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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8. 2024

인문이 보이지 않는 한국의 왕조문화 재연행사

#Stardoc.kr  최정철칼럼

[스타다큐=최정철 칼럼니스트] 관광상품으로 옛 왕조문화를 오늘에 재연함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우선 고증이라는 엄청난 장벽을 넘어야 하고, 각종 대소도구와 소품, 의상, 분장 갖추는 것에 진땀 흘려야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나라든 왕조 행사를 제대로 재연함에 한계를 갖는다.

왕실 행사라 해 봤자 주로 실내 파티 수준이었던 유럽 나라들은 오늘날 작은 흔적들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버킹엄궁 위병 교대 의식 정도다. 중국 이하 동남아시아 일대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등장과 함께 옛 왕조문화를 봉건 잔재로 몰아 역사 속으로 매장하고 말았다.


조선왕조문화 재연행사의 왕 자리는 언제나 정전밖이다. 사진출처=최정철


일본은 고대부터 왕조 문화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중세를 전쟁으로 해를 띄우고 지우던 센코쿠 시대 쇼군 시대에 묻혔던 일본 왕조는 17세기 도쿠가와 막부시대 때부터 더 강력해진 막부의 권력에 눌려 수면 아래에 잠겨있어야 했으니, 그나마도 내놓을 왕조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19세기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시대가 종결되자 명맥만 유지해 왔던 왕조의 존재가 그제야 대두되었으나, 이미 그들의 왕조문화는 척박한 상태였다.

중남미 고대 왕국들은 수 세기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박멸된 이래 서글픈 전설만 들려주고 있다. 서남아시아 지역은 워낙 종교세가 강하므로 왕조문화는 상대적으로 숨을 죽이는 형세이다. 그럼에도 성공적으로 옛 왕조문화를 재연하여 멋들어진 관광상품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오메강 축제 장면. 사진출처=유네스코유산


벨기에 브뤼셀의 중심 그랑플라스(Grand Place) 광장에서는 해마다 7월 첫째 주 목요일, 화려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행렬 행차가 재연되어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273년, 120년 동안의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를 마감하고 당시의 실세 보헤미안 왕 오타카르 1세를 물리친 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한 자가 스위스 북부 시골 출신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1세다. 이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는 6백 년 동안 오직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들만 앉을 수 있었다.

1500년 황제가 된 카를 5세는 수도를 프라하로 옮기고는 혼인 정책을 통해 영토 확장에 나섰다. 그 결과,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 일부 땅을 제외한 중남서 유럽, 아메리카 대륙, 필리핀 카스티야 식민지까지 영지로 만들었다. 이때의 신성로마제국을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렀다.


카를 5세의 브뤼셀 방문을 재연하는 오메강 축제. 사진출처=브뤼셀타임스


그만큼 위세를 떨쳤던 카를 5세가 1549년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하였고, 그랑플라스 광장에 들어서는 위풍당당한 황제 행차 행렬에 연도 사람들은 넋을 놓은 채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이후 브뤼셀의 길드 집단이 카를 5세의 브뤼셀 방문을 기념한다고 그랑플라스에서 황제 행차를 재연하기 시작한 것이 ‘오메강 축제’다(오메강은 ‘행진하다’의 벨기에 말). 카를 5세를 비롯하여 유럽을 석권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족들과 각종 의물 의장, 석궁 부대, 기마병 부대, 흥을 돋우는 광대들로 구성된 휘황찬란한 행차 행렬이,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추켜세운 세계문화유산 그랑플라스에서 ‘오메강’하는 것이다.


이 오메강은 신성로마제국의 위용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문화유산들과 주민들의 사회 연합체들도 상호 유기적 연대감 교유를 위해 오메강에 참여한다. 5백 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전 세계 왕조문화 재연 축제 중 단연 손꼽히는 위상을 과시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사진출처=서울관광정보


한국의 왕조문화 재연행사는 의미 없는 박제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다. 1996년부터 시행된 덕수궁의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과 몇 년 후 이를 본떠 시행한 경복궁 수문장 교대 의식은 있지도 않은 왕조 의식을 창작해 낸 허상이다. 이제는 근사한 관광 아이템이 되었기에 묻고 넘어가는 것이다.


1995년 경복궁에서 개최한 <제1회 궁중문화재현행사>를 기원으로 삼는 <궁중문화축전>이 현재의 조선 왕조 문화 재연행사 대표주자다. 그러나 조선 왕조가 추구한 인인화락(人人和樂), 여민동락(與民同樂) 등의 철학적 의미와 당시의 인문(人文)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외양 보여주기에만 머문다. 왕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의식 때 문무백관을 대하는 왕은 정전 안 어좌에 앉아 있어야 하건만 언제나 정전 밖 월대 어좌에 앉도록 한다. 사람들에게 왕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며 일부러 끄집어내는 것이다. 정전 가운데 놓인 어도(御道)는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지 왕이 밟고 걸으라는 런웨이가 아님에도 재연행사 때마다 왕이 어도를 걸어 정전을 오르게 한다.

왕의 정전 입출 동선은, 집무실에서 여(輿)를 타고 출발, 정전 뒤를 돌아 정전 동쪽에 도착, 동쪽 계단을 올라 정전 안에 들어가고 일이 끝나면 서쪽 계단으로 내려가 곧바로 정전 뒤 집무실로 돌아가는 식이다. 일상의 조회 때는 정전 건물 뒤 쪽문으로도 들락거렸다. 고증 내용이 엄연히 있음에도 그것을 뒤집어 가며 보여주기식 연출만 난무하는 것이 우리의 조선 왕조문화 재연행사이다.


왕조문화 재연행사의 주인공은 왕이 아니라 철학과 인문이어야 한다. 이 땅의 옛 왕조문화 재연행사들. <궁중문화축전>에는 조선이 없고 <신라문화제>에는 신라가 없으며 <백제문화제>에는 백제가 없고 <태봉문화제>에는 태봉이 없다.



글=최정철 | 축제 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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