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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Jun 27. 2024

미술도구와 안전감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미술도구와 안전감

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만나서 반가워요! 한 주 동안 잘 지냈나요?


내담자: 그렇게 잘 지내지는 못한 것 같아요.


나: 오 이런.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담자: 부모님과 싸웠어요.


나: 심하게? 막 몸싸움까지 했을까요?


내담자: 아니요. 말싸움이요. 그렇지만 말싸움 때문에 아주 미치겠어요. 


나: 부모님과 말싸움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확실히 힘들 수 있어요. 


내담자: 네. 이번에는 저녁에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싸웠는데요. 제가 하는 말마다 전부 다 간섭을 해서 진짜 힘들었어요. 그만 좀 간섭하라고 내가 신생아도 아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체크를 하는지, 진짜 이러다가 나중에 대소변은 잘 가리는지도 물어볼 것 같아요.


나: 생각보다 부모님의 간섭이 많았나 봐요. 하지만 지금 내담자의 연령이나 모습을 보면 충분히 독립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나요?


내담자: 네! 무조건이죠. 이제 저는 어엿한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청소년이에요. 저에게도 계획이 있고, 언제 공부를 할 것이고, 어떤 과목을 공부할지 알고 있단 말이죠. 그런 걸 왜 자꾸만 일일이 체크하려고 하는지 진짜 모르겠어요. 그럴 때마다 진짜 부모님이 싫어져요.


나: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예요. 저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간섭이 많았거든요. 혹시 지금 그림 그리는 도구들을 꺼내볼 수 있나요? 그동안 A4용지는 내가 준비할게요.


내담자: 갑자기요? 네 준비할 수 있어요.


나: 고마워요. 일단 준비를 먼저 해봅시다


내담자: 준비 다 했어요. 


나: 좋아요. 오늘도 그림을 그리면 좋겠는데, 그림을 그리기 전에 미술도구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으면 좋겠어요. 도구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내담자: 편해요. 그리고 설레요.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니까.


나: 그렇군요. 그림 도구들은 내담자를 편하게 하는군요.


내담자: 네.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더라도 제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나: 아주 좋아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미술도구이지만, 미술도구는 내담자에게 특별한 것 같네요.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도날드 위니콧 (Donald Winnicott) 은 '이행 대상 (transitional object)'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특별하지 않은 물건이지만,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물을 포함하는데, 독립심과 안전하다는 느낌과 함께 많은 도움을 줍니다. 지금 내담자에게는 미술도구들이 이행 대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내담자: 또 그 이야기예요? 위니콧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행동들이 하나의 개념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네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듣지 못하니까요.


나: 네. 종종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도록 할게요. 이제 그림을 바로 그려볼까요?


내담자: 네.



상담은 참으로 재미있다.


분명히 이행 대상이라는 개념을 배울 때, 인형이나 장난감이나 또는 이와 비슷한 느낌의 어떠한 물건,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사물이라고 배웠는데, 미술도구 또한 안전하다고 느끼는 내담자를 보면서 어떤 물건이라도 이행 대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느꼈던 만남이었다.


부모님과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깊게 다룰 수 있었다.


또한 나의 근황에 대해 물어본 부분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부분들을 다루기보다 내담자가 이곳, 상담실을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더불어 독립심이 생기기 시작한 내담자에게 독립심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택했고, 미술도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림을 그리는 행동만으로도 스스로 독립심을 기를 수 있고,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상담 시간도 아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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