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 답변이 왜 이렇게 느려?’
'너무 사전논의만 하다가 업무 진행이 제대로 안 되는거 아냐?’
‘왜 자기 주장대로 일을 하려고 해?’
‘왜 이렇게 업무를 대충해?’
한국에서 프랑스 관련 일을 하면서 그리고 프랑스에 살면서,
나는 프랑스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났다.
(사실 긍정적인 피드백보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더 많았다....)
프랑스에 대한 클리셰가 워낙에 강해 저런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특히나, 법적으로 보장되는 프랑스의 긴 휴가나 미디어에서 그리는 여유 있는 프랑스인을 생각하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은 지레짐작을 충분히 할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은 대부분 한국인의 관점에서 프랑스를 바라본 결과다.
잘 살펴보면 우리는 많은 오해를 사실로 받아들여왔다.
1. '메일 답변이 왜 이렇게 느려?' - 소통 기한과 빈도에 대한 관점
프랑스에서는 ‘빨리 답하는 것’보다, 절차를 거쳐 ‘제대로 답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답변이 늦어질 때가 많다. 이는 무시가 아니라, 검토 과정이 길거나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혹은,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거나 답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면, 답이 늦거나 오지 않기도 한다...
2. '너무 사전논의만 하다가 업무 진행이 제대로 안 되는거 아냐?’ - 사전 합의와 계획에 대한 관점
프랑스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조직 차원의 합의와 다른 검토 사안 등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또, 각자의 책임 범위와 역할이 명확해서 누가 무엇을 할지 정하는 시간도 좀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업무 착수가 늦어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추후 발생 가능한 혼선과 갈등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과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3. ‘왜 자기 주장대로 일을 하려고 해?’ - 지시사항 수행에 대한 관점
프랑스에서는 의문이 생기거나 코멘트할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혹은 짧은 메시지나 메일로 의견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곳에도 위계는 존재하지만, 상사의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질문과 반론도 업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일을 바로 시작하기보다, 이런 의견 교환을 거친 뒤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식 관점에서는 그 과정이 느리게 보일 수도 있다.
4. ‘프랑스는 왜 업무를 대충해?’ - 소통 도구와 업무 진행 디테일에 대한 관점
프랑스에서는 문서나 형식 같은 ‘도구’보다, 그 안에 담긴 논리와 방향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문서에 사소한 오류가 있더라도, 말로 보완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디테일 실수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테일 점검 시간 대비 효율이 낮다고 판단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리하고 “이 일을 왜 하려는가”, “무엇을 설득하려는가”를 더 많이 묻는다.
프랑스는 한국의 ‘속도’, ‘지시사항 준수’, ‘강한 디테일’의 기준으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한국식 업무 문화에는 어떤 오해가 숨어 있을까. ‘빨리빨리’가 정말로 효율을 보장하는지, 그 질문부터 다시 던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