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를 골라갈 만한 능력 가진 사람들에게는 해당 안 되는 글이다.
× 취업 자체, 이직 자체가 목표였던 내가 이직을 하며 가졌던 태도에 대한 글이다.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나는 디자이너이고 중간중간 공백기가 아주 길어 보수적으로 경력을 인정하는 회사 기준으로 경력을 그러모아 38세임에도 불구하고 8년 n개월 차이다. 프리랜서 기간은 포함하지 않았고 실제 이름만 프리랜서이지 백수였다. 경력은 약간 특이해서 스페셜티는 없고 다만 다양한 업무 경험이 있다.
경력의 대부분은 에이전시 소속이었고 한참을 놀다가 it업계로 들어왔고 현재 두 번째 it 기업에 입사를 앞두고 있다.
이직을 생각한 시점에서 당장 스펙 올리는데 한계가 있고 내가 지금까지 안 했으면 당장 바꾸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펙을 올리니 마니 할 마음도 딱히 없었고 노력도 재능이라고 내가 지금 이런 걸 뭐 어쩌겠는가. 과거에 팽팽 놀던 나를 팰 수도 없는 일인데.
1. 아무리 봐도 여긴 아닌 것 같은데-하는 곳 빼곤 다 지원하기. 눈먼 회사는 항상 어딘가에 있음.
이 글로 전하고 싶은 단 한 가지 내용이다.
"눈먼 회사는 진짜 어딘가에 하나쯤은 있음"
나는 게으름이 굉장하여 회사에 맞춰 자소서 쓰거나 포트폴리오를 새로 만들지 않았고 저장해놓은 이력서, 자소서(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를 원티드와 링크드인에 업로드해놓고 지원할만하다 싶은 회사는 회사가 뽑는 연차와 관계없이 다 클릭 몇 번만으로 지원하였다. 구직 기간 몇 달에 걸쳐 몇 개의 회사에 지원했고 탈락하였는지 수치화해보면 뭔가 쪽팔릴 수준인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취업시장에서 턱턱 골라갈 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열심히 살 생각 없고. 내가 몇 개 회사에서 불합격했는지 누가 아는 것도 아니니 혼자 잠깐 창피하고 말면 된다.
공고 뜬다 -> 회사 리뷰를 좀 보고 크리티컬 하지 않다 -> 지원
이걸 습관적으로 했다.
크리티컬함에 대한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니 언급하지 않겠다. 워라밸 없다-가 기준일 수도 있고, 사람이 이상하다거나 정치 난무-가 기준일 수도 있고, 단순하게 지금 당장 망할 회사 같은지 아닌지-만 보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어느 회사가 날 붙여줄지 알 수 없고 회사는 원래 다른 연차 디자이너 뽑으려고 했는데 내 포트폴리오가 맞아 보이고 회사에서 쓰임이 있어 보인다면 면접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첫 번째 it회사도 채용하던 포지션과 다른 포지션으로 입사하였다.)
수많은 불합격 메일을 서류에서부터 받아서 처음에는 '이렇게 작은 회사에서도 서류 탈락이라고?' 뭔가 이직은 글렀나 싶었다.
2. 떨어지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핏이 안 맞았다 생각하기
'이 회사는 같은 디자이너 직군에서도 모션까지 할 수 있는 사람 찾는데 나는 모션은 전혀 못하는 사람이라면 모션 할 수 있는 사람이 뽑혔나 보다', 혹은 '내가 오버 스펙인가',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
실제로 내가 서류 통과했던 회사들과 서류에서 탈락한 회사들의 네임밸류나 회사 규모 등을 비교해보면 서류 통과한 회사들이 시장에서 월등히 압도적인 회사들이었다. 심지어 면접 기회 잘 안 오는 회사들도 서류 통과했었으니 찾는 사람과 내가 "다르구나" 생각하면 되었다. 정신승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신이라도 승리하고 나를 지켜야지 "님 그거 정신승리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내 탓 같으면 자기 계발 영역의 것들 뭐라도 하면 된다. 나는 평생 게을러서 안 했고 그냥 어디서 감 떨어지고 배 떨어지길 누워서 입 벌리고 있는 인간이라 자기 계발 같은 것을 의지를 갖고 하는 건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우연히 눈먼 회사 잡으면 연봉협상을 하게 된다.
3. 처음 부르는 희망연봉 내가 이래도 되나?(쫄보 기준) 할 정도로 한 번 불러보기
돈 얘기는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고 잘 못하는 부분이라 이 부분은 이번 이직 과정에서 꽤나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깎긴다. 단번에 회사에서 수락할 희망연봉 부르면 두고두고 후회되고 실제로도 잘못 부른 거라도 하니 내가 기대하는 연봉 인상률보다 많이 높게 불러보는 것을 나도 권유받았다.
나는 회사에서 나를 미친놈인가-라고 생각했으려나 할 정도의 인상률을 처음에 불러 최종 수락 인상률과 아주 많은 차이가 난다.
내 연봉협상에 도움을 준 2명이 하는 말이 달랐는데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본인 성격에 따라 배팅해보면 된다.
(1) 일단 1.5-6배 부르고 깎여라. 평균 인상률 이하로는 안 가져간다.
(2) 남들 받는 만큼 받아야 기대를 안 받는다.
나는 30퍼센트 인상률을 목표로 50퍼센트 정도 불렀고 20퍼센트 정도에서 돈 얘기는 그만하고 싶어서 수락하였다. 인터넷에 이직 시 연봉협상 후기를 찾아보면 최종 오퍼에서 더 배팅하다가 아예 취소가 된 케이스들도 왕왕 있으니 인상에 대한 논리를 잘 준비하던가 눈치를 잘 보며 조율하던가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깎였으면 그 후 한두 번 정도는 더 조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사 후 연봉 인상으로 200-300 올리기가 어렵다.
첫 번째 it업계 취업 시에는 아예 수식을 만들어 내가 왜 이 금액을 제시하는지 제공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돈 얘기가 가장 어려워 차라리 수식으로 보여주는 게 이러니 저러니 더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렇게 대응하였다.
나는 실력이나 경력이 화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오거나 네트워킹에 능한 사람이 아닌 아프리카 기우제 식으로 취업을 해온 사람이라 이 글은 정답도 아니고 다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 것이다.
원하는 회사나 목표가 명확한 사람에게는 참고할만한 가치도 없는 글이겠지만 뭐 이렇게도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 되겠다.
본인이 지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