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과 비범
뉴욕에 살던 딸을 방문했던 때였다. 브로드웨이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헝가리안 빵집에 들렀다. 땡그랑. 벨 소리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빵 몇 개를 집으며 딸이 말했다. 엄마, 여기 와서 글을 쓰면 베스트셀러를 쓴대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귀가 솔깃해져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마다 커다란 책 포스터가 액자 안에 모셔져 있다. 그 외에 뭔가 있겠지. 작가들이 이끌린 이 가게만의 비범함.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없었다. 시골 마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작고 우중충한 가게였다. 낡은 테이블이 대여섯 개 정도 놓여있고 앉아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맨 뉴요커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이렇게 인테리어에 신경 쓰지 않은 무심한 빵집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닐 듯했다. 지극히 평범한 그곳이 작가들의 골방인 셈이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액자 아래 앉아있었다. 고개를 들면 자신의 꿈이 보이는 자리다. 꾀죄죄한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이야기에 꽤 집중한 듯 손은 빠르고 눈은 퀭하다. 쓰려는 욕구로 불타는 눈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지친 눈이다.
언제부터 그는 거기 앉아 있었던 걸까. 사람들은 이 가게에서 빵을 사서 집으로 가고 자리에 앉아 빵을 먹는 일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 덕분에 가난한 작가들이 간단히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나 보다. 눈길을 끌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장소가 글을 쓰는 이들에겐 성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좁은 골방에서 글을 쓰던 사람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경치가 빼어나고 한적한 곳에 작업실을 마련한다. 경치에 마음을 빼앗긴 것인지 그 뒤론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작가를 만나면 헝가리안 빵집으로 가라고 말해줘야겠다. 화장을 지우고 넥타이를 풀고 편안한 옷을 입는다면 더 좋겠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가 허름한 옷을 걸친 사람을 맞아주는 곳. 평범이 창작 의지를 솟구치게 하는 곳.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은 비범을 꿈꾸는 사람들을 돕는 건 결국 평범이라는 것.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을 꿈꾼다. 막상 비범에 이른 이들도 결국 평범한 행복을 구할 때가 온다지만, 인생에 한 번쯤은 비범한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