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끝에 여름

축제가 끝나고

by 모든 햇살

봉숭아 물들인 손톱은 여름의 얼굴이다. 여름내 손가락 끝에서 반짝거렸다. 괜스레 손을 내보이며 자랑하고 다녔다. 후둑후둑 빗방울로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지금, 여름의 길이만큼 빨강이 밀려났다. 손톱의 길이보다도 짧은 여름이지만 그 속엔 여러 만남이 담겨있다.

여름을 기다리지 않는 시애틀 사람은 없겠지만, 지난여름은 유난히 설렘으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지인들과 함께 시애틀의 아름다운 자연 속을 왁자지껄 누비고 다녔다. 산 위의 거울같이 맑은 호수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금방 잡은 조개를 넣은 생애 최고의 라면을 맛보기도 했다. 구순의 어머니와 온천욕을 하는 호강도 누렸다. 어리게만 보였던 제자들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손주들이 인정하는 ‘사랑 할머니’가 되어버린 큰 언니의 모습에 나의 미래를 비추어보기도 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마음은 즐거웠건만 몸은 힘에 겨웠나 보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깊은 잠의 휴식을 누리지 못하고 몸이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포근한 침대에 누워도 잠은 자꾸만 멀리 달아나고, 팔, 다리 근육에는 조금씩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그고 있어도, 경직된 근육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움직이던 몸은 계속 움직이려 했다. 고대하던 일이 이루어질 때, 흥분에 휩싸인 몸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몸이 겪은 불편함은 축제의 여름을 누린 증거였다.

여름이 지나가고 스산한 바람이 뒷마당에 오락가락했다. 조금씩 무게를 더해가는 가을 햇살이 붉은 사과 위에 내려앉았다. 여름의 마침표는 씨앗 받기다. 봉숭아, 쑥갓, 상추, 그리고 케일 씨앗도 받아 서랍 속에 모셔 놓았다. 내년에도 그들이 기적의 봄을 또 한 번 열어주길 기대한다. 씨앗을 떨어내고 뿌리를 드러낸 마른 채소 밑둥치를 벚나무 아래 고이 쌓아놓았다.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는데 차 안의 몸은 포근함을 느낀다. 오랜 세월 후에 시애틀의 비와 악수를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도 외면했건만. 우기의 시작과 함께 별다르지 않은 익숙함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바람 없는 날의 호수처럼 잔잔하다. 산 그림자, 구름, 오리들의 수선도 너그러이 받아줄 모양이다. 아침마다 같은 차를 마신다. 학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도란도란 정답다. 동네 한 바퀴 같은 코스를 걷는다. 웨스트 힐의 노을과 새들의 군무를 넋 놓고 바라보는 일, 우중에 가끔 비추는 가을빛에 화분을 내어놓거나, 때를 벗은 빨래를 너는 일도 즐겁다. 근대 잎을 다 먹어치운 사슴을 혹시나 마주칠까 뒷마당을 내다보는 일도 좋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작은딸이 대학생활 사 년 동안 끌어안고 살던 짐을 집으로 가져왔다. 딸의 짐 속에는 두 개의 사진첩이 있었다. 큰 것은 학교 행사와 파티 같은 특별한 날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부분 곱게 단장하고 드레스나 정장으로 멋을 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작은 사진첩이었다. 딸아이와 함께 살던 친구가 선물한 것이라, 그들의 매일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소찬을 놓고 볼이 미어지게 무언가를 먹어대는 아이들. 무릎이 늘어진 바지에,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대는 얼굴.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웃고 있었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처 가져가지 못한 가을 옷과 짐들을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 그 사진첩 꼭 보내주세요.” 아이의 마지막 당부였다.

내게도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일상이 있다. 사진 속에는 산이 있다.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학교 건물이 있고 왼편으로는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 의젓하게 서 있었다. 첫 발령지의 학교였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날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새벽이슬에 발을 적시며 논둑을 걷던 여름 아침에도, 눈 내린 겨울에도 산을 살폈다. 산은 삐쳐서 몇 걸음 물러선 듯하다가 다정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할아버지처럼 근엄하다가 아이처럼 명랑하고, 평화롭다가도 스산했다.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몹시 다그쳤던 시절, 사고의 주제는 늘 의미 찾기였고, 일상의 색은 다채로웠다.

반복되는 일상이 있기에 축제가 흥겹지 아니한가! 오랜만의 고요, 익숙한 지루함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선다. 축제의 여름을 놓기 싫었던 것은 언제였을까? 일상이 지루하다 한 것은 언제였을까? 안개비 내려 잔디가 생글거리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은 축복이다. 축제는 끝나고 가을비는 나를 일상으로 초대한다. “내게로 와줘. 나의 생활 속으로. 너와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누군가를 나의 눈꼽 낀 아침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간절한 구애다.

손톱을 깎았다. ‘딱’ 소리와 함께 빨간 손톱 조각은 허공 속으로 공중돌기를 한다. 손톱 끝에 여름의 흔적이 간신히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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