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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3. 2024

마음도 몸도 내려놓는 축제 ‘버닝 맨 축제’

#Stardoc.kr  최정철칼럼

[스타다큐=최정철 칼럼니스트] 미국 네바다주 블랙 롹 사막에서 매년 8월 마지막 월요일부터 9월 첫째 월요일(노동절)까지 7박 8일로 치러지는 별스러운 축제가 있다.

축제 참가자들은 사막 위 허허벌판에 공동생활 공간인 플라야(Playa) 외에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를 중심 삼아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지름 2.4km의 큰 부채형 시가지와 약 4.5㎢의 오각형 도시를 스스로 조성한다. 그들은 이곳을 가상의 도시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라 부르고, 축제 명칭은 버닝맨(Burning Man) 축제, 스스로는 버너(Burner)라고 자칭한다.

버너들이 스스로 만드는 예술조형물(사진출처=burningman.org)


버너들은 속되고 헛된 현실의 세상을 벗어나 가상으로 만나는 진정한 세상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을 태워’ 일탈의 환희와 인간 본연의 본능을 마음껏 즐긴다. 이들의 표현 방식 중 때로는 누드를 비롯한 심한 성적 표현도 들어있다. 가상의 도시에서는 누구나 어떤 구애도 받지 않은 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초기에는 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주도해서 시연했으나, 이제는 예술가 못지않게 과감한 퍼포먼스를 뽐내는 일반인들도 증가하고 있다. 버너 중에는 사회적으로 유명인들도 왕왕 보인다. 영화배우 수잔 서랜던과 윌 스미스, 방송인 패리스 힐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 창업자 에릭 슈밋 등도 단골 버너다.


10여 년 전부터 버너들의 수는 7만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참가자 접수만 하고 축제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주최 측은, 늘어나는 수치가 축제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다고 보기에 앞으로는 그 이상 버너들 수가 늘지 않을 듯하다.


축제의 진정한 운영자는 버너들이다. 자기만의 태우기를 즐기는 와중에 스스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즉 참가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각자의 표현 방식으로 서로 소통이 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구애받지 않고 본능을 태우는 버너들(사진출처=burningman.org)


버닝 맨 명칭은 가상 도시에서의 생활이 끝나기 전 토요일 자정 때 블랙 록 시티의 상징물로 만들어 세워둔 사람 형상 대형 조형물인 더 맨(The Man)을 불태우는(Burning) 것에서만 유래된 것 아니다. 원조를 살피면 켈트족의 하지 의식에까지 연결할 수 있다.


켈트족은 하짓날에 고리버들을 엮어 만든 허수아비 위커 맨(Wicker Man)을 불태운다. 그들의 전통 의식이다. 1986년 래리 하비와 제리 제임스가 하짓날 샌프란시스코 베이커 해변에서 나무 인형과 개 형상물을 불태운 것으로 버닝 맨 축제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더 맨은 위커 맨의 환생으로 볼 수 있다.


블랙 롹 시티(사친출처=burningman.org)


축제 이름이 버닝 맨 축제이듯 더 맨만 태워지는 것 아니다. 버너들은 더맨을 태울 때 저네들이 가져와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몽땅 불구덩이에 집어넣어 소멸시키는 것이다. 버너들은 모든 때, 모든 집착을 불꽃으로 없앤 후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버닝 맨 축제의 키워드인 ‘태워 없애기’. 사회적으로 어떤 이정표 혹은 좌표로 삼을 수도 있는 심상찮은 말이다.


침엽수는 날카롭게 솟아난 무성한 잎들을 사시사철 품고, 활엽수는 봄에 올라와 여름에 성하게 되어 서로 부딪히며 소리 낼 정도의 넓은 잎들을 자랑하다가 가을 되면 미련 없이 모든 잎 땅에 떨군다. 겨울 되고 눈 내린다.


축제를 마감하는 '더 맨' 태우기(사진출처=burningman.org)


침엽수는 촘촘한 잎으로 무장한 나뭇가지들로 그 눈 다 받아내다가, 쌓이는 눈 무게 감당하지 못하고는 가지들을 부러뜨려 먹기 일쑤다. 활엽수들은 폭설이 와도 눈 쌓일 잎 없이 벌거숭이인 가지들 잘 건사하였다가, 새봄 그 가지들로부터 다시 잎들을 만들어 낸다. 활엽수들은 ‘내려놓기’의 지혜를 진작에 깨우친 것이다. 버닝 맨 축제와 활엽수가 말하는 ‘내려놓기’. 없애는 것도 없애는 것이지만, 무엇이든 적당한 선에서 멈추라는 것을 귀띔하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문화적 아이템이 유행한다 싶으면 영혼까지 탈탈 털리도록 사골곰탕으로 우려내 먹는다. 예전에는 드라마 하나 인기 얻는다 싶으면 방송 편수 한정 두지 않고 무조건 내달리며 늘리고 늘렸다. 그 본성은 현재 ‘시즌제’로 변형되어 유지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한 종목이 대박 터뜨리면 지상파 방송사든 유선 방송사든 앞뒤를 다퉈가며 덮어놓고 달려들어 그 장르에 집중적으로 매달린다. 그것까지야 경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너무 오래 그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최근의 방송 예능을 트로트 대세로 이끈 MBN ‘현역가왕’과 TV조선 ‘미스트롯3’ 이미지컷. 사진출처=해당 방송 프로그램


거의 10년 가까이 한국의 예능 대세는 트로트 음악이다. 어느 채널을 돌려도 트로트 노래 한 가락 나오지 않는 곳 없을 정도다. 가히 도착 증세다. 80년대 몰지각한 군사 정권이 휘둘러대던 3S에 전 국민이 우민화된 것처럼, 지금은 트로트 노래에 우리가 함몰되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폭람(暴濫) 중이다.


물론 방송산업이라는 여건도 살펴봐야 하나 그것은 방송사들 문제이지, 방송사 간 경쟁에서 살아남겠다고 ‘국민의 문화 향유 폭’을 볼모로 삼는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버닝 맨 축제는 폭발하는 인기에 편승해서 버너 수를 늘리는 행위, 절대 하지 않는다. 7만 명으로 딱 끊고는 뒤도 안 돌아본다.



글=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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