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이름 중에 간혹 숫자로 끝나는 이름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삼(三), 오(五), 팔(八), 구(九)로 끝나는 이름들이다. 예를 들면 고 김영삼(三) 대통령이나 독립투사 김구(九) 선생의 함자를 보면 이름에 숫자가 들어가 있다.
개인정보가 귀한 시대이므로 나의 귀한 full name을 공개할 수 없으니 편의상 내 이름을 ‘영팔’이라 가정해보자. 스스로 내 이름이 특이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날이 있었다. 그 날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로 기억되는데 당시 동네 친한 친구 J와 J의 남동생은 나랑 자주 만나서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다. 동네 친구이다보니 당연히 매주 만나서 친하게 놀았던 것이다. J의 남동생도 나를 ‘영팔이형’이라 부르며 잘 따르곤 했었다. 친구 J의 집에서 놀고 있던 어느 날, J의 남동생이 갑자기 나보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형, 근데 형 본명은 뭐야?” 라고…… 순간 나는 그 동생을 응시하며 “응…영팔이가 내 본명이야”라고 알려주었다. 그 때 그 J의 동생의 reaction은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헐…..”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아마 그 놈은 그 이후부터 주변에 내 이름이 너무 웃기다고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 날 나는 처음 내 이름이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입학식 이후 3월 초 어느 날, 여전히 시골티를 벗지 못한 나는 학과 건물 1층에 가서 내 학번 등 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벽에 붙은 공지문을 보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공지는 학과 사무실 앞에서 공지문 등으로 직접 확인하여야 했다. 몇 명의 남학생들이 내 앞에서 공지문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바로 내 앞에서 공지문을 보던 어떤 학생이 그 옆에 있던 자들에게 하는 말이 내 귀에 바로 꽂힌다. “하하하…야야 이거 좀 봐, 얘 이름이 ‘O영팔’이래. 웃기지 않냐? 하하하” 재미있다고 환하게 웃는 그 놈 얼굴은 지금도 내 뇌리에 박혀 있다. 그 친구는 나랑 같은 반이 되었으나 나는 지금까지도 그 친구에게 그 때의 사건을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뭐…악의적으로 한 말도 아니고, 나를 놀리려고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당시 나는 적잖이 당황한 가운데 시골 촌놈(알고보면 나도 지방 대도시 출신인데 당시 서울 친구들은 서울 출신이 아니면 싸잡아 시골 친구라 불렀다)이라는 태생적 열등감을 숨긴 채 조용히 현장을 떠났다. 다행인 점은 내 학과 동기 중에 나처럼 ‘팔’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한명 더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동질감과 친근감이 느껴졌다.
몇 년 후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러 나는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다. 논산훈련소 시절 어느 일요일 오전, 나는 도로 빗질을 하러 불려나갔다. 그 때 어떤 선임병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하는 말이 “영팔아, 너 어디 대학나왔냐?” 군대라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 선임병은 훈련병들에게 무례한 질문을 쉽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솔직하게 서울 OO대학 다니다 왔다고 하였는데, 갑자기 그 선임병이 피씩 웃더니만 이렇게 되묻는다. “영팔이 니가 OO대학 나왔다고? 야, 거짓말마라. 진짜야?” 그 선임병의 표정을 보니 솔직히 내가 인서울 대학에 다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내 이름이 팔자로 끝나서 내가 듣보잡 대학에나 다닐 것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인서울 대학교 재학생이라고 하니 은근히 놀란 눈치였다. 하여튼 한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출신 학교는 중요하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서 나는 직장에 다니게 되었으며 종종 거래처 사람들과 대면회의 하는 기회가 잦았다. 거래처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 전에 먼저 내 이름을 전해 듣는데 직접 나를 만나면 하는 말들이 비슷했다. “뵙기 전에는 성함이 ‘팔’자로 끝나서 ‘조직’에서 나온 분과 비슷한 분이 오시는 걸로 오해했습니다. 하하하” 물론 첫 만남의 어색함을 풀기 위한 농담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이름보다 내 이름을 더 잘 기억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스스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름은 집으로 치자면 문패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남들이 나를 알아보고 잘 기억해주기 위해서는 내 이름처럼 특이하다면 더 유리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내 이름은 잘 지은 이름이 아닌가? 내 이름의 ‘팔’자는 한자로 쓰기에도 매우 편하다. 중국에서는 숫자 八이 인기가 많다고 하지 않는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부모님께서 내 이름을 이렇게 특별하게 지어 주신 것은 내 이름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 속에 특별하게 남아 있기를 의도하신 것이 틀림없다.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