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너무 괜찮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내 존재 가치가 없다 여겨졌고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해야 하는데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무용한 인간이 되는 사회.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기능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여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 또한 나를 기능적 인간으로 판단하고 있었으니까.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느낌. 살아 있으려면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바닥인지 바닥 아래인지. 바닥이라 생각했건만 더 아래가 있었네. 어디까지 더 내려가려나. 바닥 아래와 더 아래. 그 사이를 오가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나 자신에 대한 화는 누를 수 없었고 일상 모든 것에 짜증이 뱄다. 모든 것이 좋지 않았다. 인간 관계도 거의 모두 끊었다. “요즘 뭐 해?”라는 질문에 “아무것도 안 해”라고 자꾸 말하기도 지겨워졌고, “이제 뭘 좀 해 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고?”라는 말에 무어라 할 말도 없었고 나를 변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뭔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생각은 이제 그만 떨쳐내고 힘을 내서 일어서야 한다고, 하고 또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문을 치워버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으니까. 사람들은 진정성 없이 던지는 그런 말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대체 내게서 뭘 확인하고 싶은 걸까? 안부를 묻는다고 하고는 나의 안부가 아니라 누군가의 망가진 모습에서 그래도 내가 낫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위안을 삼을 사람들. 나는 전화기를 던져 버렸다. 사람들과의 연락도 버렸다. 그렇게 점점 혼자가 되었다. 차라리 나은 외톨이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싫었다. 나는 혼자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때때로 바닥 위로 기어올라가려 별 티도 안 나는 발버둥을 치면서.
이런 내게 평안을 준 건 제주의 하늘과 바다이다. 이들은 말이 없다. 매일매일 봐도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 그리고 구름. 하늘이 좋고 바다가 좋고 구름이 좋다. 월령에 내가 정해 놓은 내 자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 길을 내려가 울퉁불퉁한 현무암 바위 끝자락에 앉아 있으면 하늘과 바다만 보인다.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계속해서 다른 모양으로 다가오는 파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가 내는 소리가 내 심장을 쓰다듬고 쓸어내 듯 나를 달래준다. 하늘과 바다에 취한 듯 앉아 있다 보니 벌써 투명하게 새파랬던 하늘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점점 변하는 붉은색을 보느라 또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 있다. “그냥 다 싫어!”에서 “아, 좋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하늘과 바다,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