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May 18.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글을 쓰며      


2019년. 봄이 되면서부터 갈증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정월부터 하는 일마다 꼬이기 시작하더니 내 스스로의 무기력함이 나를 짓눌렀습니다. 너무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현실에의 패배감이 눈앞을 가로막고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면서 결국 어떤 바람 한 가지가 나로 하여금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거의 무병(巫病) 수준에 이르도록 했습니다. 그 어떤 바람이란, 바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것. 무병 걸린 사람은 내림굿 받아 거듭나듯이 나 또한 나만의 푸닥거리를 해야 했습니다. 떠나야죠. 그저 떠나야 합니다. 떠나고 싶은데 안 그러면 내 몸 안에서 간질발작 일어납니다. 내 성향이 원래 그렇습니다.  

벌이도 시원찮은 와중에 이 악물고 초여름부터 여행비를 쥐어짜 모았습니다. 8년 전, 5백만 원 가지고 한 달 동안 동유럽 배낭여행 넉넉하게 잘 했던 경험을 살려서 이번에도 그 정도 비용을 상정했습니다. 동유럽 여행 이후 북유럽 쪽도 많지는 않지만 몇 몇 나라들을 가 봤으니 이번에는 그동안 묵혀 두었던 서유럽 땅을 행선지로 정했습니다. 마침 일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가을 프로젝트 하나가 있으니만큼 일단 가을 일정은 피하기로 합니다. 또 비용 문제상 성수기인 여름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더욱이 그 더운 여름에 여행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도 없습니다. 뜨거운 날씨에 땀을 비 쏟듯 흘리며 돌아다닌다? 그런 고생도 없습니다. 결론, 가을 프로젝트 건너뛴 이후요 경비 덜 드는 비수기 연말을 노리기로 합니다. 

이제 한 곳 한 곳 목적지들을 여정 동선이 이어지도록 맞춰 가며 골라냅니다. 무엇보다도 지중해와 사하라만큼은 가야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의 희망이었으니까요. 내친 김에 대서양도 서유럽 땅 끝도, 노르망디 바다도 그림이 이어집니다. 

여정의 기본 흐름은 어느 도시를 베이스캠프 삼아 주변 외곽 지역들을 당일치기 식으로 다니도록 코스를 잡았습니다. 스페인(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싯체스, 그라나다, 모트릴, 프리질리아나, 네르하)~모로코(페스, 사하라, 라바트, 탠지어)~스페인(세비야)~포르투갈(리스본, 신트라, 호카곶, 카스카이스)~프랑스(트루빌, 파리). 

* 이 외에 스페인의 코르도바와 카디스, 프랑스의 옹플레르 등은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추가함.     


일정을 짜 보니 이번에도 한 달 정도 되는 여정입니다. 뛸 만합니다. 이어서 양념 바르기. 스페인에서는 플라멩코(Flamenco), 포르투갈에서는 파두(Fado), 프랑스에서는 샹송(Chanson)을 만나기로 합니다. 사하라에서는 베르베르족 전통 가무악 아히두스(Ahidos)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제는 일정에 맞춰 경비를 뽑아야 합니다. 우선 출국 귀국 항공편은 땡처리 비행기 표로 확보했습니다. 출국 동선은 인천 → 파리(경유) → 바르셀로나, 귀국 동선은 파리 → 인천(직항). 두 장 비행기 표 값은 86만 원. 몇 달 전 즈음해서는 이런 조건의 저가 항공권을 운 좋으면 건질 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리스본 → 파리, 이 두 코스 이동도 현지 저가 항공권으로 예약, 해결합니다. 표 두 장 값은 각각 6만 원과 11만 원. 현지에서 이동할 때 시내 대중교통편은 웬만하면 걸어 다니되 어쩌다 한두 번 버스 혹은 택시 탈 것 요량해서 현지 대중교통카드 구입 대신 그때 그때 처리(파리에서는 7일짜리 나비고 카드 구입이 훨씬 유익해서 구입)하는 것을 포함해서 시외버스, 페리 등 교통비 전체 60만 원. 유적지와 박물관 등 입장료 30만 원. 숙박은 가급적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룸 혹은 3만~4만 원 가격대 에어비앤비로 해결하고 식사 역시 가볍게 해결, 한 달 동안의 숙박비, 식비, 음료비 합쳐서 2백만 원(숙박비가 비싼 날에는 그만큼 식비를 줄임). 기념품 구입 30만 원. 비상금 대략 30만 원. 모두 합하니 4백 50만 원입니다. 내가 계산을 잘못했나 왜 이렇게 적게 나왔지? 몇 번을 더 따지고 계산해 봐도 어김없습니다. 흐뭇하고 훌륭합니다. 이제 나머지 작업으로는 시간 날 때마다 웹사이트, 블로그와 유튜브 동영상들을 뒤져 가며 각 행선지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 채집. 그런 식으로 하나둘 준비해 나갔습니다. 


고대했던 가을 프로젝트 역시 무산되었습니다. 2019년은 내게 있어서 악몽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심장 콩닥거리게 만드는 연말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렇게 비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흐르다가 마침내 11월 말이 되었습니다. 움직일 때가 왔습니다.      

가냘프게 메말라 있는 달력을 바라보며 생각 두 가지를 배낭에 담았습니다. 

배낭에 담았던 생각 그 하나. 늘 불안한 내 경제 여건, 앞으로의 삶에 대한 초조감과 불안감. 잠깐씩의 직장생활이야 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한 봉급쟁이 생활이었고, 내가 걸었던 주된 길은 바로 프리랜서의 길이었습니다. 덕분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곧 다가올 내 인생 노년기에 대한 초조감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도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쳐 오니 이래저래 천근 걱정입니다.       

배낭에 담았던 생각 그 둘. 지금의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으며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자책. 대학생 시절, 연극 작가로 창의 분야에 투신한 이래 연극 작가 외에 방송드라마 작가, 공연 연출, 문화 기획, 대학교 겸임교수 등의 여울목들을 거치며 용케 샛길로 빠지지 않고 하나의 물줄기로만 달렸습니다. 물론 때로는 거리 좌판 장사꾼, 다방 DJ, 청소부, 편의점 알바 등 이런저런 여타 직종의 일도 경험했습니다만, 그것은 글쟁이로서의 작가적 호기심에서의 목마름이었던 것이지 어떤 큰 결과를 얻으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흐르던 내 작은 물줄기는 홀연 축제라는 큰 강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축제 감독으로 때로는 축제 평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이렇게 일갈하더군요. ‘축제 일 하면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 물론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에 한순간 찬바람이 일어났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이 말은 곧 여차하면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쉽게 고꾸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축제를 꿈꾸고 축제를 빚어 내는 일로 먹고 살면서도 아직 진정한 축제인으로서의 철학을 제대로 품고 있지도 않았는데? 축제는 인간 행복을 추구한다고 스스로 주장하면서도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그저 화려하고 튀는 축제만 열심히 쫓았다 싶은데? 그런데 벌써 고꾸라진다고?······. 

고꾸라지는 것이야 팔자소관이니 어찌 하겠습니까만, 한 가지 폐부를 헤집는 것이 있습니다. 경제와 정치, 미디어, 산업기술이 사회의 근간이 되고 인간 생활의 편의를 향상시키는 에너지라면, 축제는 인간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또 다른 에너지일 것입니다. 그런 만큼 축제는 인간을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제 감독으로서 앞으로의 내 숙제는 바로 ‘인간적인 축제’가 될 것입니다. 그 인간적인 축제를 언제인가는 내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현재의 내 절절한 소망입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번 여행에서 그것에 관한 어떤 영감을 얻고 싶었습니다. 축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 두 가지 생각을 놓고 실레시우스(Silesius)가, ‘과거의 내 존재와 관념을 죽여야 거듭난다. 죽어야 살아난다.’라고 한 얘기를 곱씹으며 이번 여행이 도전과 극복을 위한 강렬한 통과의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분발을 끌어올리자고 여행 코스는 가능한 한 어렵게 꾸몄습니다. ‘어디어디를 다녀 보았다’보다 ‘누구누구를 만났고 어떠어떠한 일을 겪었다’로 여행의 참맛 즐기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렇게 떠난 나그네 길.

때로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고,

때로는 불편한 일도 겪었고,

때로는 황당한 일에 기겁한 적도 있고,

때로는 아련한 추억도 새겼고,

때로는 가슴 아픈 일도 목격했고,

때로는 포복절도 웃기는 일도 있었고,

때로는 장대한 자연 장관에 정신을 놓은 적도 있고,

때로는 짜릿한 만남과 아쉬운 작별도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도전과 극복은 한 달 여정의 성공적인 완수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성취해 내었다는 것에 따른 큰 자신감이 내 마음 속에 교교(皎皎)하게 자리 잡고 들어앉았습니다.

사하라에서 얄라(가자)~!를 외칠 때의 강렬한 힘이 내 의지 속에 도도(滔滔)하게 자리 잡고 들어앉았습니다.

파리의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터져 나오던 번뜩이던 영감이 내 머리 속에 고고(孤高)하게 자리 잡고 들어앉았습니다.

여행 출발 전의 생각 두 가지, 앞날에의 두려움과 내 존재에의 자괴감을 배낭에 담고 갔습니다만 돌아올 때의 배낭에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과 축제에의 좋은 영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2019년 11월 26일 출국 날 이른 아침.

15kg 무게의 배낭을 메고 뒤뚱거리며 집 앞 공항버스 정류장을 향합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이라 제법 추운 날씨임에도 등에서 땀이 납니다. 다리 쪽에서도 후들거리는 신호가 옵니다. 내 걱정 두 개를 품고 있는 배낭이 걱정된다며 이렇게 묻습니다. 

“너, 해낼 수 있겠냐?”

나나 배낭이나 걱정으로 해를 띄우고 지우는 신세입니다. 하지만 아랫입술 당겨 뭅니다. 인생에 대한 도전, 축제에 대한 도전, 시작합니다.     

여행은 인생을 완성시키는 일탈입니다. 축제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행위입니다. 일에 지친 심신을 정화시켜 주는 일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제 역시 인생을 완성시키는 일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축제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언제나 여행을 나만의 축제로 여기기에 이번 여행에도 그런 생각을 품습니다. 예순 나이를 목전에 둔 처지, 늙어감에의 불안에 쫓겨 떠난 이번 여행에서는 특별히 이런 각오도 불끈 하게 되더군요.  

“오늘이 힘들다고 슬퍼만 하지 말자.

내일이 두렵다고 걱정만 품지 말자.

스스로 포기하면 세상이 너를 포기한다.”          


<노선>

11월 26 인천~바르셀로나(출국)                    

11월 27일  바르셀로나       

11월 28일  바르셀로나~몬세라트~싯체스~바르셀로나  

11월 29일  바르셀로나~그라나다     

11월 30일  그라나다~코르도바~그라나다    

12월   1 모트릴~프리질리아나~네르하~모트릴  

12월   2 모트릴~말라가       

12월   3 말라가~나도르~페스      

12월   4 페스         

12월   5일  페스~메르주가       

12월   6 메르주가~마라케시      

12월   7 마라케시~라바트        

12월   8 라바트        

12월   9 라바트~텐지어        

12월 10 텐지어~타리파~세비야     

12월 11 세비야~카디스~세비야

12월 12 세비야        

12월 13 세비야~리스본       

12월 14 리스본~신트라~리스본     

12월 15 리스본        

12월 16 리스본~호카곶~카스카이스~리스본  

12월 17 리스본~파리       

12월 18 파리~트루빌 도빌~옹플레르~트루빌 도빌    

12월 19 트루빌 도빌~파리      

12월 20 파리         

12월 21일  파리         

12월 22 파리         

12월 23 파리~인천(귀국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에 담는 글(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