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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17. 2024

한민족은 소의(素衣) 민족이었다

#Stardoc.kr  최정철칼럼

[스타다큐] 영국의 지리학자요 여행가였던 이사벨라 비숍은 19세기 말 조선을 서너 차례 방문한 후, “조선인은 흰색 옷의 민족(백의민족)”이라고 자신의 기행문에서 밝혔다. 그 무렵부터 한국인은 서양인들에게 ‘백의민족’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졌다.


신미양요 당시의 조선인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동이 백의민족’이라는 기록은 고대부터 있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부여인은 흰색 옷을 좋아한다. 흰 삼베로 만든 소매 넓은 도포에 흰 바지를 입는다”라고 하는 등 중원의 역사서에는 동이족의 ‘백의’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 백의에는 두 개의 흰색 옷이 들어 있다. 염색으로 얻는 흰색 백의(白衣)와 천연으로 얻는 흰색 소의(素衣)다. 삼베든 솜이든 천연에서 뽑는 실은 엷은 황색을 띠는 담백한 흰색, 소색을 띤다.

이것을 방직하여 만드는 옷이 소의이고 마침 질기고 때까지 잘 타지 않다 보니, 서민들은 비싸게 염색할 것 없이 소의를 즐겨 입었을 것이다. 고려 공민왕이 염색가공의 백의를 금지한 적 있을 정도로 옛날에는 흰색 염색에 제법 돈이 들었던 듯하다.


한국인은 원래 초상이 나면 소복(素服)을 입었다. 남자는 소색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요, 여자는 소색 치마저고리였다. 재료는 삼베나 광목이었으나 제대로 한다면 삼베를 취해야 했다. 고인을 염할 때 삼베 천을 쓴다. 삼베는 자연을 뜻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생겨나 죽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의미하자고 삼베를 쓰는 것인 만큼 유족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고인의 뒤를 따르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전원 삼베 소복에다 삼베로 만든 굴건, 요질(허리띠), 수질(머리띠), 신을 착용하는 식으로 궁색을 맞히곤 했다. 삼베든 광목이든, 어찌 되었든 간에 ‘소색 상복’이었다.


곤복을 입은 순종. 사진출처=국립고궁박물관


한국인에게 있어서의 검은색은 명예와 위엄을 드러내는 색이었다. 조선시대 때는 왕 즉위식, 망궐례(정월 초하루 중원 천자가 있는 곳을 향해 조선 왕이 올리는 의식), 조하의(왕이 문무백관과 일본 등 변방국 사신들로부터 정월 초하루나 왕 생일 때 하례를 받는 의식), 종묘제례나 사직대제 같은 국가적 의식 때 왕은 곤복(袞服)이라는 검은색 옷을 입었다.

검은색 옷은 아무나 아무 때나 입는 옷이 절대 아닌 진귀한 옷이었음이다. 그랬던 검은색 옷은 20세기부터 비로소 일상에 정착되면서도 ‘명예와 위엄을 나타내는 옷’이라는 개념만큼은 굳세게 지켰다.


그런 검은색 옷에 대한 관념이 제대로 깨진 것은 1980년대부터다. 검은색 옷이 졸지에 상복으로 전락한 것이다. 초상나면 남녀 가리지 않고 검은색 상복부터 챙겨 입는 것이 오늘의 장례식장 풍경이다.

이런 상복 문화는 1980년대 일본 상조회사들이 한국에 상륙한 이후에 굳어진 것이다. 서양 문화를 무척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이 장례 때 검은 정장을 입는 것을 자신들이 따르듯이, 한국에 상조회사를 세우면서 검은 상복을 힘써 전파한 것이다.

장례식장에 파견하는 직원들에게 검은색 양복 정장을 입히고, 유족에게 내주는 상복 또한 남자는 검은색 양복 정장, 여자는 검은색 치마저고리다. 초상집 상복 풍경이 온통 검다 보니 문상가는 사람들도 검은색 양복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고인에게 무슨 대죄를 짓는 것과 진배없게 되고 말았다.


국제탈춤축제로 유명한 곳이 하회별신굿탈놀이의 고장인 경북 안동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안동에 있다. 안동포(安東布)다. 가늘고 곱게 짜내는 것이 여느 직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고급스럽기에 조선 초부터 명성 자자했다.


안동포. 사진출처=andongpo.or.kr


안동포는 조선 중기 때부터는 궁중 진상품으로 지정됨과 함께 명청과의 교역품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조선 팔도에 위명을 떨쳤던 안동포가 여름철 평상복뿐 아니라 상복으로도 널리 애용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보라고 하는 것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안동시와 안동포 제조에 종사하는 현지 주민들은 어떡하든 안동포를 널리 홍보하고 싶을 것이요, 그렇다면 전략적인 홍보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인의 전통 소의상복(사진출처=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전국 장례식장 혹은 상조회사들과 협의하는 등 일본이 이입한 검은색 상복 문화를 청산하고, 잊혀가는 우리네 ‘소복 상복’ 문화 복원의 범국민 운동을 안동포가 나서서 주도하기. 여기에 홍보용 행사를 하나 곁들일 수도 있다.

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라는 세계적인 축제가 있다.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삶에의 각성을 다지는 매력적인 축제다. 한국에는 아직 없는 ‘죽음’ 소재의 축제를 안동포와 연계시켜 시행해 보기. 이 또한 홍보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런저런 식으로 안동포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영글게 하다 보면 상복 용도뿐 아니라 여름철 평상복이든 2차 가공품들(Goods)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덩달아 홍보 효과를 얻어 그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소의 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으로서의 이미지 격상과 함께 안동포 산업 활성화에의 좋은 전략이 되겠다는 판단이 선다면, 안동시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보길 제안해 본다.



글=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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