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에 오는 미식
할머니는 농사꾼이었다.
힘이 장사인 양반이셔서 팔순도 넘게 넓은 고추밭을 혼자 일궜다.
명절이면 4인 식구가 일곱이나 모이니까 고추만으론 올라가는 손을 채워주기 힘들다며 산기슭엔 고구마를 심고, 마을 회관 가는 길 삼각형 모양 자투리 땅엔 깻잎을 빽빽하게 심고, 고추밭 모퉁이엔 우리 키만한 옥수수 나무가 섰다.
그런 할머니도 힘들다 하셨던게 조청과 참기름이다. 올해가 마지막잉게 내년엔 기대도 말라는 엄포와 함께 참기름 3병, 조청 한 덩어리를 보자기에 동여매준다.
탈곡기가 있기 전에는 온 몸으로 참깨를 털어야 했다.
삼촌 넷이 돌아가면서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가을이면 파란 하늘 아래 깨와 인간이 함께 탈탈 털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한 톨 한 톨이 귀한 국산 참깨를 기름 짜는 내내 방앗간 옆에 딱 붙어 다른집 깨와 섞이진 않는지, 혹시나 중국산 깨와 바꿔치지 않는지 눈 부릅뜨고 지키면 기름 21병이 나온다. 일곱 가족 나누면 일년에 겨우 3병꼴이다.
조청 밑재료는 들쭉 날쭉하다. 늙은 호박이 잔뜩 남은 해는 호박을, 쌀가루나 옥수수가루가 남은 해는 그것들을 끓이는 식이다.
나무 장작이 약하면 조청이 덜 뭉치고 너무 강하면 끈적이는 액체가 홀라당 타버려 쓴 맛이 나고, 깜박 잠들면 그대로 숯검댕이 꼴이 나는 반죽을 고모와 할머니 둘이서 밤을 지새우며 저었다.
겨울 바람은 또 얼마나 매서운지. 가마솥 연기는 이상하게 항상 얼굴 정면으로 쏘아오는 통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직 겨울 하늘이 시커먼 시간에 새벽닭이 울었다.
검은 가마솥에서 건져낸 까맣고 반질반질한 조청.
냉장고 잡내와 섞일까봐 겨울 눈바람으로 단단히 굳힌 덩어리를 요리에 쓰기 조차 아까워 냉동실 구석에 꼭꼭 숨겨 둔다.
흑곶감까지 다 떨어지고 제대로 된 단 맛이 그리울때. 늦겨울 시린 속을 달래며 깨먹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