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
대성당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아내가 대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성당 바깥에 있는 외관의 문들을 구경했었다. 줄이 성당 입구에 가까워지자 아내가 빨리 오라고 전화를 했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표를 예매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있으니 예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5월의 베네치아는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유명한 산 마르코 대성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온은 초여름 날씨지만 온도차가 들쑥날쑥했다. 더운가 싶다가도 추위가 엄습할 때도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긴팔 옷, 짧은팔 옷, 두꺼운 옷, 얇은 옷이 혼재해 있었다.
# 대성당 천장의 황금 모자이크
산 마르코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압도하는 것은 황금빛 모자이크다. 그 때문에 대성당을 황금의 성당(Chiesa d’Oro)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당의 천장과 벽면을 뒤덮은 약 8,000㎡에 달하는 방대한 모자이크는 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모든 것이 11세기~13세기에 제작되었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유지하고 복원해 온 결과물이다.
알다시피 산 마르코 대성당에는 5개의 돔이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이는 5개의 돔이 내부에서는 3개로만 보인다. 성당의 구조와 시각적인 착시 때문이다. 대성당의 돔을 하늘에서 보면 중앙 돔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1개씩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성당 내부에서는 입구로부터 중앙 제단으로 가는 통로를 걸으면서 천장의 돔을 쳐다보면 중앙 돔을 중심으로 동서쪽 돔이 하나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남북으로 뻗은 익랑에 2개의 돔이 있지만 시선에 잘 들어오지 않아 그냥 지나치게 된다.
5개의 돔에는 각각의 이름을 가진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오순절 돔(Cupola della Pentecoste), 예수 승천의 돔(Cupola dell’Ascensione di Gesù), 예언자 돔(Cupola dei Profeti), 성인들의 돔(Cupola dei Santi), 산 조반니의 돔(Cupola di San Giovanni)이 그것이다.
성당 내부에서 이런 돔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형의 모자이크 그림과 그 가장자리에 창문이 보이는데 그것이 돔인 것이다. 하지만 대성당의 내부에서 보는 천장 모습은 매우 중층적인 구조일 뿐 아니라 낮은 돔들도 있어서 처음에는 돔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ㅣ창세기 돔(Cupola della Genesi)ㅣ
산 마르코 대성당의 서쪽 중앙문으로 들어가서 현관 회랑인 나르텍스(Narthex)를 걸어가면 천장에 창세기 돔(Cupola della Genesi) 모자이크가 있다. 사실 이 모자이크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그림보다 돔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창세기 돔은 건축 구조상 낮고 작은 돔 형태라고 한다. 내 눈에는 아무리 보아도 그저 평면에 불과한데 말이다.
입구 회랑의 천장에 창세기가 먼저 나오는 것은 기독교 건축의 공간적인 서사 때문이다. 그림은 글의 다른 표현이다. 글을 모르고 읽지 못하더라도 그림을 보면서 듣고 익혔던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ㅣ성 바르톨로메오의 인도에서 전도 활동과 순교ㅣ
성당 안의 모자이크는 천장과 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도 있다. 두 모자이크 사용된 재료와 제작 기법이 다르다. 천장과 벽의 모자이크는 유리와 금이 주 재료이고 바닥의 모자이크는 돌과 대리석을 주로 사용했다.
인간과 종교는 역사 이래로 불가분의 관계였다. 강한 존재를 숭배한 다신교나 절대적인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는 결국 인간이 지닌 나약함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막연한 위험에 대한 불안감 등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신적인 걱정과 공포를 갖게 만든다. 우리들은 그런 초조함과 불안감에 맞닥뜨렸을 때 공포감을 떨쳐낼 수 있는 대상을 필요로 하며 찾게 된다. 그 상대가 인간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게 되는데 바로 종교다. 종교는 개인적인 신념과 믿음의 소산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존재의 신에 대한 공동체의 의지와 의식이기도 하다. 종교가 인간으로 하여금 위대한 문화를 생성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성 바르톨로메오는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으로 아르메니아와 인도 등에서 전도 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당한 뒤에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죽음은 찰나의 순간에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그렇지 않고 육체적인 고통과 고문 속에서 이어지는 죽음이나 식물인간처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상실된 채 연명되는 삶은 모두가 불행하다. 이교도에 대한 탄압이라 하더라도 피부를 벗기는 처벌은 형벌 중에서도 악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종교적인 신념이다. 종교를 가졌기에 순교자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죽음과도 같은 고통도 넉넉히 참을 수 있지 않았을까?
ㅣ성 클레멘테 예배당(Cappella di San Clemente)ㅣ
성 클레멘테 예배당은 대성당의 남쪽 익랑에 위치한 도제의 성소로 도제와 그의 가족 그리고 고위 관료들이 기도를 올리는 전용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성 클레멘트(St. Clement)는 순서에 이견이 있으나 제4대 교황을 지냈다. 그는 4세기 초에 기록된 외경에 따르면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 때 로마에서 케르소네소스 강으로 추방되어 석재 채석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죄수들이 물이 부족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땅을 파서 식수를 퍼올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러자 이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황제는 클레멘트를 체포하여 닻에 묶어 흑해로 던졌다. 그후 클레멘트는 선원의 수호성인으로 인정되었고 해상 무역 국가였던 베네치아에서는 성 클레멘테를 중요한 성인으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