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잔의 추억

by 이영호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가요. 하숙생 中>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가요·김삿갓 中>

회식 있는 날 노래방에 가게 되어 옆 사람들이 한 곡 부르라고 하면, 난 이 두 노래를 즐겨 부른다. 소위 나의 18번 노래다.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이 두 노래 가사를 읊조리노라면, 굴곡 많은 지난 인생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어찌나 내 심정과 똑같은지….

노래는 술을 더 부르고, 술은 비록 잠시지만 인생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같다. 이렇게 노래에 젖고, 술기운이 슬슬 들어가 ‘발동’이 걸리는 날이면, 그때부터는 ‘장난’이 아니다.

나의 술버릇을 잘 아는 친한 지인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 ‘딱 한 잔’이다, “이 선생이 ‘딱 한 잔만 더 하자’고 할 때면 그때는 이미 술에 취해 있다”라는 것이다. 앞장서서 내가 한잔 살 테니 ‘딱 한 잔만’ 더 하고 헤어지자고 떼를 쓴단다.

나는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마실 때는 많이 마시는 편이다. 애주가 스타일은 아니고 폭주가 스타일에 속한다.

술 없는 인생은 재미가 없지 않은가! 이처럼 기분 좋게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을 즐기기에 술에 얽힌 사연들도 많이 있는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술과 관련된 먼 옛날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있다.

1964년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의 이야기다. 서울로 상경해 처음에는 친척 집에서 신세를 지고 몇 달을 지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자취하려고 마음먹고 하루는 자취방을 구하려고 천호동 가는 버스를 타고 마냥 종점까지 갔다. 운 좋게 종점 부근에 싼 자취방을 하나 구했고, 거기서 자취생활을 하고 지내는 동안 초등학교 5학년생(현 초등학교) 2명을 가르치게 되었다. 한 학생은 버스 운전기사 아들이고 또 한 학생은 평양냉면집 아들이었다. 가르치는 대가로 평양냉면집에서는 나에게 저녁밥 한 끼를 먹게 했다. 저녁을 먹을 때면 주인아주머니는 꼭 막걸리 한 잔을 반주 겸 따라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모가 광화문 일대, 시청 광장 등 거리 곳곳과 각 대학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최루탄이 내 머리 위로 획 지나가고 날아오는 최루탄에 맞아 죽을뻔했다. 저녁때 집으로 돌아와 저녁 밥상에 아주머니가 따라놓은 막걸리 한 사발을 벌컥벌컥 마셨다. 종일 긴장한 탓에 ‘오늘은 한 주전자 더 달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묻는 아주머니에게 오늘 데모 때문에 겪었던 일로 마음이 상해 더 마시고 싶다고 하니, 주인아주머니는 안 된다며 정 더 먹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 먹든지 하라는 것이다.

단념하고 그냥 자취방에 돌아와 책을 읽고 있는데, 밤늦게 평양 냉면집 아주머니께서 막걸리 한 주전자와 안주를 가지고 내 방을 찾아 오셨다. 아주머니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아주머니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향이 이북인 아주머니는 6.25 사변이 일어나기 전에 평양 기생학교를 나와 평양에서 기생으로 생활했는데, 1·4후퇴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깊이 간직하고 있던 기생학교 때의 사진을 보여주며 일본에 친오빠가 살고 있고, 남한에는 일가친척이 없으며, 지금 평양냉면집 주인의 재취(두 번째 아내)로 들어왔다고 하며 가슴속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날 이후 아주머니께서는 나에게 친동생 같이 잘 대해주고, 나도 누나가 없는지라 친누이 같이 생각하며 잘 지냈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러 서울에 올라오신다고 해서 ‘천호동 버스 종점에 내려 평양냉면집을 찾아 내가 있는 숙소를 물으시면 잘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씀드려 아버지께서 그렇게 찾아오셨는데 아주머니께서 내 숙소를 안내해 드리고 나서 한참 뒤 아버지가 계신 내 숙소에 다시 찾아왔는데 한복을 깨끗이 갈아입고 오신 아주머니가 아버지에게 큰절하고 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놀라며 내게 누구냐고 물으시기에, 아주머니 아들에게 과외공부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더니, 아주머니의 극진한 예의에 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신 일화도 있다.

1년 가까이 천호동 자취방에서 지내다가 군 입대 영장이 나와 입대하면서 아주머니 소식이 멀어지고 말았다. 제대 후에 천호동에 찾아보았으나 일 년 전 경기도 광주로 이사 가고 없었다. 소식이 영원히 끊어지고 만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갔지만 나는 지금도 문득 대학 자취 시절 저녁 밥상에 막걸리 한잔을 따라 주시던 평양냉면집 아주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이제 내 나이 고희가 멀지 않다. 요사이 막걸리가 새로 유행하고 있는데, 내일쯤 막걸리 한 잔 놓고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더듬어 볼까 한다.

(사학 연금지: 2010년 9월, 통권 286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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