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각모 사나이

by jin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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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내가 해병대 나온 남자랑 결혼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나에게 해병대란 좀 유별나고 드센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고 조금은 웃기고 지어낸 듯도 과장한 듯도 한 해병대 에피소드를 들으며 저건 그저 대한민국 군필자의 평균적인 모습 아닌가 했다. 유별나지도 드세지도 않는 그냥 딱 그만큼의 모습.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그에게 해병대가 가지는 의미가 내 생각보다 크고 뭔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솔직히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내 특유의 비아냥 거리는 성정에 그의 해병대 사랑은 비웃음 거리 내지는 조롱거리일 뿐이었다. 한마디를 제대로 들어 곱게 들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이런 그의 열정과 나의 조소가 한데 어우러져 한 편의 촌극이 벌어지는 시간이 있는데, 바로 강철부대 시청시간이다.


강철부대 그 자체보다는 그걸 시청하는 그의 자세가 나에게는 대단한 오락거리인데, 모든 미션을 거실 바닥을 뒹굴며 함께 하며 작전도 세우고 평가도 하며 본인의 군 시절까지 되새김질하는 흥분과 광기의 어디쯤에서 두어 시간 동안 헤매는 한 남자를 보고 있노라면, "얘 뭐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하게 된다.


수년간 이어져온 이 기괴한 시간은 나를 피곤하게 하지만 무시로 안겨오는 즐거움 또한 크기에 그럭저럭 웃어가며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강철부대를 보며 그가 급기야 눈물을 찔끔 거리는 거다. 뭐 전우애, 자신의 한계 등등 무슨 포인트에서 눈물버튼이 눌렸는지는 짐작하겠는데, 저 언제나 진지한 상남자가 눈물을 찔끔 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죄책감이 쏟아진다.


그동안 내가 날린 수많은 조롱과 조소, 비웃음과 무시가 얼마나 차갑고 날카로웠는지. 나의 남편이 저렇게 마음을 쏟고 있는 걸 알면서도 왜 진심으로 보고 들어주지 않았는지. 나는 참말로 못된 애구나. 회개했다.


처음으로 그의 해병대 앨범을 자발적으로 들춰본다. 신나게 설명에 설명을 이어가는 그를 보며 금세 후회했지만 그래도 내 죄책감의 무게만큼 관심과 인내를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그러다 갑자기 강철부대원들과 함께 벌칙을 수행 하기 위해 거실바닥에서 체조를 시작하는 그를 보며 하마터면, "얘 뭐지?"가 또 튀어나올 뻔했지만, 나의 인내보다 몇 곱절은 견고한 그의 해병대 마음을 이제는 알아줄 것이다. 해병대 남편의 아내로.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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