이유는 다리의 강화유리 계단이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다니다 미끄러져 다치고, 장애인의 휠체어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비판은 결국 다리의 부실 설계 논란으로 번져 법정 다툼까지 이어졌고 법원은 대중의 비판에 손을 들어주었다. 건축사가 벌금을 지불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다리가 완공된 이후로 다리에 대한 문제점은 여전히 제기되었고 시는 논란이 되는 부분을 수정하며 다리의 부재를 철거하여 교체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소운하에 놓인 다리에 올랐다.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불편함이 있지만 당신도 그 위에 올라서 주변을 한번 둘러 보라. 베네치아가 왜 베네치아인지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건물과 물 그리고 하늘이 그렇게 조화로울 수가 없다. 이처럼 베네치아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장소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