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야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하루는 과외를 받던 녀석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쓸데없는 질문 말고 다음 문제나 풀자.’라고 말하려다 자세를 고쳐 앉고 천장으로 시선을 올려 질문을 곱씹었다.
“꿈이라…”
순간 ‘꿈’이라는 단어가 비수가 되어 내 안으로 날카롭게 훅 꽂혀 들어왔다. 한낱 과외선생인 내가 ‘진짜’ 선생은 아니지만, 다만 몇 년이라도 더 산 인생의 선배로서, 이 순수한 질문에 어떤 답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꿈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는 그럴싸한 꿈이 생각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나는 겨우 “커리어우먼?”이라는 알맹이 없는 대답으로 이 난감한 상황을 회피했다.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대학 졸업 후엔 이름을 알만한 회사에 취업해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아 사는 게 그때의 내 꿈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맞는 대답이었다.
“에이. 그게 뭐예요.” 역시 한창 꿈이 거창할 중학생의 귀에 재밌는 답으로 들릴 리 없었다. 내심 “왜요?”라는 질문이 오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마 “돈 벌고 싶어서.”라는 답으로 그동안 애써 지켜오던 고고한 대학생의 이미지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반이 되어도 취업에 실패한 나는, 졸업 후에도 학교를 떠나지 않고 과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에 매진했다. 밤을 새워 쓴 200개의 이력서가 면접에도 가지 못한 채 광탈했다. 가고 싶은 회사를 포기하고 뽑아 줄 것 같은 회사로 201번째 이력서를 넣었다. 무수히 많은 수치심과 좌절을 견딘 후에야 겨우 한 중소기업에 최종합격했다.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돈을 벌고 싶은 꿈만은 어쨌든 이룬 셈이었다.
그리도 날 힘들게 했던 취업을 뽀개니, 그 이후에 삶은 특별한 장애물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흘러갔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남들처럼 여행 다니고, 연애도 하고, 돈을 더 준다는 곳으로 이직도 하고, 너무 늦지 않게 결혼도 했다. 가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기도 했는데, 그중 한 명은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든 것이라며,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친구의 꿈도 이뤄준 사람 아닐까?
내가 바랐던 돈도 벌고, 친구가 바랐던 평범한 삶도 잘 살고 있으니, 나름 좋은 인생이라 자부했다. 그러나 그 오만은 아기를 낳으며 보기 좋게 산산이 부서졌다. 아기를 낳으니, 모든 것이 180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였는데, 어느새 아기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 아기가 일어나면 내 하루가 시작되고, 아기가 잠들면 내 하루도 끝이 났다. 아주 철저히 아기에게 맞춰진 하루하루를 보냈다. 불시로 서러운 마음이 폭발했지만, 아기를 품에 안으면 풍겨오는 하얗고 보드라운 향기에 마음이 포근해지고, 날 보며 배시시 웃는 아기의 눈망울에 서러움이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그렇게 난 '엄마'라는 인생을 받아들였다.
누군가 존재는 부재로 증명된다고 했는가. 자꾸만 희미해지는 내 모습을 마주 할 때마다 나의 존재를 엄마가 아닌 ‘나’로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누구인가, 내 꿈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켜서 근처 문화센터 강의들을 닥치는 대로 검색했다. 무언가 배우다 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운동, 미술, 악기… 스크롤을 쭉쭉 내리다 어느 지점에서 마우스를 멈췄다. 강의 제목은 “책이 되는 나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책이 된다니! 느리게 뛰던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중학생시절, 작은 아버지가 사주신 컴퓨터로 짧은 소설을 쓰던 내가 떠올랐다. 당시에 재밌게 읽었던 황순원의 ‘소나기’와 KBS의 히트 드라마인 ‘가을동화’, 그리고 만화책방에서 읽었던 순정만화 몇 편의 스토리를 이리저리 섞어 짜깁기한 형편없는 글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 치면 웹소설 작가 지망생 온라인 카페에 가입도 하며 열심히 쓴 글이었다. 그만큼 그때의 난 나름 소설 쓰기에 진심이었다. 밤새워가며 완성한 작품을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종종 보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시시한 반응에 나의 처음이자 유일했던 거창한 꿈은 점차 흐릿해진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장래희망을 작가 대신 ‘선생님’이라고 적어 냈던 것을 보면.
그런데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꿈을 기억해 냈고, 어쩌면 이룰 수도 있는 기회를 찾아낸 것이다. 강의를 들으며 가장 내가 쓰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글에는 참 신기한 힘이 있었다. 나를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 마법 같은 힘. 내가 좋았던 순간을 쓸 때에는 마음이 들뜨고, 괴로웠던 순간을 쓸 때에는 한없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엄마’인 내가 아니라 ‘나’인 내가 있었다. 여전히 내 일상의 99%가 아기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고 있지만, 글쓰기를 통해 단 1%라도 ‘나’인 순간이 생긴 것이다. 안 그래도 바쁜 하루가 글을 쓰고 고치느라 더욱 바빠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여유가 돌았다. 글을 쓰는 내가 좋았고, 글을 위해 노력하는 내가 자랑스러워졌다. 그래서 계속 쓰고 싶어졌다. 가능하면 오랫동안.
아직 책을 쓴 ‘작가’는 되지 못했다. 쓰고 싶은 내 이야기가 어디까지인지도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로 태어나 잊고 있던 ‘작가’라는 꿈을 찾았고, 비로소 나는 내가 되었다. 이제야 과거 어느 날 내 꿈이 뭐냐고 묻던 그 중학생에게 제대로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꿈은 작가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