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구글, 아마존 같은 초대형 플랫폼 기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기술이 약해서가 아니라, 강한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소비자 플랫폼보다 국방, 인프라, 산업 기술과 같은 전략적이고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경쟁력을 가진 나라다. 연구개발 투자와 인재 기반도 탄탄해 기술 수준 자체는 높다. 인공지능, 사이버보안, 양자 기술, 항공우주, 산업 소프트웨어까지. 이들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글로벌 경쟁력의 중심에 있는 분야들이다.
프랑스의 AI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ChatGPT나 구글 같은 소비자 서비스 중심 구조와는 다르다. 프랑스 AI의 핵심은 산업에 들어가는 AI다. 금융, 헬스케어, 제조, 국방, 공공 데이터와 같은 영역에서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로 활용된다.
이 구조는 꽤 강력하다. 프랑스에는 수천 개의 AI 스타트업이 존재하고, 벤처 투자에서도 AI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연구 인력과 신규 인재 공급 역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들을 보면 방향이 더 명확해진다. Hugging Face는 오픈소스 AI 생태계에서 글로벌 표준을 만들었고, Dataiku는 기업용 AI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Mistral AI 역시 유럽을 대표하는 모델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이버보안은 프랑스가 구조적으로 가장 잘 갖춰진 분야 중 하나다. 이 분야의 특징은 단순히 기업이 강한 것이 아니라 국가, 규제, 산업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의 보안 기관을 중심으로 보안 인증, 표준,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민간 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까지 더해지면서 보안 소프트웨어부터 서비스, 국가 방어까지 전체 스택을 모두 갖춘 구조가 만들어졌다.
양자 기술은 프랑스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분야다. 이 분야는 단기간에 돈을 벌기보다는 오랜 시간 연구와 인재 축적이 필요한 영역이다.
프랑스는 여기에 매우 강하다.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와 함께 박사와 연구 인력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고, 기초 연구 기반이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산업이라기보다 연구에 가까운 단계다.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수익 모델도 명확하지 않다.
로보틱스에서도 프랑스의 특징은 분명하다. 프랑스는 로봇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아니라 로봇을 ‘솔루션으로 만들어 파는 나라’다.
실제로 산업용 로봇 보급은 독일보다 크게 뒤처져 있다. 제조 자동화 자체는 강점이 아니다. 하지만 물류 로봇과 같은 분야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Exotec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시스템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항공우주는 프랑스가 가장 확실하게 강한 분야다. 이 산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산업, 유럽 협력이 결합된 구조다.
Airbus를 중심으로 한 항공 산업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고, 엔진, 전자, 시스템까지 전체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우주 분야에서도 유럽은 독자적인 접근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분야는 B2B 소프트웨어다. 프랑스는 소비자 앱이 아니라 산업과 연결된 소프트웨어에서 강하다.
제품 설계, 시뮬레이션, 디지털 트윈, 그리고 IT 서비스와 같은 영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구글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산업 구조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랑스는 플랫폼을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산업과 기술을 만드는 나라다. 눈에 보이는 서비스는 약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핵심 기술에서는 강하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기술의 ‘개수’가 아니라 그 기술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능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