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청파동

우리 동네 산책 part2

by 김 연남

동네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며 생각한 동네가 몇 있다


회기동, 필동, 신당동 등

특히 수유동에 살 때는 주로 혜화나 성신여대 쪽을 자주 다녔는데, 기회가 되면 소개해보겠다.


이번에 소개할 동네는

두 번째로 오래 산 동네이다.

공교롭게도 지금도 이 동네에 살고 있다.

행정동상으론 청파동, 숙대 앞이라 부르는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였다.

KakaoTalk_Photo_2026-03-06-18-09-45 007.jpeg 숙대 앞 '순헌왕귀비길' 주로 숙대 앞이라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곳이다.

그 시기 나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군대였다.

아마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20대에 겪는 가장 큰 고난이 군대일 것인데

나는 운이 좋게도 사회복무요원, 즉 공익으로 배정이 되었다.

부모님은 본가인 대전에서 군 복무를 하라고 했지만,

그때쯤 나는 친구며, 애인이며 모두 서울에 있었으니

서울에서 복무하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웠고

그럼 너 알아서 살라며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러니 실제 경제적으로 완전한 의미의 독립을 하기 시작한 곳도 이곳이다.


2020년은 정확히 코로나가 시작하던 시기였다.

나를 포함하여 그 시기에 입대를 한 이들에게는

까다로운 방역지침으로 인하여 훈련소 입소 기준도 까다로웠었다.

때문에 나도 논산에 한번 헛걸음을 한 뒤 두 번째에나 들어갈 수 있었다.

훈련소에 입소하던 시기는 2020년 2-3월이었는데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처음으로 대구에 상륙 및

대규모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가 이때였다.

입소할 때 대구출신 훈련병들은 따로 격리를 했었다.

나와 이 시기의 동기들은 훈련소에 있던 한 달 동안

매일 감염자 수를 알리는 국방일보를 보며,

눈 감았다 뜨면 바뀌는 방역지침에 적응해야 했다.

분명 첫 주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2주 차부터는 마스크를 쓰더니,

보름 정도 지난 후에 대규모로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코로나에 걸린 가족이 있는 경우, 이때 조기퇴소 처리 되었다.

같은 생활관을 쓰던 동기하나가 이때 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걱정할 여유도 없이 바로 조기퇴소 되었다.

3주 차부터는 아예 잘 때도 마스크를 껴야 했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방역지침 때문에 연병장 집합도, 화생방 훈련도 하지 않았다.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잔뜩 겁을 먹고 사회로 나와

숙대 앞 집에 가게 되었을 때

세상은 한 달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에서 보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달볶이집이나 계란빵을 팔던 포장마차, 역 앞의 델리만쥬는 아예 문을 닫았으며

밤이면 모든 불이 꺼졌다.

퇴근 후 유일한 낙이었던 코인노래방은 당연히 영업중지상태였다.

한 달간, 모든 게 바뀐 것이다.


지금의 청파동은 다행히 그전의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전형적인 여대 앞답게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다.

숙대 1캠퍼스쪽에서 가장 가까운 골목에는 카페 '을의 커피'와 '청파맨션'이 있는데 각각 디저트와 커피맛이 좋다.

조금 더 내려가면, 묵은지참치김밥으로 유명한 한입소반 건물의 3층에 고양이가 반겨주는 카페 '무네'가 있다.

이대 앞이나 성신여대 앞도 마찬가지지만,

이곳 숙대 앞도 까다로운 여대생의 입맛에 맞추어 전체적인 외식 가게들의 품질이 보장된다.

특히나 청파동 3가는 맛집거리로 불리는데, 메인거리에서 약간 좌측에 위치한 허름한 골목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영 이후 살아난 대표적인 상권이다.

방송에 나온 동아냉면과 햄버거집은 코로나시기에도 발길이 끊기지 않았던 유이한 곳.

KakaoTalk_Photo_2026-03-06-18-09-45 006.jpeg 멀리 N서울타워가 보이는 숙대 캠퍼스. 길 건너편이 여대 앞마다 있다는 남친존이고, 연차가 좀 쌓이면 우측 차도 위에 벤치에서 기다린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이렇게 작은 삼거리가 있고

숙명여대 1 캠퍼스와 2 캠퍼스가 있다.

사실 학생들이 더 자주 가는 곳은

바로 이 근방의 가게들인데

가게 이름보다도 메뉴명인 '포돈'으로 잘 알려진 '포 36거리'는 오픈전부터 보통 대기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건너편 중화음식을 파는 노포인 '정'이다.

마라탕이 중식의 대표 메뉴가 된 요즘, 가끔 제대로 된 자장면이 생각날 때 가는 곳이다.

KakaoTalk_Photo_2026-03-06-18-09-42 001.jpeg 어느 2월 평일 오후에 찍은 남영역의 풍경. 외대 앞처럼 고가에 역이 있으며, 출구는 하나뿐이다.

다시 조금 내려가면 지상 철로가 보이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골목이다.

신촌 편에서도 고가 철로 아래의 굴다리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이곳은 비슷하면서 좀 다르다.

남영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1호선이 지상철로로 지나가고 있고, 이곳 굴다리는 지하로 뚫려있다.

이러한 역 구조는 서울 이곳저곳을 꽤나 돌아다닌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구조다.

(혹시나 보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특이한 구조 때문에, 굴다리아래에 대폿집과 구멍가게가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조대포 같은 곳이다.

KakaoTalk_Photo_2026-03-06-18-09-44 005.jpeg 근처 직장인과 숙대생들이 주로 회식이나 개강파티등을 하는 곳도 이쪽이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쩐의 전쟁'특집을 촬영한 곳도 이곳인데

숙대역에서 학교로 올라가는 쪽 KFC 옆 굴다리다.

image.png 2011년 방영한 무한도전 쩐의 전쟁 편 속 숙대 앞모습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비교적 현대적인 바인데,

이름은 디거이즈디깅이다.

이곳 바는 층고가 거의 1호선의 높이와 동일해서

1호선이 지나갈 때면 그 진동을 느껴볼 수 있다

image.png 디거 이즈 디깅, 바로 앞에 이렇게 전철이 지나다닌다

굴다리를 기준으로 우측은 최근에 상당히 핫해졌는데

구복만두와 해방촌으로 이어지는 곳도 산책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보다 아래, 삼각지 쪽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고깃집이 많다.

특히 뒷고기라고 불리는 특수부위들을 파는 곳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게 남영돈이나 삼각정과 같은 곳들이다.

가수 성시경이 이곳의 뒷고기집들을 전부 공개하며

더 이상 힙플레이스보다는 핫플레이스가 된 느낌이다.

사실 그 이전부터

유용육 바비큐연구소라는 가게가 그러한 흐름의 최전성에 있었는데

흑백요리사가 방영되면서부터는 예약 없이 갈 수 없기에 이르렀다.

뒷고기라는 것이 주로 정육업체에서 비싼 부위들을 팔고

남은 부위들만 뒷골목에서 구워 먹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것이 별미라며 사람들이 찾아먹게 되었다고 한다.


남영동, 청파동이라는 동네도 그러한 느낌이 있다.

개발이 더디고, 옛것을 보존한 동네,

서울의 한가운데, 용산과 서울역의 사이에 있으면서도

항상 응달져있는 듯한 "뒷 동네"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되는 그런 동네 말이다.


서울의 한가운데, 이렇게 개발이 더딘 동네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하여 궁금해 찾아본 적이 있다.

그러려면 우선 남영이라는 이름의 어원부터 알아야 하는데

1호선 남영역의 남영은, 남영동을 일컫는 말이며.

여기서 남영이란 남쪽의 병영을 말하는 것이다.

옛 한양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일제시기에 일본군 주둔지로서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한양의 숭례문과 한강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군사와 교통적으로 용이한 이곳은

광복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을 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KakaoTalk_Photo_2026-03-06-18-09-44 004.jpeg 한눈에 봐도 오래된 철물점. 저 뒤에 건물도 일본 버블시대의 상징 기업인 파나소닉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바뀐 듯하다.

많은 숙대생들이 왜 남영역과 숙대입구역은 이렇게 가까운데도 합치지 않냐는 말을 하는데

사실 이는 이곳 남영-숙대입구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용산-신용산역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일제강점기 때의 지상에 지어진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1호선 용산-남영구간과

지하화를 한 4호선 신용산-숙대입구역 구간은 구조적으로 합쳐질 수 없는 것이다.


남영역의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비밀 공간이 숨겨져 있는데

민주화운동 기념관이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남영동은 "대공분실"로 기억된다고 한다.

실제 이곳을 주말에 방문했지만, 방문자는 나뿐이었다.

건물 자체가 뒷골목이어서 그런지 전체가 그늘져 있고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이질감이 드는 장소도 있다.

한 바퀴 정도를 돌고 나갈 때가 되어서야 외국인 관광객들 한 무리가 들어섰다.

image.png 과거 고문실이었다던 남영동 민주화운동 기념관 내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이 동네를 보고 있자면 서울의 서발턴*(사회구조 속에서 권력으로부터 배제되어 발언권을 상실하거나 주변화된 집단)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핫해지는 동네들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한다.

낙후된 산업과 텅 빈 가게.

그리고 그러한 곳을 채우는 젊은 문화가 결합되는 그러한 풍경 말이다.

남영-청파동 골목은 용산전자상가의 부품을 납품하는 철물점들과

남은 고기를 파는 뒷고기 전문점들,

일제 시기의 병영을 지나, 미군부대와 80년대 대공분실까지

서울의 어떠한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네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서발턴들이 문화적 헤게모니를 주도하게 된다는 이론에 따르면

성수와 망원이 그렇듯

이 동네도 주류동네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최근, 용산 4 지구사태 이후 잠잠했던 이 동네가

용산 국제 업무지구의 개발소식으로 시끌벅적하던데

100년간 잃어버린 서울 한가운데의 금싸라기땅이 되돌아온다는 그 명분이

그 100년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며 버텨온 이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개발과 보존은 참 어려운 문제이다.

도시의 모습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는 없기에

동네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이 동네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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