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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17. 2024

광기와 열기가 넘쳐야 세계적인 축제가 된다

#Stardoc.kr 최정철칼럼

[스타다큐=최정철 칼럼니스트]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는 지역별로 수호성인이 있고, 그 수호성인들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기 마련이다. 그중 ‘산 페르민 축제’는 매년 7월 6~14일,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 팜플로나’시에서 도시의 수호성인인 ‘페르민(Fermin)’을 기리고자 열리는 축제다.


페르민은 팜플로나 출신 사람으로, 기독교를 포교하다가 303년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의 ‘아미엥’에서 순교한 주교였다. 원래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축일은 9월 24일이었으나 하필 그즈음이 우기에 속하는지라 적잖은 불편이 따랐기에, 1591년부터 건기인 7월 7일로 축일을 변경하였고 축제 일정 또한 그에 맞추었다.



축제는 ‘추피나소(Chupinazo)’라 하여 시청 발코니에서 작은 로켓을 발사하는 것으로 개막된다. 이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별난 행각을 벌인다. 축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중에, 흥분한 여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내의 어깨에 올라앉아 사람들에게 자신의 맨가슴을 드러내 보인다.

산 페르민 축제의 개막 열기(사진출처=sanfermin.com)


그러면 사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여인의 가슴을 만져대면서 너 나 없이 웃고 즐긴다. 이것은 축제의 하이라이트 투우경기에 참여하는 투우들의 풍만한 젖통을 연상하게 하는 유감 행위일 것인데, 이 축제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광경이 되는 것이다. 그런 유쾌한 행각이 끝나면 사람들은 ‘리아우-리아우(Riau-Riau)’ 왈츠 행진으로 축제 개막을 장식한다.

이후 팜플로나 전역에는 갖가지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엔시에로(Encierro. 소몰이)’와 투우경기로 정점을 찍는다. 마지막 날이 되면 모두가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축제가 끝나니)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뜻의 “포브레 데미(Pobre de mi)”가 들어간 노래를 합창하고, 시장이 폐막 선언하면 모두 축제 상징으로 목에 둘렀던 붉은 스카프를 풀어 내리며 폐막의 아쉬움을 달랜다.


산 페르민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투우경기 전 시내를 발칵 뒤집는 ‘엔시에로’다. 13~14세기 무렵부터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 페르민 축제에 투우경기가 포함된 때는 15세기 무렵이고, 이 엔시에로는 한참 후인 17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엔시에로는 거리의 투우라 할 수 있다.



축제 개막 다음 날부터 시행되는 엔시에로는 매일 아침 여덟 시, 산 페르민 성당의 종소리에 첫 번째 총성을 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총성이 울리면 ‘산토도밍고’ 사육장에서 투우경기용으로 준비한 20여 마리 소들이 거리로 뛰쳐나온다. 이 소 중에는 전혀 길들지 않는 난폭한 소 대여섯 마리가 끼어 있기 마련이다.

사육장에서 소들이 모두 밖으로 나오면 두 번째 총성이 울린다. 사육장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좁은 길로 풀려 나온 소들은 난폭한 소들을 필두로 미친 듯이 골목 거리를 돌진한다. 상황은 지금부터다. 그 소들을 기다리던 천여 명의 사람들, 거침없이 달려오는 소들을 피해가며 투우 경기장까지 이리저리 꺾인 골목길을 극도의 흥분 속에서 목숨 걸고 달린다.

소의 풍만한 젖통을 유감하는 이런 행위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사진출처=sanfermin.com)


마침내 모든 소가 투우장으로 들어가면 세 번째 총성을 울리는 것으로 엔시에로 완료를 알리고, 오후의 투우경기로 이어진다. 엔시에로 중에는 소에 받치거나 쇠뿔에 찔려 다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심할 경우 목숨을 잃기도 한다.

사육장에서 투우 경기장까지의 거리는 9백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엔시에로의 소요 시간은 5분도 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 짧은 공간 안에서 생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광풍이 몰아치는 것이다. 팜플로나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용기와 사내다운 기상을 자랑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행사에 임한다.


산페르민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엔시에로(사진출처=나무위키)


그들은 소들이 골목길에 나타나면, “우리의 수호성인 산 페르민께 바라오니, 우리를 축복하여 소몰이에서 인도하소서!”를 목이 터지라고 외치며 소들과 함께 달리고 달린다. 아마도 이런 극한의 카오스적 광경에 헤밍웨이도 반해 죽기 전 여덟 번이나 이 축제를 찾아왔지 싶다. 스페인 3대 축제 중 하나인 산 페르민 축제는 이처럼 광기와 열기의 ‘한 방’을 갖추고 있기에 세계적 축제가 될 수 있었다. 


지역축제를 담당하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성공하는 축제를 바라면서도 이런 식의 광기와 열기를 뿜어내는 ‘한 방 있는 축제’를 말하면 기겁을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축제의 최우선 화두는 ‘안전’이기 때문이다. 혹여 다른 축제에서 사고로 인명 피해가 났다는 소식만 들렸다 하면 조상 묘자리부터 발칵 뒤집히고, 앞뒤 잴 것 없이 준비하고 있는 축제의 프로그램 중 일부를 생략하더라도 그 예산 가지고 안전 펜스 강화하고 안전 관리 요원 충당하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아예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일호라도 걱정되는 프로그램이다 싶으면 애초부터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축제가 안전하게만 끝나기만을 물 떠놓고 비는 것이다. 광기와 열기가 없는 세계적인 축제는 없다. 이 땅에, 그런 광기와 열기가 불을 뿜듯 하는 축제, 어디에 있느냐 말이다.



글·사진제공=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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