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학창시절 중 평생 잊지못할 사건이 한두개는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사건이 고2 때 한번 있었다. 입시 경쟁으로 메말라버린 요즘 학교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고2 때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20대 후반 거무스름한 얼굴을 가지신 국어 선생님이셨다. 소문으로는 학원에서 강의하시다가 그 해에 우리 학교로 부임해 오셨다는데 왜소한 체구의 젊은 선생님이셨다. 국어 전공자답게 국어 과목을 아주 열정적으로 수업하셔서 나도 그분이 진행하시는 국어시간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선생님은 처음으로 담임 역할을 맡으셨기에 우리 반이 다른 반과 다르도록 여러가지 신선한(?) 노력도 하셨다. 각자 책 한두권을 가져오도록 하여 우리만의 학급문고도 만들었고, 우리 반 친구들을 이끌고 멀리 야유회 행사도 진행하셔서 나에게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의 열정과 인품에 반하여 그분을 좋아하는 다른 반 친구 녀석들도 많았다.
그러나 어찌 세상 일이 의도한 대로만 흘러갈 수 있으랴…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반에 문제아가 있어서 선생님의 심기도 불편하셨고 학급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학급 내에서 손목시계 분실 사건이 터졌다. 당시 손목시계는 귀중품 중의 하나였기에 시계분실 사건은 학급 분위기를 급속하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결국 급우 중 한 친구가 범인으로 밝혀졌고 그 친구는 자퇴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본인이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학급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터지자 선생님께서는 실망하셨을 것이고 스스로 깊은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어느 토요일 오전 수업 종료 후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 모두에게 하교하지 말고 남으라고 지시하셨다. 당시에는 토요일 오전 수업이 1시까지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토요일 수업 종료 후 선생님께서는 처음보는 회초리를 하나 가지고 들어오셨고 불미스런 시계도난사건으로 우리 모두가 반성하자는 취지에서 모두 매를 맞아야 한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지시하셨다. 1번 학생은 2번 학생의 엉덩이에 자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횟수만큼 회초리로 때리고, 역시 2번 학생은 3번 학생의 엉덩이에 알아서 회초리로 매질을 하라는 것이다. 당시 우리 반 학생수는 거의 60여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선생님 명령대로 1번 학생이 2번 학생 엉덩이에 매질하고, 2번 학생은 3번 학생 엉덩이에 매질하였으며,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순서가 와서 나도 다음 번호의 친구 엉덩이에 회초리를 휘둘렀다. 내가 회초리질을 몇번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드디어 마지막 번호의 급우가 바로 앞 번호의 급우로부터 매를 맞았다. 마지막 번호의 급우는 학기 중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학생이었는데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리숙해 보이는 친구였다. 그 마지막 급우가 매를 맞고 그 회초리를 선생님께 드리려고 한 순간,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담임 선생님이 매를 맞기 위해 교실 바닥에 엎드리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시면서 모든 책임은 담임에게 있다고 하시면서, 마지막 번호의 급우에게 선생님 엉덩이에 회초리로 매질하라고 명령하셨다. 그 친구는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며 급우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어서 나를 때려! 때리지 않고 뭐하냐?” 선생님은 교실 바닥에 엎드리신 채로 그 친구에게 준엄한 명령을 하고 있었다. 우리 반 친구들 역시 깜짝 놀랐고 어떤 친구들은 회초리를 들고 있는 그 친구에게 ‘절대 선생님을 때리면 안돼!!’ 라는 무언의 표정을 보내고 있었다. 자기를 매질하라는 선생님의 지시와, 절대 선생님을 매질하면 안된다고 무언의 눈짓을 하는 친구들의 압박 사이에서 그 친구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친구 하나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온다. 평소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껄렁껄렁하게 지내던 키 크고 마른 친구 A였다. A는 회초리를 빼앗아 교실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선생님, 안됩니다!” 그 친구가 이렇게 외쳤고 담임 선생님은 그 친구를 껴안고 눈물을 보이셨다. 아마 그 때 울지 않은 친구는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지금쯤이면 벌써 정년퇴임하셨을 것이며 그 시절 국어과목을 열정적으로 수업하셨던 것처럼 또 다른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계시지 않을까? 그 때 회초리를 창밖으로 던저버린 A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고등학교 2학년 어느 토요일에 일어난 그 사건은 수십년의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을 진정으로 아껴주셨던 선생님의 진심과 그러한 선생님에 대한 우리 반 친구들의 존경심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이 무척 그립다. 마지막으로 친구 A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야 이 자슥아~그때 그 회초리 잘 던졌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