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아저씨

by jinhee

학생인지 아저씨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되는 무리들이 있었다. 영어실력도 별로인 것 같은데 대학원 수업 같은 걸 듣고,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한국말로 떠들어 대고, 유학생은 꿈도 못 꿀 고급 아파트에, 비싼 자동차, 주말엔 골프...

좀 지나 알게 되었다. 그들은 MBA, 경영학 석사 유학생들이었다. 회사에서 내주는 학비와 생활비로 지내는 그들은 나 같은 '맨날 쪼들리는' 유학생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시기심 더하기 상대적 박탈감 그 위에 열등감까지 끼얹은 이 정체불명의 감정을 가지고 나는 그들을 쳐다봤었다. 가재눈을 하고. 비루한 유학생 하나가 눈을 부라리든 말든 그들의 유유자적 고급스러운 MBA 생활은 견고했다.

어느 날, 오빠가 MBA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별로인 아저씨들 무리가 떠올랐다. '내 오빠가 그런 무리에 끼고 싶다고?' 안될 말이었다. 극렬한 반대는 고이 접어 가슴속에 꽁꽁 숨기고 내가 유학생활 좀 해봤다며 이런저런 훈수 같은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그 학위 없이도 지금의 오빠 능력만으로도 성공하기에 충분하며, 늦은 나이 유학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 등등 내 말만 듣자면 MBA는 세상 멍청한 도전이었다.


주저리주저리 이어지는 내 훈수질을 묵묵히 듣던 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다 묻는다.

"그래서 넌 유학 간 거 후회해?"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하라면 또 할 거고 이번엔 더 성실히 열심히 잘할 거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내 오빠가 MBA 아저씨 되는 건 싫다. 정말로.


오빠의 MBA 준비가 시작되었다. 난 그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이상적인 배우자이고 싶지만 진실로 내키지 않았다. 울상이었다.


순전한 호기심과 심심함이 겹치는 타이밍 좋은 때 오빠를 따라 참석한 몇 번의 MBA 세미나에서 MBA 준비생들을 보며, 어쩌면 그동안 내가 너무 꼬여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나 (솔직히 개나 소나) 하는 줄 알았던 MBA는 GRE나 GMAT 같은 꽤 까다로운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아야 하고, 그 옛날 내가 본 토플과 같은 시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려워진 지금의 토플이라는 장애물도 통과해야 하고, 나무랄 데 없는 면접에 능력 있음을 담대하게 증명하는 직장경력 등등... 지금의 나는 단 한 개도 이루지 못한 성실한 노력의 결과물들이 모습을 갖추고 나타난 하나의 자격이었다.



지금 오빠는 학교 앞 정말 작디작은 방에 살며 학교를 다니는 MBA 학생이다. 갑작스레 하게 된 두 집 살림에 우리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지금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내가 가재눈을 뜨고 이유 없이 그들을 미워할 때부터 오빠의 MBA행이 정해졌으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기와 열등감으로 꼬인 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낸 그의 열심을.


오래전 내가 본 그들처럼, 오빠는 호화로운 아파트도 고급 자동차도 주말의 골프 약속도 없지만, 우리가 처음 해보는 신기한 영상통화와 홍삼 챙겨 먹었니, 가습기 틀었니 하는 너무나 사소한 대화 그리고 나 없이 너무 재밌게 지내지 말라는 유치 찬란 충고가 대신 그 자릴 채우고 있다. 우리의 MBA가 이런 모습인 게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