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재밌다] 피터팬 3편
추석입니다.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갑니다.
엄마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자식이 딸린 여자를 말합니다.
아빠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자식이 딸린 남자를 말합니다.
<피터팬>에서 웬디와 피터는 엄마 아빠 놀이를 합니다. 자식들도 있습니다. 남자애들만. 웬디는 아이들 옷을 꿰매주고, 청소하고, 밥을 차려주고, 잠을 재워주고, 약을 먹여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엄마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요즘 같으면 웬디도 나가서 일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이 100년 전쯤 쓰였단 사실을 떠올려봅니다.) 피터팬은 그럼 나가서 돈을 벌어오느냐. 아닙니다. 피터팬, 사실 아빠보다는 아들 역을 더 좋아합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거든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8852/episodes/24999218
이번 3편에서는 피터팬과 웬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역할에 대해 떠들었고. 현실 엄마들은 웬디의 엄마놀이에 불편함을 호소했죠. 그게 어떻게 놀이냐. 피터는 마음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웬디를 섬으로 데려가 엄마 역할을 하게 하는가 공분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실 웬디는 즐겁게 상상의 소꿉놀이를 했을 뿐인데 말이죠.
"엄마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엄마가 되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스스로 밥을 차려 먹을 수 있게 되고. 알아서 주변을 청소하고, 내 옷을 처리합니다. 누가 해주지 않아요. 밥벌이를 한다고 하죠. 엄마 역할을 이런 기초적인 일에 한정 짓는 것은 좀 불편합니다. 하지만 집에서 보통 엄마 혹은 엄마가 고용한 누군가가 하는 일입니다. 누가 저를 위해 해주면 너무 좋더라고요. 아무리 돈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해도, 스스로 해먹고 정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철이 덜 든 것처럼 부족해 보입니다.
하긴. 다 큰 조상님들도 때 되면 후손들로부터 차례상을 대접받으시네요. 꼭 어려야만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누군가 살펴주고, 기다려준다는 사실이 꽤 큰 힘을 갖나 봅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요.
저희 엄마 아빠는 먼 훗날 당신들을 위한 차례상은 됐고, 명절이면 성당에 나가 조상을 위한 미사에 꼭 참여해달라고 하십니다. 제가 조상님들, 혹은 엄마 아빠의 엄마는 아니지만. 어쩐지 엄마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나 봅니다.
피터는 그의 엄마가 창문을 열어 기다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집으로 가지 않고 네버랜드로 갔습니다. 엄마가 기다려줬다면, 피터는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