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으로 향한 문을 빼꼼히 연다. 문틈으로 카메라 렌즈를 내민다. 한 시간쯤 전에 뒷마당 테이블 위에 씨앗이 빼곡한 해바라기와 포도송이를 올려놓았다. 조금 전 다람쥐 한 마리가 다녀갔고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스텔라 제이 한 마리가 파란 꼬리를 들썩이며 요리조리 살피더니 만찬을 시작한다.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다가 나도 모르게 ‘입큰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갑자기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그지없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지난해 봄이었다. 스텔라 제이 한 마리가 뒷마당 산딸나무 잔가지를 자르고 있었다. 둥지를 짓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가지를 입에 물고 두어 번 같은 방향으로 낮게 날아가는 모양이 수상했다. 새가 사라진 방향으로 부지런히 따라가 보았다. 집 앞으로 나갔으나 그새 녀석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거실 창 앞에 서 있는 마취목의 가지가 살짝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살며시 나무에 다가가 올려다보니 빽빽한 나뭇잎 뒤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둥지가 보였다.
그날부터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일 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둥지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가끔 블라인드 건드리는 소리에 놀란 아비가 달아나 버리곤 했지만, 둥지를 지키는 건 언제나 어미였다. 줌렌즈로 둥지를 들여다보다 알을 품고 앉은 어미의 눈과 딱 마주친 적이 있다. 그 눈에는 두려움과 용기가 동시에 어른거렸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터졌는데도 알을 품고 있는 어미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알을 보호해야 한다는 비장함으로 호기심 많은 여자의 번쩍이는 기계 앞에서도 어미는 의연했다.
심각한 사생활 침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창 옆의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텔라 제이는 보통 사람들의 집 가까이 집을 짓지 않는다. 그러나 독수리나 매같이 작은 새알을 먹어치우는 폭군들을 피해 때로는 사람의 집 가까운 곳에 깃든다고 한다. 새끼의 안전을 위해 사생활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우리 집을 안전한 곳으로 여겨준 그들의 마음이 고마워 둥지 가까이에 땅콩을 몇 알씩 흘려놓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둥지 속엔 어미 대신 이상한 것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어보니 그것은 갓 세상 밖으로 나온 새끼의 입이었다. 얼굴이 온통 입뿐인 새끼 두 마리가 간절히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큰이가 태어난 날이었다.
오래전 기억 속에서 입큰이를 닮은 모습이 불쑥 떠오른다. 둘째가 태어난 다음 날, 입원실에서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깨어났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구석구석, 창틀까지 두리번거리다가 아기 침대를 들여다보았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를 겨우 면한 아기가 온몸의 힘을 다해 입술로 젖을 빠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새벽 두시, 그 작은 입술로 만든 소리가 병실에 가득했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생명은 생존하고자 버둥거렸다. DNA 속에 내재된 숭고한 명령이었다.
오월 말로 접어드는 이른 아침이었다.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큰이가 땅으로 내려왔다. 잿빛 엉성한 깃털에 파란 꼬리는 짤막했다. 부러질 듯 가녀린 다리로 어미를 따라다니며 연방 입을 벌렸다. 어미는 달팽이 하나를 입에 물더니 순식간에 살을 발라내어 입큰이의 입에 밀어 넣었다. 저만치 전깃줄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아비의 모습이 근엄하기 짝이 없다. 잠시 후 어미와 입큰이는 뒷마당에 나타났다. 어미가 흙을 들추며 지렁이를 잡는 시범을 보였다. 생존을 위한 엄숙한 교육의 시간, 뒷마당으로 슬쩍 발을 내디디니 어미 아비가 비상 경계음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얼른 들어왔다. 그날 이후, 둥지는 비었고 입큰이 가족을 볼 수 없었다.
테이블 위의 스텔라 제이는 어느새 두 마리가 되었다. 해바라기 씨앗 껍질을 벗겨 던지며 포식 중이다. 그들이 지난봄 나를 행복하게 해준 입큰이들이라 해도 이젠 그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길어진 꼬리와 몸은 파란 깃털로 덮고 까만 머리 위엔 멋진 깃털 장식까지 갖추었으니. 문득 “마당 보고 싶다.” 하던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름이면 마당에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밤새 깔깔거리던 아이가 이제는 새내기 직장인이 되어 뒷마당을 그리워한다. 가을빛이 가득 담긴 사진 한 장을 딸에게 보낸다. 그리고 덧붙인다. 딸아! 응원한다. 너의 파란 날갯짓!
배를 다 채웠는지 스텔라 제이 한 마리가 공중으로 포르르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