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08.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by 박태근

신 감옥 1층에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신 감옥 1층이다.

이곳에는 중범죄자들이 수용되는 공간이다. 그만큼 감옥 시설의 환경 구조가 좋지 않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방의 구조는 다른 층과 별 차이가 없다. 대체로 모든 감방들의 형식은 비슷한 구조다. 하지만 1층 감방은 2층이나 3층과는 달리 석호의 바닷물과 직접 접촉하는 면이어서 밑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인해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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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감옥의 1층에서 뭔가 색다른 구조물을 보았다.

다른 층에도 있었던 것을 모양이나 형태가 달라서 미처 보지 못했을까?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화장실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은 생활하면서 먹고 배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먹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먹은 것을 밖으로 배설하지 못하면 그 역시도 고통스럽다. 그래서 화장실은 필수적이다.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화장실의 모습을 1층 감방에서 보게 된 것이다.

문이 열린 감방 안으로 들어가니 안쪽에 뭔가 특이한 구조물이 있었다. 무릎보다 약간 높은 직사각형의 구조물은 그 안에 또 다른 사각형 모양의 홈이 파진 이중적 구조다. 바로 신 감옥의 감방 내부에 있는 고정식 화장실이다. 사람이 배설구 위로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면 가운데에 깊게 파인 공간으로 배설물이 떨어진다. 배설물은 수직 배수관을 통해 운하로 니가고 조수간만으로 바다 밖으로 배출된다.


그렇더라도 화장실의 홈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면 이곳을 통해 죄수들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 감옥을 설계한 건축가도 죄수들이 탈출할 수 없도록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먼저 윗 부분의 홈은 넓어보이지만 아래로 이어지는 수직 배수관은 이내 좁아지고 벽으로 나가기 위해 관이 굽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배설물이 내려가는 배수관은 직선이 아니라 ㄴ자형 곡선 구조가 연속되어 전체적으로 S자 모양의 굴곡을 이루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하수에서 올라오는 냄새와 오염된 공기의 악취를 차단하고 쥐나 해충이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굴곡진 부분에 바닷물이 고여 하나의 막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가 현대식 화장실의 트랩 구조라 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배수관이 석호와 만나는 지점에는 두꺼운 쇠창살을 촘촘하게 박혀 있어서 탈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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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구조물은 감방의 통로에 있는 것이었다.

오물배출구다. 이것은 감옥의 위생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감방에서 나온 오물이나 복도를 청소한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인 셈이다. 벽쪽에 붙어 있는 이유는 2층과 3층에서 배출한 오물이 벽의 관을 타고 이곳으로 모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배수구는 사각형으로 테두리를 만들었으며 안쪽을 보면 주변 바닥보다 약간 낮게 설계되어 있다. 또 석재로 된 원형 덮개를 씌워서 큰 쓰레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했을 뿐 아니라 아랫쪽에서 쥐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다. 사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매개하는 전염병인 페스트(흑사병)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쥐에 대한 공포가 심각했다. 따라서 베네치아 정부에서도 죄수들이 머무는 복도와 공용 공간의 위생 청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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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Cortile)과 우물(Pozzo)


신 감옥의 1층에는 사각형의 중정이 있고 그 중앙에 우물이 있다.

감방에서 중정으로 가는 문을 나서면 갑자기 확 트인 개방된 공간이 나타난다. 사방은 감옥의 벽으로 막혔지만 햇볕이 들어오고 스치는 신선한 공기가 콧등을 간질인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벌렁거리는 콧구멍으로 자연적인 들숨과 날숨을 만끽할 수 있다. 만약 죄수가 이 순간을 맞이했다면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신 감옥의 중정은 현대적인 교도소에서 본다면 운동장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 감옥에 갇혔던 죄수들은 중정으로 나갈 수 없었다. 탈옥의 염려로 죄수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중정의 관리를 위해 죄수들이 차출되어 보수와 청소를 위한 강제 노역을 할 때 잠시 있었을 뿐 그 이외에는 죄수들이 중정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중정의 중앙에는 우물이 있다.

우물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편리성을 강조했다. 지상에 돌출된 대리석으로 만든 벽 베라 다 포쪼(Vera da pozzo)에는 다른 곳에 있는 포쪼의 그것과는 달리 조각이 하나도 없다. 민무늬로 모양이 아쉬운 듯 해도 그렇다고 예술적 조형미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물의 뚜껑은 철로 만든 접이식이며 가운데에 두레박을 달 수 있도록 철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감옥에서 굳이 굳이 죄수들에게까지 멋을 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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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찰관의 방(Sala dei Censori)과 법률 검찰관의 방(Sala dell’Avogaria)


중정에서 다시 감방으로 들어왔다.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다시 2층과 3층으로 이어진다. 같은 건물이지만 보이는 모습은 내려올 때의 그 길이 아니다. 감옥이 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가끔 좁은 복도 저편에 사람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로처럼 얽힌 길을 찾아가는 것이 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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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올라간 3층에서 탄식의 다리를 지났다.

하지만 창문의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석호로 난 바다 모습이다. 들어올 때 보았던 창문은 분명히 운하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같은 모양이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무심코 지나쳤더라면 사소한 차이조차도 나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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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관의 방(Sala dei Censori)


탄식의 다리를 지나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면 통로는 감옥의 2층에서 궁전에 있는 감찰관의 방으로 이어진다. 감찰관의 방은 2명으로 구성된 감찰관이 활동하던 공간으로 이들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귀족과 공직자들의 행동과 도덕성을 감시하는 정부 기관이었다.


감찰관이 중요했던 이유는 베네치아의 정치 제도 때문이기도 하다. 도제를 비롯한 주요 공직자들은 선거와 선출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거나 혹은 관리들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사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그것을 막는 역할이 중요했는데 감찰관이 그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공화국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권력 감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감찰관의 방 벽에는 야코포 틴토레토의 아들인 도메니코 틴토레토(Domenico Tintoretto)가 그린 당시 재직했던 감찰관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감찰관들은 붉은색이나 검은색 옷을 입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해당 직책을 역임했던 인물들의 귀족 가문 문장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감찰관직이 곧 가문의 영광이었음을 상징하는 의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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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검찰관의 방(Sala dell’Avogaria)


감찰관의 방 옆에 법률 검찰관의 방이 있다.

앞에서 보듯이 감찰관(Censori)은 선거 부정이나 공직자 비리를 감시하는 국가의 도덕적, 윤리적 감찰 기관의 관리였다. 반면에 법률 검찰관의 방은 공화국의 법과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최고 법률 감독 기관이었다. 따라서 검찰관(Avogadori)은 이런 법 위반을 고발하고 기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단순히 감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소라는 검찰 기능까지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재판에서 판결이 내려졌는데 만약에 절차가 불공정하거나 법 위반 소지가 있으면 검찰관이 개입하여 10인 위원회 등에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으며, 상위 기관은 그 기소를 받아들여 재심을 진행하고 판결을 다시 해야 한다.


검찰관은 귀족들의 신분을 심사하고 등록하는 업무도 담당했다.

소위 귀족 명부인 리브로 도로(Libro d’Oro)를 관리했는데 리브로 도로는 '황금서'로 번역된다. 이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 계층인 귀족들의 명단을 기록한 정부의 공식적인 명부다. 황금서가 탄생한 배경은 1297년 대평의회의 폐쇄로 귀족 가문들만 대평의회의 위원이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대평의회의 폐쇄는 평민의 정치 권력 진출을 제한하였고 귀족은 신분 세습제를 통해 당연직 위원이 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작성된 것이 리브로 도로인데 귀족 가문의 남성 이름을 기록해서 대평의회의 위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리브로 도로는 가문 이름, 출생 기록, 혼인 관계, 혈통 증명 등을 기록함으로써 국가에서 그 사람에 대한 부모 모두가 귀족 가문임을 증명하는 공식 인증 기록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라 시대에 부모 모두가 왕족인 성골(聖骨)만이 왕위를 계승했던 것과 같다. 부모 중 한쪽만 왕족이었던 진골(眞骨)은 성골 신분의 남자가 소멸되기 전까지는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던 것처럼 베네치아 공화국의 귀족 가문 남성도 부모 모두가 귀족 가문의 혈통일 때 대평의회의 세습 위원이 될 수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대평의회의 위원이 되어야만 이후부터 도제를 비롯한 모든 국가 기관의 관리로 진출하고 승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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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 델로 스크리뇨(Sala dello Scrigno)


법률 검찰관의 방을 나가면 바로 옆에 살라 델로 스크리뇨가 있다. 금고의 방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황금서 등 공화국의 귀중한 문서를 보관하던 국가 기록 보관소이다.

이곳에는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려한 나무 수납장들이 있는데 베네치아 공화국의 귀족 명부인 황금서(Libro d'Oro)와 시민권자의 명부인 은색서(Libri d’argento) 그리고 귀중한 법적 증빙 자료와 국가 행정 서류를 보관하던 금고(Scrigno)다.


18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흰색 칠을 한 바탕에 금색의 장식이 입혀져 있다. 서류를 보관하던 금고의 화려한 인테리어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결코 손색없을 정도로 휼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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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호에서 본 탄식의 다리


바다가 있는 석호에서 탄식의 다리를 보기 위해 두칼레 궁전을 나갔다.

항구의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탄식의 다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석호의 다리는 폰테 델라 파글리아(Ponte della Paglia)다. 이미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파글리아 다리는 14세기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나무로 된 다리였으나 이후에 돌로 만든 석조 다리로 건설했으며 현재의 모습은 1847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그런데 다리 이름이 짚 다리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당시 다리가 있는 운하 옆 보행로에 가축의 사료나 침대 매트리스에 쓰일 짚을 실은 배들이 모여들어서 그 물품을 하역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름의 작명은 필요에 의해서 지어지기도 하지만 가장 흔한 방법은 생활 속에서 익숙하게 불리어지는 이름이 그대로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다리 양쪽에는 고딕 양식의 난간이 설치된 초기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히 난간에 있는 솔방울 장식은 다른 다리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으로 이것만으로도 폰테 델라 파글리아의 오래된 역사성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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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쪽 바다에서 바라보는 탄식의 다리는 물 위의 허공에 떠 있는 작은 건축물 같다.

석조 구조물의 아래쪽은 왼쪽의 궁전과 오른쪽의 신 감옥을 이어주는 아치형 다리처럼 보이지만, 위쪽은 마치 우리나라 고분의 입면도를 올려놓은 모양이다. 형태가 일반적으로 보는 개방된 모습이 아니라 벽으로 폐쇄된 모양이어서 다리라는 생각보다는 하나의 건축이라는 느낌이 든다. 안토니오 콘틴이 1603년에 완공한 다리는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되었다.


두 개의 창문에 만들어진 정교한 석조 격자는 여기서 보니 더욱 더 촘촘해 보인다. 기하 형태의 무늬가 아름답기보다는 답답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곳이 감옥으로 가는 통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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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의 다리 아래의 좁은 수로는 리오 디 팔라초(Rio di Palazzo) 운하다.

운하에는 곤돌라가 다니고 있다. 과거에는 죄수들이 감옥으로 가던 탄식의 다리였던 곳이 지금은 다리 아래 운하에서 연인들이 나누는 키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다분히 상술적인 요소가 가미된 구전으로 전해지는 곤돌라와 관련된 전설이 그 시초로 "해질녘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탄식의 다리 아래에서 곤돌라를 타고 키스를 하는 연인은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연인들이 모이는 성지로 만든 것은 1979년에 상영된 영화 리틀 로맨스(A Little Romance)다. 다이안 레인이 주연한 미국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13살의 어린 두 주인공이 곤돌라를 타고 탄식의 다리 아래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가 흥행하면서 전 세계 연인들에게 베네치아에 가면 탄식의 다리 아래에서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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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로맨스(A Little Romance)에서 캡쳐



폰테 델라 파글리아에서 바라보는 탄식의 다리 풍경은 정말 끝내준다.

운하에는 시퍼런 바다 물결을 따라 곤돌라가 유유히 흘러가고 운하 위의 탄식의 다리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하얀색의 두 건물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미는 푸른 하늘은 무한의 공간으로 이끈다. 이 모든 모습이 한 프레임에 들어와 눈을 현란스럽게 만든다. 아마도 다리 아래를 지나는 저 곤돌라에서는 어떤 연인이 보란듯이 키스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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