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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Feb 27. 2024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마음을 나누고 싶은 모든 지영이에게

똥머리 질끈_

목은 있는대로 늘어난 옷을 입고 있는 이 여자.

군데군데 흰머리가 반짝이는 이 여자.

배에 귀여운 튜브를 달고있고 두 허벅지는 언제나 딱 붙어있는 이 여자.

나는

서른아홉해가 지나서야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10대에는 내 세상에 저항하기 바빴고

20대에는 남자에게 잘보이기 바빴고

30대에는 아이들 키우기 바빴다.


마흔을 한 해 남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흰머리에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 나 이대로 늙는구나 '


뭐라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아이 둘 독박육아에 워킹맘에 살림까지 내 손으로 다 하면서

날 위해 내가 한 일은 고작

족발시켜놓고 소주 한잔 하는게 다였네

치킨시켜놓고 맥주 먹는게 다였네

드라마 영화보면서 남자주인공한테 설렌게 다였네.


' 내가 뭘 좋아했더라 ? '

하도 생각이 안나서 종이에 끄적여봤다.


술..

음.... 음주?

음.....가무? 


직직 긋고 다시 써내려간다.


1. 맛있는 거 시켜서 소주 한잔 하기

2. 맥주먹으면서 영화보기

3. 달큰하게 취해서 발라드 듣기

4. ....... 내가 도대체 뭘 좋아하는거야? 


젠장.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며 살고 있었다.


유치원엄마들은 필라테스니 PT니 받으러 간다는데 나도 해볼까 싶다가도

그 돈이면 큰 애 학원 한개 더 보내지 싶어 접어두고

인스타보면 애들 등원시켜놓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 먹는 엄마들 보면

나도 카페가서 혼자 책보고 갬성충전해야지 싶다가도

아휴 그 돈이면 우리신랑 좋아하는 교촌치킨 한마리 시켜주자 싶어 접어두고


그렇게 

한개, 두개 마음을 접다보니

꼬깃꼬깃 구겨져 어디에있는지 조차 모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저, 하루하루 일과 육아에 지쳐

애들 재워놓고 맥주한캔과 드라마보는것을 유일한 특기 겸 취미로 살았다.


그런데,

서른아홉에 후두둑 돋아난 흰머리카락이

별안간 나를 터트려버렸다.


이젠,

나를 사랑해야겠어!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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