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비가 좋은데

by jin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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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항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의지를 가지고 의식이 있는 선택을 할 때 가 오면, 살짝 어긋나거나, 일부러 최선보다는 차선을,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Plan A 말고 Plan B를 골라왔다.


이렇게 살아온 데에는 심심찮게 삐딱선을 타고자 하는 내 특이한 성정이 한몫을 했다. 모두가 수긍할만한 선택을 하고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마음, 답지 않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당당하고 싶은 마음, 한마디로 그런 게 더 멋지고 폼 난다고 믿어왔다.


탐스럽게 기른 긴 머리가 유행하면 곧 댕강 짧은 머릴 하고, 메가히트 영화나 드라마는 거들떠도 안보며, 학교 다닐 때도 비주류 출판사의 참고서를 선호했고, 유행과 상관없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들을 사 입었다. 꼽자면 며칠밤도 모자란 내 수많은 이런 류의 선택들은 촌스러워 보일 수도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나답다고 생각했다. 믿었다.


그러면서 주류에 속해 유행을 따라가는 이들을 차선보다는 최선을 선택하는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시류에 휩쓸려 다닌다며 비웃었다. 뭐 하나 특출 나지 않는 내가 궁여지책으로 마련해 낸 '자존감 높이기' 그 마지노선 어딘가에서 이 유치한 놀음에 한참 빠져있었던 듯하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멈췄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식의 삶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필요한 건 딱 하나, 끊임없는 자기 최면과 위로. '괜찮아, 잘했어'와 같은 것들인데 누가 봐도 괴상한 선택들을 해나가며 그 안에서 정신승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직선도로를 타고 가면 금방인 여정을 온갖 샛길과 비포장 도로를 뒤섞은 난잡한 헤맴으로 바꿔버린 후 '잘했어. 이참에 운전연습도 하고, 샛길도 익히고 아주 유익하군'이라는 궤변으로 급히 마무리 짓는 이런 구간들이 내 인생에서는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러기가 정말 어려운 구간이 있다. 어떤 정신승리나 자기 최면, 궤변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을 훨씬 능가하고도 남을 만큼 내가 본능적으로 나답지 않은 메인스트림에 끌릴 때인데, 그때는 진정 이 속에서 불같은 전쟁이 일어난다. 엎치락뒤치락 치열하기도 한 이 전쟁은 얼마간의 시간과 세월을 거치며 나름대로의 합리화와 설득을 통해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지만, 나에게 아주 오랜 세월 끝나지 않은 전쟁이 있다.


으레 그 나이 만한 여자 아이들이 즐겨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있었다. 내 때에는 '바비인형'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이 바라마지않던 It 장난감 그 자체였는데, 나는 이때에도 의도적으로 바비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동생의 레고를 함께 가지고 놀며 짐짓 바비에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는데, 내가 바비를 가진다는 건 뭔가 나도 그렇고 그런 여자 아이들 부류에 섞여 버린다는 일종의 패배감을 들게 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었던 것 같다. 그럴수록 더 레고, 퍼즐놀이, 재믹스 등에 의식적으로 심취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노력한다는 건 다른 마음을 그만큼 누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데, 나는 바비를 좋아했다. 나도 바비를 가지고 싶었다. 나도 바비 머리를 빗겨주고 때마다 철마다 옷을 갈아입히며 그렇게 바비랑 놀고 싶었다. 레고성을 만들며 그 속에 사는 바비를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마음을 깊이 숨겼다. 아무도 모르게. 이런 나를 알지 못하는 내 엄마 아빠는 본인 들은 물론 삼촌이나 이모들에게도 그들의 사랑해 마지않는 조카는 바비 같은 소녀스러운 건 절대 원하지 않는다며 친절히 안내했고 누구도 나에게 바비를 선물하지 않았다. 심지어 산타할아버지도 내 숨겨진 진심을 몰라주는 듯했다. 나만 아는 내 마음. 나답지 않다고 여기며 누르고 눌렀다. 내가 바비라니. 가당찮은 소리 아닌가.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서른이 훌쩍 넘어서 어느 날. 마트에 갔다가 바비 앞에 섰다. 그리고 아무런 고민 없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집에 그렇게 바비를 들여오고서도 아무도 모르게 서랍 맨 밑에 숨겨 놓고 가끔 꺼내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무섭게.


결혼하고 짐을 챙길 때도 바비를 숨겨 왔다. 오빠는 우리 집에 그런 게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살다가 몇 해 전 난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더 이상 몰래 숨겨 놓고 홀로 꺼내보며 키득거리고 싶지 않았다.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화장대에 떡하니 바비를 앉혀 놓은 것이다. 내 바비를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그는 별 말이 없다. 그의 행동양식에 비추어 보면 어쩌면 원래부터 있었다고 여길 가능성도 짙다. 그는 그렇다.


더욱 대범해진 나는 공을 들여 바비의 옷을 사고 구두를 사고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선글라스는 씌웠다 벗겼다 난리 부르스를 춘다. 진작에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막아왔던 그 일을 보란 듯이 마구 한다. 얼마 전 거실에 한 무더기의 바비 살림을 들고 나와 꼼지락 거리다 "난 바비가 좋은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의식하지도 않은 말이 세숫대야에서 물 넘치 듯, 철퍼덕 그렇게 터져 나왔다. 해놓고도 너무 당황해서 뒤통수의 모든 신경을 집중해 소파에 누워 있는 오빠의 반응을 살피는데 더딘 반응이 나온다. "그런 거 같아..."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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