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가족을 만난 건 오래전 범고래 섬(Orcas Island)에서 였다. 이른 아침 텐트 문을 젖히고 나서니 사슴 가족이 놀러 와 있었다. 숨죽이며 두어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어미인 듯 보이는 사슴이 떨떠름한 눈길을 한 번 던지더니 다시 풀을 뜯었다. 그들의 아침 식사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미동도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가져오는 수선을 피우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나를 그려보는 일은 선과 색의 바깥, 그 여백이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내가 피사체가 될 때 받는 메시지는 색다르다.
거기, 이상하게 생긴 동물, 나랑 우리 애들은 지금 배가 고프거든. 얌전히 있으면 나도 네 일에 상관 안 할게. 그리고 여긴 우리 동네야. 조용히 지내다 가라구. 그들은 서두르지도 겁내지도 않았다. 눈치를 살피는 건 내 몫이었다. 바라보는 동물과 먹는 동물의 공존은 제법 평화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그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여유였다. 그 몸짓은 목청을 돋우는 어떤 소리보다 강한 메시지였다. 설명이 필요 없는 몸에 밴 여유로 섬은 우리 구역이라고 당당히 선포했다.
동네에서 수사슴을 마주친 건 얼마 전이었다. 종종 어미사슴과 아기들을 마주치긴 했지만 수사슴을 본 적은 없었다. 캄캄한 밤, 삼거리 정지사인 앞에서 막상 녀석을 대면하고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덩치가 커서 놀랐다. 마음을 진정하고 조심조심 좌회전을 하다 보니 사슴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었다. 수사슴이라는 의외의 힘에 놀랐던지 정지신호에 설 때 마다 녀석의 화려한 관이 떠올랐다.
사슴에게 나의 출현은 어땠을까? 빛나는 큰 눈을 달고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난 자동차가 위협이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헤드라이트를 반사하던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사실 이런 종류의 도전은 벌써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동네에 그나마 남아있던 숲이 점점 사라져 가는데 어디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까? 코로나로 집안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올여름 이상 기온으로 가지 끝이 누렇게 타들어간 상록수 가지들을 보았다. 여름마다 산불로 잃어가는 숲이 기록을 경신한다. 올여름에 본 그 빙하는 10년 내로 모두 녹아버릴 거라 했다. 발을 디디는 영역과 먹을 것이 점점 줄어드는 동네에서 마주한 사슴의 당황한 얼굴은 어쩐지 사람을 닮았다.
여름 바닷가엔 노란 단추 모양의 탄지(tansy) 꽃이 줄지어 피었다. 탄지와 먼 바다를 등지고 찰칵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꽃이 너무 예쁘게 웃어서 내 미소가 어쩐지 멋쩍었다. 동그라미를 매단 꽃송이들이 자꾸 눈을 잡아당겼다. 탄지가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풍경일까? 무릎을 숙여 꽃에 얼굴을 대고 키를 낮추니, 폭을 줄인 남색 가로줄 바다가 잔잔히 흔들렸다. 멀리 물가에서 사람들이 간간이 꼼지락거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웅얼웅얼 바람에 실려 왔다. 내 눈이 바라보는 바다는 식상하니, 오늘은 네가 말을 하렴.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건기가 오고 이렇게 동그란 눈을 뜨기 까지 오래 기다린 나를. 그들이 나타날 때 반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등 뒤에서 손 흔드는 나를. 우기가 오기 전 맘껏 이 여름을 즐겨야지. 오늘 저녁노을은 무슨 색일까? 오늘 밤 밤바다를 걸을 사람들은 누굴까? 내일은 혹시 돌고래가 검은 등을 드러내며 줄지어 지나가려나? 탄지가 오목한 제 눈에다 질문들을 꼭꼭 눌러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