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를 건너다.
형사 콰란티아의 방(Sala della Quarantia Criminale)을 나와 감옥으로 가는 길은 이전의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복도 같은 평면이 나온다. 한두 사람쯤 다닐 수 있는 좁은 통로는 사방이 온통 막힌 흰 석회암 벽이다. 석회암 벽이 이스트리아 석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불빛에 우아한 빛을 띠고 있다. 그렇다. 불이 있어서 이 길이 은은하게 보일 따름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칙칙하고 음습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사실 걸어가면서도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스산하기만 하다.
그나마 관광으로 구경하는 마음이니 이 정도였지 만약에 나도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히기 위해 걸어간다고 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사람이 무엇과 단절된다는 것은 홀로 고립되는 것과는 다르다. 특히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사회와 격리되어 감옥에 수감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체념과 절망이 앞선다. 외로움과는 다른 의미다. 더군다나 햇볕을 볼 수 없는 밀폐된 공간은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밀어넣는 가혹한 형벌이다.
이 다리는 1600년에 건설되어 1603년에 완공되었다.
17세기 초 건축가 안토니오 콘틴(Antonio Contin)의 설계에 따라 건설되었으며, 다리를 안에서 볼 때는 알 수 없지만 밖에서 보면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 콘틴은 할아버지 안토니오 다 폰테(Antonio da Ponte)와 함께 리알토 다리를 건설하기도 했다. 폰테 데이 소스피리(Ponte dei Sospiri)를 번역하면 '탄식의 다리'이다. '한숨의 다리'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한숨은 정서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한다면, 탄식은 슬픔과 절망의 고통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그럴 때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면서 잠깐 동안이나마 밖을 보면서 내뱉는 '탄식의 다리'가 더 어울릴 것 같다.
두칼레 궁전에 신감옥이 만들어지고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 이름이 언제부터 '탄식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을까?
이탈리아 파도바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리카르도 파스콸린(Riccardo Pasqualin)은 학술지 「베네치아 역사(Storia Veneta)」 2019년 11월호에 기고한 '비토리오 바르초니의 논쟁적인 서술 속의 베네치아 감옥의 모습'(L'immagine delle carceri venete in una controversa descrizione di Vittorio Barzoni)에서 탄식의 다리에 대한 이름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비토리오 바르초니(Vittorio Barzoni)가 1798년경에 쓴 『그리스에서의 로마인들(I Romani nella Grecia)』에서 감옥과 연관되어서 탄식이라는 단어들이 나온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그 이름은 감옥과 직접 관련된 용어로는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바르초니의 글처럼 이전부터 사람들은 다리 이름을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명확하지 않던 다리의 이름을 탄식의 다리로 확실하게 각인시킨 사람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로드 바이런(Lord Byron)이었다. 바이런은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유람(Childe Harold's Pilgrimage)』 제4권에서 다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I stood in Venice, on the Bridge of Sighs; A palace and a prison on each hand." (나는 베네치아의 탄식의 다리에 서 있었네. 한쪽에는 궁전이, 다른 한쪽에는 감옥이 있었지.)
바이런의 이 시집이 19세기에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많은 유럽의 지식인과 여행가들이 탄식의 다리를 보기 위해 베네치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문학 작품을 통해 유명한 곳을 찾아갔다면 지금은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진 곳을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것과 같다.
다리 위에 서면 밖을 볼 수 있도록 작은 창이 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그곳이 다리 위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창문으로 난 아주 작은 틈으로 바깥 풍경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창문은 작을 뿐 아니라 하얀 석회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격자무늬 창이어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죄수들이 밖으로 탈출할 수 없도록 한 조치였겠지만 격자무늬 간격은 아주 좁고 촘촘하다. 보일 듯 말 듯하고 닿을 듯 말 듯한 그 자체가 어쩌면 절망적인 탄식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내게 할지도 모른다.
# 신 감옥(Prigioni Nuove)으로
탄식의 다리를 건너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신 감옥이다. 통로는 좁고 벽에 있는 창문은 무겁고 육중한 쇠창살로 막혀 있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어서 보았더니 감옥 안의 중정이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햇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구 감옥에 비해 획기적인 개선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와는 철저하게 차단된 감옥 구조다. 외부를 볼 수도 없지만 나갈 수도 없도록 벽돌로 만든 단단하고 거대한 벽으로 꽉 막힌 구조다.
감옥은 사람의 신체를 강제적으로 가두어 구속하는 곳이다. 자유는 제한되고 활동도 통제된다.
통로는 좁고 벽에 있는 창문에는 무겁고 육중한 쇠창살이 걸려 있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어서 보았더니 감옥 안의 중정이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햇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구 감옥에 비해 획기적인 개선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와는 철저하게 차단된 감옥 구조다. 볼 수도 없지만 나갈 수도 없도록 벽돌로 만든 단단하고 거대한 벽으로 꽉 막힌 구조다.
감옥에 갇히는 사람은 처음에는 구속에 따른 충격으로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을 느낀다. 그러다가 자유로운 생활에서 바뀐 환경으로 다가오는 공포와 불안을 의식하게 된다. 두칼레 궁전의 신 감옥 구조 역시 공포감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거대하고 단단하며 단절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아도 고립된 자신의 존재를 느끼며 무력해지고 우울감이 스며들 정도다. 그토록 암울한 모습을 하고 있다.
ㅣ신 감옥 3층에서ㅣ
신 감옥은 3층으로 되어 있다.
햇볕이 잘 들고 감방이 넓은 3층은 감옥 시설과 수용 시설이 혼합된 복합 공간이었다. 방이 넓은 이유는 죄인이 재판을 기다리거나 조사를 받기 위한 수용 시설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정부 관리들은 죄수를 불러 범죄 사실을 기록하고 작성하며 심문을 준비했다. 또 재판이 있으면 탄식의 다리를 건너서 바로 궁전의 검찰 심문실이나 재판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다른 이유는 정치범이나 신분이 높은 상류층 수감자가 수용되는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감옥 안에서도 내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왜일까?
예전에는 감옥이었지만 지금은 감옥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내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옛 감옥일망정 이곳은 내가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스치는 장소이며 구속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장소일 뿐이다. 설령 감옥이더라도 나의 행동은 제약되지 않고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감옥이지 않다. 왜냐하면 자유가 있고 자유롭기에 얽메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유는 그래서 귀하고 소중하다.
ㅣ신 감옥 2층에서ㅣ
계단을 내려가면 2층에 있는 감옥이다.
두칼레 궁전의 신 감옥은 층별로 수감되는 범죄자를 구분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3층에는 정치범이나 상류층 인사가 수용되었다면 2층은 주로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일반적인 잡범들이 수용되는 공간이었다. 중정쪽으로 창문이 있어서 약간의 빛과 외부의 공기가 들어와서 1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이었다. 그렇지만 감옥의 모습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 것인가? 갇힌 사람의 마음은 체념 상태가 아니면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감방은 3층에 비해 훨씬 좁고 문들은 이중 삼중으로 막히고 창문의 쇠창살은 손으로 만져도 찬기가 맴돈다. 감옥의 환경이 좋은들 얼마나 좋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