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외전 6편(연재)

쾌락인가, 거룩인가

by Leo Song

삶의 지혜 외전 6편





쾌락인가, 거룩인가


쾌락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인간이 스스로 **“더”**를 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쾌락은 늘 더 많이, 더 강하게, 더 깊이를 속삭인다.
그러나 그 끝은 늘 허무하다.


쾌락의 시작은 달콤하지만,
그 마지막은 공허와 질문만 남긴다.





쾌락의 덫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말했습니다.


“쾌락은 최고의 선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나 질문이 생깁니다.


-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이 철학을 따를 자격조차 없는가?

- 만약 고통 없는 상태가 행복이라면, 그 상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능한가?

쾌락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눈앞의 즐거움을 붙잡으려 하지만,
인간의 삶은 결코 그 즐거움으로만 채워질 수 없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결국 자기 위안의 사설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덫에 걸려 있으면서, 그것을 철학으로 포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의 철학을 따르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거룩이라는 부르심


성경은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베드로전서 1:16)

하지만 또다시 질문이 생깁니다.


- 인간이 정말 거룩해질 수 있을까?

- 거룩은 단순히 고행이나 수행의 결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선물인가?

- 하나님께 삶 전체를 드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이 징계와 진노를 겪었습니다.

포로기에도, 예슈아께서 오셨을 때에도
그들은 완전한 거룩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거룩은 단지 꿈이나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두 길의 갈림길에서


쾌락은 순간을 채우지만,
그 끝은 늘 허무와 공허를 남깁니다.

거룩은 삶 전체를 요구하지만,
그 길은 고통스럽고 더디며, 때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만약 내게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거룩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스스로 걸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걸을 수 없으니,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쾌락의 덫에서 벗어나,

거룩의 길로 데려가 주십시오.”





세 줄의 지혜


쾌락은 순간의 불꽃이지만,

거룩은 영원의 등불이다.

즐거움을 선택할 것인가,

부르심에 응답할 것인가.




이 글은 저자 레오 송(Leo Song)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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