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
ㅣ대성당 중앙의 예수 승천의 돔(Cupola dell’Ascensione di Gesù)ㅣ
발걸음은 성당의 중앙으로 향해 간다.
내 눈은 성당 안을 가득 채운 황금색의 모자이크에만 쏠렸던 때문일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정해진 통로만 따라가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성당의 기본적인 모습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성당은 본래 중앙에 신도들이 앉을 수 있는 긴 탁자 의자가 양쪽에 놓여져 있고 중앙 통로 끝에는 멀리 중앙 제단이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산 마르코 대성당은 그렇지 않다. 중앙은 빈 공간으로 두었고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도록 통제했다.
왜 그럴까?
여행은 항상 그런 물음을 가지면서 보아야 문화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과 시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고, 그 의문의 답을 통해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물음에 대답하려면 베네치아의 지리적 상황과 종교적인 예법을 알아야 한다.
베네치아의 지리는 여러 차례 말했듯이 모든 건물들이 석호라는 갯벌 구덩이 위에 지어졌다. 따라서 건물들은 기본적으로 지반이 약하고 세월이 갈수록 침하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항구와 가까운 산 마르코 대성당 근처는 아쿠아 알타(Acqua Alta)로 성당 바닥까지 물이 차오르는 경우가 잦다. 그러잖아도 대성당 바닥이 지반 침하로 울퉁불퉁해진 상태에서 만약에 매일 수백 명의 관광객이 바닥의 대리석 모자이크를 밟고 지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문화재의 파손뿐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교회의 전례 행렬의 차이이기도 하다. 로마 가톨릭의 행렬은 입구에서 제단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행렬 방식이라면, 비잔틴 교회는 사제가 복음서나 성체를 들고 제단에서 나와 신도석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단으로 들어가는 순환적 이동 방식이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은 신도석의 중앙 통로를 따라 이동하면 되지만, 비잔틴 교회는 성당 내부의 여러 곳을 이동하면서 축복하기 때문에 중앙에 고정된 의자가 있으면 행렬 이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그것이 성당 중앙에 의자가 없는 이유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고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헤겔은 그의 저서 『대논리학』에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도 했다. 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교회의 행렬 방식의 차이로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은 의자에 앉아서 사제의 강론을 듣지만 비잔틴 교회는 의자가 없는 신자석에 자유롭게 서서 기도를 드린다.
산 마르코 대성당이 가지는 특수성도 한 몫한다. 대성당은 비잔틴 교회의 방식을 따른 건축 양식이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를 위한 성당이기도 했다. 따라서 도제는 종교적인 주요 축일이나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면 의자가 없는 모자이크 대리석 바닥의 넓은 중앙을 행진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다.
이야기가 또 샛길로 빠졌다.
대성당의 중앙 지점에는 들어갈 수 없기에 천장에 있는 돔의 모자이크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평면도를 보면 5개의 돔은 중앙에 십자형 모양으로 있다. 그 이외에 작은 돔들이 작은 원형으로 여러 개 있지만 다 보는 것이 버겁다. 아래 평면도의 E가 중앙 돔이고 천장에는 예수 승천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다.
예수 승천의 천장 모자이크를 예수 승천의 돔(Cupola dell’Ascensione di Gesù) 혹은 승천의 돔(Cupola dell’Ascensione)이라 부른다. 대성당 평면도상의 십자형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신학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대성당의 정점을 상징하고 있다.
모자이크의 중앙에는 네 명의 천사가 떠받치고 있는 둥근 원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에 싸인 채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다. 이어서 중간 띠 넓은 곳에는 원을 따라 12사도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두 명의 천사들이 서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승천을 경이롭게 지켜보는 증인들이다. 그리고 바깥에 있는 외곽 띠에는 돔의 창문이 타원형으로 가지런히 있고 그 사이에 신앙의 핵심 가치인 덕(Virtues), 희망(Spes), 믿음(Fides), 사랑(Caritas) 등을 여성의 모습으로 의인화하여 배치했다. 그림은 이미지 작업이기 때문에 사람이나 사물을 의미한는 상징물을 함께 그린다. 그것이 바로 의인화다.
예수 승천의 돔 주위 사면의 펜던티브(Pendentives)에 그려진 모자이크도 눈여겨 볼 만하다.
네 개의 삼각형 벽면에는 기독교의 기초를 닦은 4복음서 저자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 각각 의자에 앉아 집필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메지지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이다.
4명의 복음사가 아래에는 창세기 2장 10~14절에 나오는 4개의 강을 그렸다. 복음사가의 의자 아래에 항아리에서 물을 쏟아붓고 있는 인물로 의인화한 모습이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네 개의 강'을 상징하는 피손(Pison), 기혼(Gihon), 티그리스(Tigris), 유프라테스(Euphrates)다. 이것은 4복음서의 거룩한 말씀이 강물처럼 온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ㅣ오순절 돔(Cupola della Pentecoste)ㅣ
오순절 돔은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 강림의 내용을 형상화하고 있다. 기독교의 오순절은 예수가 부활하고 50일째 되는 날 성령이 강림한 것에 유래를 둔 축일이다.
돔의 모자이크는 대성당의 서쪽 돔으로 관람 통로에서 약간 비켜나 있다. 무엇이든 그렇듯이 시야에서 비켜난 것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친다. 내 시야에 절반만 들어온 오순절 돔의 모자이크 그림이 그랬다. 규율은 질서를 위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규율은 행동을 제약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하다.
모자이크의 중앙에는 인물 대신 보석으로 장식된 텅 빈 보좌가 그려져 있다. 보좌 위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앉아 있고 의자에 놓인 복음서에서 12줄기의 불꽃(성령)이 뿜어져 나온다. 불꽃은 돔의 원형을 따라 앉아 있는 12사도의 머리 위로 각각 떨어지고 있다.
오순절 돔의 외곽 띠에는 돔의 창문 사이사이에 성령 강림의 기적을 목격하고 복음을 전해 들은 세계 각지의 민족들이 2명씩 짝을 지어 서 있다. 이들은 각각의 다양한 민족 의상을 입고 있어서 세계 여러 지역과 민족을 상징한다. 그것은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ㅣ임마누엘 돔(Cupola dell'Emmanuele)ㅣ
대성당 동쪽에 있는 돔으로 임마누엘 돔이라 부른다. 돔의 모자이크 중앙에는 수염 없는 청년 모습의 젊은 그리스도가 있다.
임마누엘은 구약 성경 이사야서 7장 14절과 8장 8절에 그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다. 임마누엘은 '우리들과 함께 있다'는 임마누(Immanu)와 '하나님'이라는 엘(El)이 합쳐진 말로 그 의미는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와 구약 성경의 예언자인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오바댜, 하박국, 하박국, 호세아, 요나,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이 원형으로 서 있다. 예언자들의 손에는 각자가 그리스도가 온다고 예언한 구절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ㅣ성 베드로 예배당(Cappella di San Pietro)ㅣ
성 베드로 예배당은 주 제단 앞의 중앙 통로에서 볼 때 성 클레멘테 예배당과 서로 대칭을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 클레멘테 예배당이 남쪽 익랑 끝에 있다면 성 베드로 예배당은 북쪽 익랑 끝에 있다. 두 예배당은 공간적으로 대비를 이루고 있지만 예배당을 사용하는 사람의 구분도 명확했다. 즉, 성 클레멘테 예배당이 도제가 궁전에서 성당으로 들어오는 통로에 있어서 도제가 사용한 공간이었다면, 성 베드로 예배당은 베네치아 총대주교가 전례를 집전하거나 머무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성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12제자로 로마 교회의 초대 교황을 지냈으며 네로 황제의 박해 때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였다. 산 마르코 대성당에는 성 베드로 예배당을 신성한 구역인 주 제단 바로 옆에 배치함으로써 베드로에 대한 공경과 권위를 높였다. 그것은 예배당을 장식해 놓은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제단 상단에는 성모자와 성 베드로를 비롯한 성인들의 정교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으며 멀리서 보아도 조금은 특별해 보인다. 조각은 14세기 베네치아 조각가 델레 마세뉴(Jacobello and Pier Paolo dalle Masegne) 형제의 작품이다.
# 대성당의 주 제단(Altare Maggiore)
산 마르코 대성당의 중앙 통로에 왔지만 뭔가 이상하다.
통로의 양쪽에는 허리까지 오는 철제 구조물이 설치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 성당의 서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오면 남북으로 열주 회랑이 있고 가운데는 빈 공간이다. 사방 어느쪽이든 막혀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 이유는 문화재 보호 때문이라고 앞에서 이미 이야기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성당의 중간까지 들어왔어도 성당의 중심인 주 제단이 보이지 않는다. 없는 것은 아닌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일까? 중앙 통로에서 보면 성당의 동쪽에 주 제단이 있지만 그 모습은 일반적인 성당이나 교회와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형태의 성당 제단을 본 적이 없다. 일부러 꽁꽁 숨겨놓은 것 같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주 제단은 신도들이 있는 공간보다 한 단 높은 곳에 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5개의 원형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 위에는 제단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으나 문은 아니다. 주 제단을 막고 있는 구조물은 전체적으로 보면 아래쪽은 담처럼 폐쇄된 구조이고 중간은 개방된 공간의 사이사이에 8개의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쪽에는 받침대를 설치하여 무려 15개나 되는 성상을 올려 놓았다. 이것을 이코노스타시스(Iconostasis)라고 한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주 제단 관람은 이렇게 보는 것으로 끝이다.
일반 관람객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안쪽에도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그렇다. 산 마르코 대성당 주 제단이 있는 동쪽 끝에는 산 마르코의 유해가 지하 크립타에 있으며 제단인 팔라 도로(Pala d'Oro)와 치보리움(Ciborium)이 있고, 사제들이 머무르고 미사를 집전하는 공간인 프레스비테리오(presbiterio)가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는 일반 관광객은 출입 금지다. 다만 황금 제단화가 있는 팔라 도로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이때는 추가적인 입장권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
ㅣ두 개의 설교단 - 복음서 설교단(Ambo del Vangelo)과 서신서 설교단(Ambo dell’Epistola)ㅣ
대성당의 성화벽인 이코노스타시스(Iconostasis) 아래의 칸첼로(Cancello) 양쪽에 두 개의 설교단이 놓여져 있다. 하나는 관람 통로 북쪽에 있는 낮고 단순한 모양의 서신서 설교단(Ambo dell’Epistola)이고, 다른 하나는 남쪽에 있는 다단으로 높고 멋진 모양의 복음서 설교단(Ambo del Vangelo)이다.
단층의 아담한 서신서 설교단은 주로 성경 속 사도들의 서신(Epistle)을 낭독할 때 사용되었고, 2층으로 된 복음서 설교단은 미사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복음서(Vangelo)를 낭독할 때 사용했다. 이것은 같은 설교단이지만 두 설교단은 중세 전례의 위계 구조를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사도들의 서간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고 높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인식으로 설교단의 구조와 장식도 서신서 설교단에 비해 복음서 설교단이 훨씬 더 높고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다.
ㅣ십자가 제단(Altare detto del Crocifisso)ㅣ
대성당 중앙 제단의 북쪽 측랑에는 피라미드 모양의 지붕을 가진 치보리움(Ciborium) 구조물이 있다. 이것은 제단을 보호하고 성스러운 공간임을 표시하는 덮개이다. 제단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진귀한 흑백 대리석과 줄무늬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십자가 제단 안에는 기적의 십자가인 목조 십자가가 있다. 이것은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 베네치아로 가져온 전리품 중 하나였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290년경에 누군가 분노에 차서 이 십자가를 칼로 찔렀는데, 그 상처에서 실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로 기적의 십자가로 불리며 베네치아 시민들의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