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크기업, 프랑스 기회는 어디에 (비즈니스-7)

by 프랑스 읽어보기



프랑스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명품, 항공우주, 원전, 농식품 같은 분야다. 프랑스는 한국 테크기업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해외 진출 시장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프랑스는 AI, 사이버보안, 양자, 로보틱스, 산업 소프트웨어 같은 기술 분야에서도 유럽의 핵심 축으로 더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 테크기업에게도 프랑스는 기회의 시장일 수 있다. 다만 아무 기업에게나 쉬운 시장은 아니다.


프랑스는 단순히 제품을 빨리 파는 시장이라기보다, 유럽에서 기술의 신뢰를 얻고 산업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시장에 더 가깝다. 그래서 잘 맞는 기업에게는 매우 좋은 발판이 되지만, 맞지 않는 기업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느리고 까다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1. 한국 테크기업은 지금 프랑스에 어떻게 들어가고 있을까


현재 한국 기업의 프랑스 진출은 아직 절대 규모가 아주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방향은 꽤 분명하다. 프랑스를 단순 판매 시장으로 보기보다, 유럽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 거점, 의사결정센터, 기술 파트너십의 거점으로 삼는 흐름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즉 한국 기업들은 프랑스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세우기보다, 유럽 고객과 가까워지고 기술을 검증하고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거점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프랑스가 한국 기업에게 독일이나 중동부 유럽처럼 제조 중심 진출지라기보다, 조금 더 전략적인 기능을 가진 시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사례를 봐도 이런 흐름이 보인다. 의료 AI 기업은 프랑스 병원과 협력하면서 유럽 인증을 추진하고, 배터리 관련 기업은 재활용이나 첨단 소재 같은 영역에서 유럽 공급망과 연결되려 한다. 삼성이나 네이버처럼 프랑스의 연구 인력과 기술 생태계에 직접 붙어 있는 사례도 이미 존재한다.


결국 프랑스는 한국 테크기업에게 “당장 가장 큰 매출이 나는 나라”라기보다, 유럽에서 기술의 신뢰를 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좋은 나라에 가깝다.




2. 왜 하필 프랑스일까


프랑스는 미국처럼 소비자 플랫폼 중심의 테크 강국은 아니다.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기업이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AI, 사이버보안, 양자, 로보틱스, 항공우주, 산업 소프트웨어 같은 전략기술에서는 유럽의 핵심 국가 중 하나다. 쉽게 말하면 프랑스는 앱을 크게 키운 나라라기보다, 산업과 국가를 움직이는 기술을 오래 키워온 나라에 가깝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국 기업이 프랑스에서 기회를 찾으려면, 단순 소비자 서비스보다 산업 기술과 B2B 기술 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AI 분야에서 특히 움직임이 빠르다. 연구만 강한 나라가 아니라, 인프라 투자와 산업 적용까지 동시에 키우려는 방향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은 아니다. 스타트업은 많지만 자본은 선별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유럽 전체가 미국보다 투자 규모에서 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가능성이 큰 시장이지만, “좋은 기술만 있으면 열리는 시장”은 아니다. 기술에 더해 규제 대응, 현지 파트너, 신뢰 확보가 함께 필요하다.




3. 어떤 한국 테크기업이 프랑스에 가면 좋을까


산업용 AI: 가장 현실적인 1순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는 산업용 AI다. 프랑스의 AI는 소비자용 앱보다 제조, 헬스케어, 에너지, 국방, 공공서비스처럼 실제 산업 현장에 들어가는 구조가 강하다. 그래서 한국 기업 중에서도 공장 비전검사, 예지보전, 디지털 트윈, 산업 데이터 분석, 헬스케어 AI, 엣지 AI 같은 기업이 특히 잘 맞는다.


프랑스에서는 AI도 단순히 “모델이 얼마나 똑똑한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현장에 잘 붙는지, 설명이 가능한지, 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즉 모델을 파는 것보다 문제 해결형 솔루션을 파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진출 방식도 중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처음부터 큰 계약을 기대하기보다, PoC를 하고, 공동개발을 하고, 인증을 거쳐, 첫 고객을 확보한 뒤 유럽으로 확장하는 구조가 더 현실적이다. 화려한 데모보다 묵직한 레퍼런스가 더 강하게 먹히는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사이버보안: 의외로 잘 맞는 분야

사이버보안도 한국 기업이 생각보다 기회를 찾기 좋은 분야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의 사이버 체계와 산업 생태계가 모두 강하고, 유럽 규제도 보안 수요를 계속 키우고 있다. 이 시장에서는 유행보다 의무가 강하다. 다시 말해 있으면 좋은 기술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기술에 가깝다.


그래서 OT·ICS 보안, 자동차·배터리·스마트팩토리 보안, IoT 보안, API 보안, 공급망 보안, 침해 탐지·대응 자동화 같은 영역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이 강한 제조업과 전자산업의 특성이 그대로 연결되는 보안 솔루션은 프랑스 산업 고객에게 설득력이 있다.


다만 여기서도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프랑스에서는 보안 제품의 기능 못지않게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는지, 누가 통제하는지, 어떤 법이 적용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보안 시장에서는 제품 현지화보다 거버넌스 현지화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양자기술: 매출보다 포지셔닝의 시장

양자기술은 조금 결이 다르다. 이 분야는 당장 매출을 크게 내는 시장이라기보다, 미래를 보고 관계를 선점하는 시장에 가깝다. 프랑스는 양자 분야에서 연구 기반과 공공 투자가 강하고, 양자컴퓨팅 자체뿐 아니라 센서, 통신, 암호, 포토닉스, 저온 장비 같은 주변 밸류체인도 넓게 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국 기업이 완제품을 들고 가는 것보다, 제어장비, 광학, 계측, 포토닉스, 양자내성암호, 반도체 기반 보완기술 같은 쪽에서 기회를 찾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프랑스는 연구는 강하지만 산업화는 길고 느린 편이라, 오히려 한국 기업의 제조 역량과 빠른 엔지니어링 대응이 장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시장은 영업 조직보다 CTO와 연구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 처음부터 지사를 세우는 것보다 연구소, 대학, 컨소시엄, 공동 R&D 프로젝트에 먼저 들어가는 편이 더 맞는 경우가 많다. 양자는 진출이라기보다 포지셔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로보틱스: 공장보다 물류와 시스템 쪽

로보틱스도 기회는 있다. 다만 독일처럼 대규모 제조 자동화 시장을 기대하고 프랑스에 들어가면 조금 어긋날 수 있다. 프랑스는 공장 자동화보다 물류, 특수환경, 서비스형 로봇, 그리고 시스템 솔루션 쪽이 더 잘 보이는 시장이다.


그래서 AMR, AGV, 창고 자동화, 피킹·분류 로봇, 플릿 관리 소프트웨어, 머신비전, 센서, 산업 안전 시스템 같은 분야가 더 유리하다. 프랑스 고객은 로봇 하드웨어 단품보다 설치, 유지보수, 교육, ROI까지 포함된 제안을 선호한다.


좋은 데모에 관심은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계약 단계에서는 “이걸 실제로 안정적으로 굴릴 수 있는가”를 아주 꼼꼼하게 본다. 결국 로봇을 파는 것보다, 로봇이 들어간 운영 시스템을 파는 쪽이 프랑스 시장에 더 잘 맞는다.


항공우주: 진입장벽은 높지만, 가장 깊어지는 시장

항공우주는 프랑스가 가장 강한 산업 중 하나다. Airbus를 중심으로 Safran, Thales 같은 글로벌 기업과 장기적인 공급망이 이미 구축되어 있다.


이 시장의 특징은 명확하다. 처음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들어가면 매우 깊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이 현실적으로 노릴 수 있는 영역은 완제품보다는 항공전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테스트·시뮬레이션 툴, 위성 데이터 처리, 우주 보안, 정밀 부품과 제조 기술 같은 분야다.


프랑스 항공우주 산업은 기술력만큼이나 품질, 인증, 납기, 문서화, 보안 기준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단기 계약을 기대하기보다는, 공급망 안에 들어가기 위한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대신 한 번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 분야는 진출이라기보다 “진입 후 축적”에 가까운 시장이다.


B2B 소프트웨어: 가장 현실적으로 확장 가능한 분야

B2B 소프트웨어는 한국 기업이 프랑스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프랑스는 소비자 플랫폼은 약하지만, 기업용 소프트웨어, 산업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클라우드, 엔지니어링 툴에서는 강한 시장이다.


그래서 산업 SaaS, MES, 제조·물류 최적화, 품질관리, AI 거버넌스, 규제 산업용 소프트웨어 같은 분야는 충분히 기회가 있다. 특히 프랑스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ETI) 층이 두껍고, 이들은 범용 SaaS보다 산업 맞춤형 솔루션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 시장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좋은 제품”보다 “잘 작동하는 시스템”을 더 중요하게 본다. 즉 단순히 툴을 판매하는 방식보다 컨설팅, 통합, 교육, 현지 지원까지 함께 제공하는 구조가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한국 SaaS 기업은 단독 진출보다 프랑스 SI, 컨설팅사, 산업 파트너와 함께 들어가는 전략이 더 현실적이다.




4. 프랑스는 유럽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다만 프랑스는 유럽 판매 허브라기보다, 유럽 기술·규제·신뢰 허브에 더 가깝다.


프랑스에서 규제를 통과하고, 첫 고객을 만들고, 현지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그다음 다른 유럽 국가로 확장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특히 프랑스의 장점은 기술 거점이 분명하다는 데 있다. 파리는 AI와 딥테크, 그르노블은 첨단 기술과 연구, 툴루즈는 항공우주의 중심지다. 여기에 공공정책, 연구기관, 산업 네트워크가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프랑스는 단순히 “유럽에서 뭔가 한 번 팔아보는 나라”라기보다, 유럽에서 기술의 신뢰를 인증받는 나라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5. 조심해야 할 부분


프랑스를 영국식 SaaS 시장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프랑스는 기술력만큼 신뢰, 문서화, 규제 적합성, 현지 지원을 중요하게 본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팔리던 제품도 프랑스에서는 파일럿만 길어지고 계약은 늦어질 수 있다.


이건 시장이 느려서라기보다,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 더 꼼꼼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 공공, 의료, 에너지, 보안 같은 분야로 갈수록 이런 성향은 더 강해진다.


또 하나는 규제와 주권 이슈다. AI, 보안, 클라우드, 방산, 우주처럼 민감한 분야는 기술보다 법적 구조와 데이터 통제 구조를 더 강하게 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결국 깊이 들어가려면 프랑스어 문서, 현지 기술지원, 현지 책임자가 중요해진다.


프랑스 고객은 제품만 보는 것이 아니다. 이 회사가 정말 프랑스 시장에 들어오려는 의지가 있는지도 함께 본다.






6. 앞으로 전망은 어떨까


전망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프랑스는 앞으로도 AI, 사이버보안, 양자, 우주, 산업형 소프트웨어 같은 전략기술에 계속 돈과 정책을 넣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유럽,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기술 협력도 제도적으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앞으로도 선별적일 것이다. 모든 한국 테크기업에게 좋은 시장은 아니다. 범용 SaaS나 차별화가 약한 솔루션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산업용 AI, 보안, 로보틱스, 항공우주 공급망용 기술, 산업 B2B 소프트웨어처럼 프랑스의 강점 위에 올라탈 수 있는 기업은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3~5년 동안 프랑스에서 가장 유망한 한국 테크기업은 이런 기업들이다. 유럽 규제 대응이 가능한 산업형 AI 기업, NIS2와 같은 규제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보안 기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묶는 로보틱스·산업 솔루션 기업, 항공우주와 국방 공급망에 들어갈 수 있는 정밀기술 기업, 그리고 프랑스의 연구·산업 생태계를 활용해 유럽 고객을 확보하려는 딥테크 기업들이다.


결국 프랑스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니다. 유럽에서 기술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험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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