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은 단순히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치와 종교 그리고 문화의 중심이었던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이름처럼 이 성당은 공화국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를 봉헌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828년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성 마르코의 시신을 훔쳐 베네치아로 가져왔다. 시신을 인도받은 사람은 종교 지도자인 베네치아 주교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인 도제 주스티니아노 파르티치파치오(Giustiniano Participazio)였다. 그는 상인으로부터 성 마르코의 유해를 받아서 요새화된 건물 카스트룸(Castrum)의 모퉁이 탑에 안치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도제가 죽으면서 아내와 후계자인 남동생에게 유언장을 통해 성 마르코를 안치할 교회를 카스트룸과 성 테오도로 교회 사이에 세우라고 했고, 그 유언에 따라 공사를 시작한 교회는 836년에 완공되었다.
성인 마르코의 유해를 봉헌하기 위해 조반니 파르티치파치오가 세웠던 교회는 976년 도제 피에트로 4세 칸디아노(Pietro IV Candiano)에 대항하여 일어난 베네치아 민중 봉기가 궁전을 공격하면서 교회도 함께 화재로 파손되었다. 그것을 칸디아노를 이어 도제로 선출된 피에트로 1세 오르세올로(Pietro I Orseolo)가 사비를 들여서 2년만에 원래대로 복원했다.
그후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진출이 활발해지고 여러 나라와 상업 교역을 통해 국력이 증대되면서 시민들의 자부심도 커졌다. 이에 도제 도메니코 1세 콘타리니(Domenico I Contarini)는 공화국 수호성인 성 마르코를 안치한 교회의 규모가 발전한 국가의 위상을 담아내기에 너무 작다고 판단하여 국격에 걸맞는 완전히 새로운 성당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베네치아가 산 마르코 대성당 건립의 롤 모델로 삼은 것이 콘스탄니노폴리스에 있는 성 사도 교회(Chiesa dei Santi Apostoli)였다. 공사 기간은 무려 31년이 걸려서 1094년에 이르러서야 완공되었으며 그해 10월 8일에 도제 비탈레 팔리에로(Vitale Faliero) 주관 아래 성 마르코의 유해를 산 마르코 대성당에 안치하는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구전에 따르면 성당을 짓기 위한 공사를 하던 중에 분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성 마르코의 유해가 이 봉헌식 직전에 기적적으로 다시 발견되어 대성당 지하실에 안치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완성된 성당이 현재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습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정면 파사드의 문은 중앙문을 포함하여 모두 5개다.
문들은 아치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의 위쪽 루네트(Lunette)에는 성 마르코의 유해 이송과 관련된 중요한 모자이크화들이 그려져 있다. 광장에서 대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제일 오른쪽 문은 성 안드레아의 문(Porta di Sant'Andrea)이고 두 번째 문은 성 조반니의 문(Porta di San Giovanni)이며 정면 중앙에 있는 큰문은 포르타 첸트랄레(Porta centrale)다. 중앙문 왼쪽은 성 라자로의 문(Porta di San Lazzaro)이며 제일 왼쪽 문은 성 알비니오의 문(Porta di Sant'Albinio)이다.
중앙문을 제외한 4개의 문 루네트에는 성 마르코의 시신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탈취하여 베네치아로 가져와 산 마르코 대성당에 안치하기까지의 과정을 모자이크화로 그려 놓았다.
그 이외에도 산 마르코 대성당은 북쪽과 남쪽에도 문들이 있다.
북쪽 측면에는 꽃의 문(Porta dei Fiori), 성 게오르기우스 문(Porta di San Giorgio), 성 알렉산드로스 문(Porta di Sant’Alessandro)이 있다. 남쪽 측면에는 세례당 문(Porta del Battistero), 성 클레멘스의 문(Porta di San Clemente)이 있으며 포르타 다 마르(Porta da Mar)도 있었으나 16세기 초에 벽으로 막았다.
ㅣ성 조반니의 문(Porta di San Giovanni)ㅣ
성 조반니의 문은 대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오른쪽에 있는 문이다. 이 문을 통해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 동선이 남쪽 구역에 위치한 성 요한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Battista)과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시민들이 문을 들락거리면서 관습적으로 불리던 성 조반니가 문의 이름으로 명명된 것이다.
문의 루네트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성 마르코의 유해를 탈취(Il trafugamento del corpo di San Marco da Alessandria)하여 이송하려는 모자이크화가 그려져 있다. 베네치아에서 이집트로 건너간 두 상인 부오노 다 말라모코(Buono da Malamocco)와 루스티코 다 토르첼로(Rustico da Torcello)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회에 안치되어 있던 성 마르코의 시신을 훔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성 마르코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가져가기 위해 이집트 세관을 무사히 통과해야만 했다. 궁리를 짜낸 두 상인은 이슬람교의 종교적 율법과 지역의 위생적 환경에 착안했다. 이슬람교의 쿠란은 경전에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하는 명문이 있고, 이슬람인들은 지역적인 고온 다습한 기후와 열악한 위생 환경으로 쉽게 부패하고 기생충에 감염되는 돼지고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부오노와 루스티코는 성 마르코의 유해를 담은 상자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서 위장을 하고 상자를 배로 옮겼다. 그림 속에서 이슬람 관리들이 돼지고기를 보고 코를 쥐며 혐오감을 드러내는 모습은 그런 현실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루네트의 모자이크화는 1660년경에 피에트로 베키아(Pietro Vecchia)가 복원했다.
ㅣ성 안드레아의 문(Porta di Sant'Andrea)ㅣ
성 안드레아의 문은 대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두 번째에 있는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서 대성당의 오른쪽 측면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산 마르코 대성당 남쪽 측면에 있는 성 안드레아 예배당(Cappella di Sant’Andrea)과 이어진다. 안드레아는 베드로의 형으로 초기 사도이다.
안드레아(Andreas)는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던 어부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열두 사도 중 첫 번째 제자다. 안드레아는 예수를 만난 후 형제인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하면서 그를 예수에게 인도했다. 안드레아는 그리스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로마 총독에 의해 처형되었는데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성 안드레아의 문 루네트에는 베네치아에 도착한 성 마르코의 유해(L'arrivo del corpo di San Marco a Venezia)라는 이름의 모자이크화가 그려져 있다. 그림은 이집트 세관을 통과한 성 마르코의 유해가 배에 실려서 베네치아 석호의 항구에 도착한 장면을 묘사했다. 그림의 왼쪽에는 유해를 싣고 온 배의 돛과 선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성직자와 베네치아 귀족들이 성 마르코의 유해가 담긴 상자를 맞이하기 위해 모여 있다. 그림은 17세기 중반에 피에트로 베키아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ㅣ포르타 첸트랄레(Porta centrale)ㅣ
산 마르코 대성당 정면 파사드의 중앙에 있는 큰문으로 중앙문이라 한다. 중앙문에 대한 표기는 포르타 마조레(Porta Maggiore)와 포르타 첸트랄레(Porta centrale)가 있는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구별하는 경우도 있었고 구별하지 않은 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용어는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다. 포르타 마조레는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 성문 이름 등에 사용하였고, 포르타 첸트랄레는 일반적인 건축 용어로 중앙문 또는 중앙 출입구를 뜻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라는 의미에서 포르타 첸트랄레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기한다.
중앙문의 루네트에는 최후의 심판(Giudizio Universale)이 그려져 있다. 대성당 정면의 문들 위에 그려진 모자이크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상태가 훼손되어 지속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중앙문 모자이크를 1836년에 리보리오 살란드리(Liborio Salandri)가 제작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그림 중앙에 그리스도가 손을 들어 축복과 심판의 몸짓을 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좌우에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자비를 구하는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상 마지막 날의 심판' 내용을 모자이크로 그린 것이다.
중앙문 루네트 위의 테라스에는 네 마리의 말 청동상이 보인다. 다시 그 위에는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산 마르코 사자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정면 파사드의 가장 높은 곳에는 성 마르코 동상이 서 있다. 마르코 동상 좌우에 여섯 명의 천사들이 호위하고 있으며, 그 아래 양쪽의 첨탑이 있는 니치(벽감) 안에는 복음사가로 보이는 인물상이 들어 있다. 이 조각 군상은 15세기 초에 피렌체 출신의 조각가 니콜로 디 피에트로 람베르티(Niccolò di Piero Lamberti)와 그의 아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ㅣ성 라자로의 문(Porta di San Lazzaro)ㅣ
대성당을 정면에서 보면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문이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에는 보수 공사를 위한 칸막이가 둘러 있어서 안을 볼 수 없었다.
이 문은 성 라자로에게 봉헌된 문으로 명명되었으며 루네트에는 도제가 성 마르코의 유해를 경배하는 장면(Il corpo di San Marco venerato dal doge)이 그려져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정면 파사드 모자이크는 원래 13세기에 제작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성 알비니오의 문 모자이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에 베네치아 정부는 17세기 중반부터 산 마르코 대성당의 공식 화가로 재직했던 피에트로 베키아(Pietro Vecchia)에게 대규모 모자이크 교체 프로젝트를 맡겨서 복원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모자이크 교체 프로젝트는 그후로도 계속되었다. 학술서나 미술사 기록에 따르면 성 라자로의 문 루네트에 그려진 '도제가 성 마르코의 유해를 경배하는 장면'은 1728년에 세바스티아노 리치(Sebastiano Ricci)가 밑그림을 그리고 레오폴도 달 포초(Leopoldo dal Pozzo) 제작했다고 한다.
ㅣ성 알비니오의 문(Porta di Sant'Albinio)ㅣ
산 마르코 대성당의 가장 왼쪽에 있는 문의 이름이다. 문의 이름은 성 알비니오와 직접적인 연관성보다는 중세 교회의 성인 명명 전통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이 문은 성 알비니오에게 봉헌하는 문'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알비니오 성인의 보호 아래 들어간다는 신앙적 기능성과 행위의 상징성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성 알비니오일까?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산 마르코 대성당 안에 성 알비니오와 관련된 제단이나 성물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세 시대의 단순한 명명 전통으로 이해한다.
성 알비니오의 문 위쪽 루네트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으로 옮기는 성 마르코의 유해(Traslazione del corpo di San Marco nella Basilica)를 묘사하는 모자이크화가 있다. 이 모자이크는 1265년에 그려진 원본으로 당시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그림 속의 대성당은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게 비교적 단순했던 초기의 파사드 구조와 비잔틴식 돔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모자이크를 그린 화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던 비잔틴 양식의 숙련된 모자이크 장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에 다른 4개의 문에도 그렸던 모자이크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훼손되어 17~19세기에 새로운 화가들이 그린 것에 비하면 성 알비니오의 문 루네트의 프레스코화는 매우 귀중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루네트의 황금색으로 두른 아치형 테두리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비문이 적혀 있다. 비문에서 말하는 그는 성 마르코다.
"Collocat hunc dignis plebs laudibus et colit hymnis, ut Venetos semper servet ab hoste suos."
"시민들의 찬양으로 그를 이곳에 모시고 찬가로 공경하나니, 그가 베네치아인들을 적으로부터 항상 지켜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