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나의 고향

신촌 근처 15학번의 신촌이야기

by 김 연남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일상기도 써보고 싶어졌다.

기준은 서울의 동네.


나는 대입준비를 하던 시기부터 서울에 올라와 지냈는데

당시엔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빈방이 많아

연대와 이대에 다니는 여성전용 하숙을 운영 중이었다.

그니까 나는 '하숙집 아들'이었다.


대학에 간 이후론

여느 신촌 근방 대학생들과 같이

대부분의 기억이 신촌 연세로에 있다.

지금은 술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과대표를 맡아 모든 신촌의 술집에 끌려다니던 당시엔

집에는 거의 없고 항상 신촌에 살았다.

당시에 많이 갔던 곳은 신촌 황소 곱창, 바플라이, 야바이.

그렇게 새내기 때는 2차 3차를 신촌에서 달리며 시간을 보냈었다.

연세대학교 측에 매우 죄송한 일이지만,

새벽에 3차, 4차가 끝나면 항상 연희동 집까지 걸어가기 위해 백양로를 지나곤 했는데

가다가 독수리동상 앞이나 대운동장 앞에서 오바이트를 한 적도 꽤 있다.


연대 앞 굴다리

그즈음, 술자리를 끊게 된 것은 연애를 하기 시작한 이후였는데

데이트장소는 매번

'신촌 홍익문고 앞'이었다.

홍익문고 쪽을 기준으로 우측 골목에는 CGV가 있고, 좌측에는 현대백화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90년대 즈음 신촌에서 매번 데이트를 했다던 우리 부모님 때에는

'그레이스 백화점'과 '녹색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IMF이후 전부 대기업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홍익문고뿐.

일단 홍익문고에서 만나면,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쇼핑을 할 수도 있었다.

주말에 가면, 플리마켓이나 거리 버스킹이 항상 시작하는 곳도 이쪽이다.

신촌의 랜드마크가 된 홍익문고


돈이 없던 스물한 살 초여름 어느 하루엔

0원 하루 데이트 챌린지를 한 적도 있다.

일단 처음 간 곳은 지난번에 갔을 때 추첨을 통해 받아서

공짜 이용권이 하나씩 있었던 실내 낚시터 '꾼'

그리고 연세로에서 플리마켓을 하고 있어 구경을 하다가 공짜로 타로점도 보았다.

그날 연세대 노천 극장에서 브라운아이드소울 콘서트를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생긴 공짜 치킨 쿠폰으로 노랑치킨에서 치킨 한 마리를 싸와서는

노천극장 뒷산 언덕에 집에서 챙겨 온 돗자리를 펴고 자리 잡아

무단 취식을 했었다.

그때 그 언덕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몇몇 커플들이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돗자리를 펴고 있었다.

(물론 이 이후론 공연 주최측에서 알아서인지 대부분 뒷산 츌입을 통제한다)


연대서문에 살던 나는 연대생도 아니지만, 연대 안의 숨은 스팟들을 워낙 잘 알고 있었다.

아침마다 캠퍼스를 항상 한 바퀴씩 걸어 다녀서일 것.

연대 안에는 학생식당도 여럿 있는데,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딱 고를 샘이 오픈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양이 집도 있었는데,

연냥이라는 이름의 치즈냥이와 가족들이었다.

연대 정문은 다른 대학들보다도 유독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는데

그 앞은 고가도로에 간혹 철도가 지나다닌다.

영화 1987을 보면, 이곳이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다고 하는데

영화 속 풍경과 지금의 풍경을 대입해 보면 꽤 비슷하게 생겼다.

86학번이자, 당시 경찰서도 끌려다녔다던 아빠가

이 앞을 지날 때 이한열 장례식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신촌이 데이트보다 데모장소였다고 한다.

40년 전, 뿌연 연기 속의 백양로

신촌은 유독 젊은 대학생이 많아서인지, 항상 유행하는 음식이 가장 먼저 들어오곤 했었다.

마라탕 열풍이 불던 2019년 즈음,

연세로 한편에 '마라탕 거리'가 생겼었다.

마라탕이 성행을 하니 자연스레 빨간 거울 앞에 탕후루 노점상도 생겨났었다.

대만 카스테라도 신촌에서 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촌 거주민인 나는 반강제로 항상 이런 유행음식의 얼리어댑터가 되곤 했다.

이것도 유행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코인노래방과 인생네컷도 그즈음부터 신촌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20년대 이후에 서울전역으로 퍼졌다.


연대정문기준으로 좀 더 내려가면

맥도날드 연세대점이 있는데

사실 신촌에 맥날하면,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에 맥도날드가 있었다.

워낙 찾기가 쉽고, 출구에서 가깝다 보니

타지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려면 구 맥도널드 앞에서 보자고 했었다.

맥도날드가 사라지고,

타코벨이 생긴 후로는 타코벨을 자주 갔던 것 같다.


매운 걸 먹고 싶을 땐 라멘집인 이치멘을 자주 갔었는데, 2017년 즈음 사라졌다.

그 이후엔 틈새라면을 자주 갔었고, 좀 더 가까운 미가분식에서 삼겹살 라면 세트도 자주 먹었다.

미가분식은 특히나,

연대 서문 바로 앞에 있는 곳인데,

연대생들 중 서문 쪽에 사는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학식당 다음으로 많이 먹었을 것.

서문 앞의 미가분식. 여기 건물이 하숙건물인데 원래는 하숙생들만 먹던걸 전체 개방한 거라고 한다.


사실 분식집은 연대보다 이대 쪽에 많이 있다.

워낙 많지만 그중 가장 많이 간 것은 오리지널 떡볶이.

같은 신촌이라도 이대 쪽으로 넘어가면 조금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무래도 술집보다 밥집이 많은데

주로 많이 간 곳은 까이식당.

란주탕슉도 자주 갔었다.

이대 쪽은 모로코, 스페인, 싱가포르 등등 다양한 국적의 식당이 많다.

카페도 유독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좋다.

주로 갔던 곳은 이대다방이나 벨라프라하.

이대 앞 까이식당. 혼밥 하기 좋다.


한편 서강대 쪽은 골목의 특성상 대학로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고, 대로변에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서강대 정문기준 우측에는 현재는 없어진 KD케밥하우스와 베브릿지가 있었다.

왜 그렇게 자주 가나 싶을 정도로 서강대생들이 해장하러 자주 가는 청석골도 그 옆이다.

건너편엔 서강대생들의 단골 회식 장소인 서강곱창이 있다.


졸업즈음에는

신촌의 24시간 카페에서 졸업작품을 집필한다며 항상 날밤을 샜다.

주로 갔던 곳은 굴다리 앞의 이디야, 독수리 약국 건물에 있는 독수리 다방, 카페 나무, 카페 앤

아니면 만화방에도 자주 갔다.

시험기간즈음에는 신촌 근방의 카페에 자리 잡는 것도 전쟁이다.

서강대, 이대, 연대 과잠들이 카페 안 전석을 이미 차지하고 있는 건 흔한 풍경.

코로나 이후로는 24시간 카페가 거의 멸종한 듯 보인다.


26년 들어 신촌로터리에 오랜만에 갔는데

어떤 것은 바뀌었고 어떤 것은 그대로다.

차 없는 거리가 사라진 것은 너무 아쉽다.

신촌로에 차가 못 다니던 시기가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그 시기에 신촌을 다녔던 기억 때문인지

이미 차 없는 거리가 사라진 지 꽤 되었는데도 익숙하지 않다.

공실도 꽤 많이 보이고, 이대 쪽은 더 텅텅 비어있다.

이제 신촌에서 나와 할아버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아마 '형제갈비'밖에 없을 것 같다.


내 주변엔 신촌에서 처음 서울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다.

다들 취업을 하고 멀리 떨어져 살아도

어째서인지 모이자 고하면 항상 신촌이다.

무언가 시작했었고, 설레었고, 처음이었던 곳.

신촌이란 곳은 나한테만 고향이 아닐 것 같다.


아마 다음 편은 남영-청파동 또는 회기동으로 돌아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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