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다큐=최정철 칼럼니스트] 영국 햄프셔주의 윈체스터에서 해마다 8월 초가 되면 닷새 동안 개최되는 공연예술축제가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약 6만 명이 유료(290~350유로)로 참가할 정도로 대단한 명성을 자랑한다.
주최 측은 축제 공간을 임시 가상 도시인 ‘붐 타운’으로 명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축제의 명칭은 <붐 타운 페어(Boom Town Fair)>다. 축제는 EDM, 레게, 더빙, 펑크, 스윙, 포크, 월드뮤직, 디스코,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과 참여자들 스스로 만들어 내는 예술 행위로 꾸며진다.
붐타운 페어의 캠핑 장면 (사진출처=boomtownfair.co.uk)
예술 행위는 보디페인팅도 있을 수 있고, 예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표현하려는 그 어떤 몸짓도 가능하다. 밤새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도 된다. 열정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옷을 홀딱 벗고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른바 저네들만의 ‘자유 해방구 붐 타운’을 구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방비적으로 분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축제장을 운영하기 위한 몇 가지 규약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약을 한다거나, 피우다 만 담배를 불 끄지도 않은 채 함부로 내 던진다거나 하는(실제로 담뱃불 하나로 승용차 8백 대를 한방에 태워 먹은 적 있다) 선 넘는 행동에는 규제가 따른다.
축제가 펼쳐지는 공간은 영역을 크게 네 곳으로 나누어 각각의 개념을 설정한다. 언덕(hilltop), 도심(Downtown), 휘슬러 그린(Whistler Green), 템플 밸리(Temple Valley)로 나누는데, 각 영역에는 하나 이상의 주 무대와 소규모 혹은 중규모의 음악 공연장, 거리 공연장을 갖춘다.
각 영역은 다시 열 개 내외의 작은 구역으로 재차 나뉘고, 구역마다 선출되는 촌장이 있어 그의 지휘하에 구역마다 독특한 공연을 운영한다. 공간을 사분오열 식으로 나누고 각각 다른 개념 설정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것, 이것만 놓고 봐도 여느 축제에서는 볼 수 없는 짜릿한 구성 방법인데 여기에 결정적으로 기발한 장치가 얹힌다.
축제 때마다 새로운 주제를 주고 그 주제에 맞춘 이야기를 꾸려가며 올해~내년~내후년 식으로 연결되어가며 진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마치 장편 소설을 올해 챕터1을 읽고 내년에 챕터2를 읽는 것 같은 방식이다.
첫해인 2009년은 ‘챕터1 : 붐 타운의 시작’으로 시작해서 2010년 ‘챕터2 : 외부 세력의 등장’, 2011년 ‘챕터3 : 붐의 소멸’, 2012년 ‘챕터4 : 외계인의 존재’ 이런 식으로 연속성을 띠며 이야기를 성장시킨다. 올해 2024년은 ‘챕터14 : 한때 도시를 지배했던 첨단 기계 지능’을 주제로 삼고는, 그 이야기를 이미 공고해 두고 있다.
주제에 맞춘 분장 차림으로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사진출처=boomtownfair.co.uk)
챕터별 이야기는 계속 연결되기에 이 축제가 사라질 때까지 이야기는 운명처럼 영원히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제시되는 주제와 이야기는 곧 축제장 공간 장식의 원칙이 되고 참여자들의 의상, 분장 등에 반영된다.
‘외계인의 존재’라는 주제와 그에 맞춘 이야기가 설정된 축제에는 대형 거미 형태(외계인의 우주선)가 무대 장치로 세워졌다. 이 엄청난 장치로 불을 뿜고 증기를 뿜어내는 퍼포먼스를 펼쳐내는 중에 외계인이 된 사람들은 그 아래에 모여들어 신나는 EDM 파티로 신명을 즐겼다.
붐 타운 페어는 왜 이런 서사적 구조를 가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재미’다. 재미있는 축제에 대한 기대감, 축제 참여 시 기대했던 것 이상의 재미를 만끽하기. 그런 축제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음악공연 장면 (사진출처=boomtownfair.co.uk)
붐 타운 페어는 ‘축제와 이야기’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도 해마다 장편 소설 이야기 형태의 공연예술축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은 아니다. 5천 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통해 생성해 온 우리들의 엄청난 이야기들을 돌아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신화, 역사, 설화, 영웅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뼈와 살로 삼아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참관객들 스스로 즐기는 축제. 왜 그런 축제가 이 땅에는 만들어지지 못할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 축제는 여전히 주최 측이 주인이 되는 ‘전시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조의 화성행차는 대단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화성(華城)은 ‘아름다움(華)이 국력’이라는 정조의 철학이 담긴 명칭이다. 정조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문화력으로 군사력으로 경제력으로 나라가 강력해지는 것. 그것을 ‘아름다움’의 실체로 본 것이다.
화성행궁 봉수당진찬연 재연장면 (사진출처=수원문화재단)
정조는 한양 이후의 새로운 수도, 한민족의 이상 도시인 화성을 기획하면서 ‘아름다운 조선’을 꿈꾼 것이었다. 그런 숭고한 ‘이야기’가 있음에도 오늘날의 정조 화성 행차 재연행사는 오로지 전시성으로만 꾸며지고 있다.
극히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행차 내내 쓸쓸하기만 한 정조 행렬 재연, 수원 화성행궁에서의 궁중 연희, 장용영 군사들의 용맹을 뽐내는 무예 시연, 정조대왕 만세를 외치는 무대극 등, 한결같이 전시성에만 초점을 잡고 있다.
연도 구경꾼보다 가마멜꾼이 더 많은 정조 행렬 재연 행차 (사진출처=수원시청)
자기 죽음으로 미처 꽃을 피우지 못했던 18세기 정조의 ‘아름다운 나라’. 21세기의 서울 수원 화성 세 도시가 꿈꾸는 정조의 꿈. 이제는 외형적 재연과 전시성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축제 참여자들의 마음에 파고드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새롭게 탄생 되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