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Aug 08. 2024

한국인 고유의 러브 축제를 만들어 보자

Stardoc.kr 최정철칼럼

로마 왕국 이전의 아이네아스 왕국에 루페르칼리아(Lupercalia)라는 러브 축제가 있었다. 전쟁 신 마르스와 여사제 간 있으면 안 될 사랑에 의해 탄생한 로물루스는 아이네아스 왕 아물리우스에 의해 티베르 강가에 버려지지만,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 훗날 로마를 건국한다.


이 신화가 루페르칼리아 탄생의 배경이다. 축제 내용은 이렇다. 젊은 여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은 표를 큰 항아리에 넣으면 젊은 남자들이 그중 하나를 골라내어 짝이 맺어진다. 그렇게 맺어진 짝은 축제를 즐기는데, 사랑에 빠지면 결혼에까지 이른다.


서양의 러브축제 밸런타인데이. 사진출처=나무위키



269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북쪽 땅 고트족 정벌에 필요한 군대를 갖추기 위해 징집 대상인 젊은 남자들에게 금혼령을 내렸다. 그러자 청춘남녀들의 애정전선 사수를 위해 가톨릭 사제 밸런타인이 분기탱천 나섰고, 이에 화가 난 황제는 그를 처형하고 만다. 그날이 2월 14일이다.

그 후 청춘남녀들은 이날을 밸런타인데이로 삼아, 밸런타인을 추모함과 동시에 2월 15일 행했던 루페르칼리아를 하루 앞당겨 즐겼다. 서양의 밸런타인데이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19세기부터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선물이 시작된다. 사진출처=머니S


동양의 전통 러브 축제는 중원 땅에서 발원된 칠석이다. 미안하지만 칠석은 러브 축제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칠석 되면 밤하늘 중천에 밝은 별 하나 뜬다. 직녀별이다. 이때가 시기적으로는 입추 일주일 정도 후인만큼 여름 지나고 가을 초입 무렵이다.


가을부터는 겨울 걱정하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겨야 하기에, 남자들은 추수 나서고 여자들은 길쌈 시작한다. 점점 추워지는 나날에 쫓기며 밤늦도록까지 길쌈하던 여자들은 문득 목 좀 펴느라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자니 중천에 별 하나가 유난히 빛나는지라 그 별에 저네들의 애틋한 정서를 붙여보자고 길쌈하는 여인, 직녀(織女) 이름을 새겨 주었다.


이 직녀별이 중천에서 밤하늘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을 무렵, 직녀별 맞은편 은하수 건너 동남쪽 하늘에도 밝게 빛나는 별 하나 보인다. 견우별이다. 견우별은 음력 8월 직녀별이 서쪽 하늘로 기울어지는 것에 맞춰 그 자리를 이어받아 중천에 든다.


고구려 덕흥리 벽화 무덤(408 AD)에 등장하는 견우와 직녀. 사진출처=나무위키


고대 중원의 군주들은 연말 섣달 되면 하늘의 상제에게 올리는 대전(大典) 제사를 거행했다. 제사에 쓰일 희생(犧牲)은 소 양 돼지로, 어린 것들을 추려내어서 음력 3월부터 정성껏 키운다. 그러다가 음력 8월 되어 밝은 별 하나 밤하늘 중천에 뜨면, 그것을 기점으로 삼아 희생 짐승들을 본격적으로 살을 찌웠으니, 그때 보이는 별이라 하여 소를 끈다의 견우(牽牛)라고 불렀다.


이 얘기의 핵심은 직녀별과 견우별은 도무지 만나지 못하는 사이이라는 것이다. 분명코 직녀별은 쫓아 오는 견우별을 냉정하게 버리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직녀별과 견우별은 각각 겨울을 준비하는 남녀를 상징하기만 할 뿐, 애끓는 연인 얘기로 승화하기에는 이렇듯 엄연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칠석을 러브 축제로 보는 것은 개연성 없는 억측에 불과할 뿐이요, 어쩌다 별 이름들 붙이고 보니 남자 이름에 여자 이름인지라, 심심풀이 삼아 오작교까지 만들어 가며 둘을 맺어주는, 그런 삼류 로맨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따로 눈여겨볼 것이 있다. 청명(淸明)이다. 청명은 24절기 중 하나로 해마다 4월 5일 무렵에 든다. 이날은 한식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도 있다. 국가적 명절로 삼은 중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저 절기 하나 지나가는 정도로 여기지만, 청명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크다. 청명은 곧 활기찬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2012년 청춘남녀 커플맺기로 치러진 솔로대첩은 남자 과다 참여로 대패하고 말았다. 사진출처=YouTube


옛날로 치면 농사 준비를 분주히 시작할 때로, 일 년 중 날씨가 가장 명랑한 때가 바로 청명 무렵이다. 입춘은 여전히 추위를 머금고 있고 우수에는 비 질척거린다. 경칩에는 벌레 난무하니 눈에 띄어 아름다울 리 없다. 경칩 지나면서 남자들은 슬슬 기운을 추스르고, 연이어 춘분 되면 코끝에 봄내음 달라붙다가, 청명이 되어서야 비로소 봄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자들은 살랑살랑 봄바람에 치맛자락 나풀대며 봄놀이 꽃놀이에 마음 싱숭생숭해지고, 남자들은 불끈거리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땅 가는 가래질 소리에 산천이 울린다. 한 마디로 젊은 남녀들 정분나기 좋은 때가 바로 이때다.


그러니 이제는 허황한 견우직녀 얘기는 내려놓고, 중국에서는 성묘에만 집중하는 청명을 우리식 러브 축제로 삼아 즐겨봄은 어떨까? 가뜩이나 후손 증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임에랴.



글=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28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