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회 하이에나

by 박광인

하이에나는 암컷 한 마리가 우두머리다. 그녀가 낳은 암컷 한 마리만이 다음 세대의 우두머리다. 수컷은 암컷들에 기생하여 산다. 혹은 탈락되어 바깥을 전전하여 살아간다. 이렇듯 별 볼 일 없는 개체들이 군집을 이루어 수컷보다 큰 덩치의 암컷과 더불어 산다. 이러한 암컷 중심의 가족과 사회가 자연계에서 빈번히 목격된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하이에나인데, 사자의 생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의 집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종종 공포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안에 기거하는 남성들이 그 공포를 조성하는 주요 인물이다. 그 남성이란 씨를 뿌린 아버지이다. 이는 동서양 고현대를 막론하고 가부장 사회였건 아니었건 이미 자손을 본 남자들이 한 집에서 여성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 수밖에 없는 가에 대한 소구이다. 말하기를 터부시하는 주제로써 왜 그 남성은 가족 안에 오래도록 같이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들어 올리고 싶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숱하게 보아온, 씨를 뿌릴 가능성이 있는 개체, 이미 씨를 뿌린 개체들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비유적으로 보아왔는데도 말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그쳐야 하는가.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 그렇게 생각을 굳이 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 가족으로, 또 다른 가족으로 계속 인간이 번식할 수 있다 생각한다.


몇 년 전 사유리가 인공 수정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지금까지 홀로 자식을 키우고 있다. 이 훌륭한 방식을 기꺼이 채용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아직도 아이를 키울 때에는 양 부모가 있어야 하며, 그 중 한 명이 몹쓸 짓을 한다고 해도 어쨌든 부모로써 받아들어야 한다는 유교적 마인드에 원인도 모른 채로 젖어 있다. 아이를 안 낳는 추세까지는 가더라도, 도대체 올바른 가정환경이라는 전제가 왜 아버지, 어머니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까? 인본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이게 과연 타당할까? 합리적으로, 귀납적으로 그런 사례들이 비일비재한가? 오히려 그 반대를 뉴스 기사에서 접하는 게 더 많다. 자극적으로 느끼되, 왜 그 기저에 깔린 전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 사회 하이에나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생활양식에 대해. 여태껏 어떤 나라의 어떤 민족에서는 이미 모계 사회이며, 씨를 뿌리는 이방자로써의 남자를 그들의 사회에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사고방식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 스웨덴 어느 곳.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 이미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이라고? 아니. 사회의 모습을 가리키기 전에,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습관적 점검이 필요하다.


인습에 젖어 번성하는 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습성을 관찰하고 둘러보며 한번쯤 채택하는 용기를 택할 것인가. 내 글의 결말은 늘 그렇지만, It’s up to you.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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