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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15분 동안 문자 30개 보내 어떻게 하냐 묻는 중학생 아들에게

by ㅈㅑㅇ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등교하는 날 아들은 마음에 드는 초록색 스웨터를 입겠다고 꺼내더군요. 교복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어요. 함께 교복을 맞춰왔지만, 그걸 정말로 입는다고 생각은 못했나 봅니다. 이제 네가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게 아니라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말해주니 충격받은 표정을 지어요.


이 날 아이는 입학식을 교실에서 조촐하게 하고 바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3시 귀가 후 저녁에 만나하는 말, 수업이 너무 길대요. 복도는 좁고, 급식은 교실에서 배식해서 불편한 데다, 양도 너무 조금 준다고 불평합니다. 초등학교하고 너무 다르다고. 그럼요. 처음은 뭐든 쉽지 않죠.


중학생이 된 첫날, 인터넷 제한 시간을 없앴습니다.


그날 하루만요. 초등학교 마지막 방학 때에는 오후 5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인터넷을 열어두었는데, 5시 반 전에 과제를 다 하는 기특한 날도 가-끔 있었습니다.


입학 첫날에는 자유학기 수업 신청도 해야 했고, 학급에서 활용하는 네이버 밴드에도 가입해야 했고, 알리미와 나이스 접속도 확인해야 했지요. 컴시간 앱도 깔고 자질구레하게 해야 할 일들이 꽤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핸드폰을 배제할 수 없는 호모 포노 맞습니다.


아이는 이 날 영어책 2-3페이지 읽기 등 평소 하는 과제를 다 못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니 이런저런 할 일들이 많았고 당연한 건데, 그 밤에는 왜 이렇게 화가 나던지. 밤 11시 넘어서 숙제를 붙잡고 있는 아이에게 오늘은 할 수 없다고 얼른 정리하고 자라고 했습니다. 다정한 말은 아니었죠.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마음이 좀 넓어졌습니다. 저는 호모 심포노입니다.


아이를 토닥거려 깨웁니다. 갓 한 밥에 계란 프라이와 볶음 김치 얹어 아침을 차려줍니다. 참기름도 뿌려줘요. 앗 어제 물통이 가방에서 나오지 않았네요. 보통은 그냥 가거나 스스로 닦아가라고 합니다만. 오늘은 웃으면서 챙겨줍니다. 오늘 하루 힘내라며.


그래도 아침에 일찍 준비를 마쳤으니 기특합니다. 기대를 가져봅니다, 아이가 오늘 과제는 잔소리 실랑이 없이 마무리할지도 모른다고. 오늘은 학원도 거의 없거든요. 저녁 8시 반 영어 줌미팅 30분이 전부예요. 본래 농구하던 수요일이라 스케줄이 텅텅 비어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습니다.


역시나 하는 마음이지만 아직 체념하기엔 이릅니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보고 나서, 조금 재촉을 해봅니다. 오늘 네가 할 일을 완성하고 주말에 충분히 게임 시간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한숨 쉬며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책상에 잠깐 앉는 모습을 본 것도 같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줌 미팅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하라고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속성 있잖아요. 제 아들이니 오죽하겠어요. 자꾸 가기 들어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좀 화가 날락 말락 하지만 내면의 평화 아니, 외면의 평화를 유지합니다. 아들놈, 식사 후에는 음악감상 모드로 들어가네요? 오늘의 공부는 어디로 간 걸까요?! 아이에게 후회할 말 할까 싶어 저녁 먹고 도서관에 왔습니다. 메리 올리버의 책을 보고 있었지요.


영어 줌 미팅 1시간 전 어떻게 할까를 묻는 문자가 옵니다. 줌 미팅에 들어가면 (준비를 안 했으니) 망할 것 같고, 안 들어가면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서 고민되고 불안하다고. 주제가 독일음식인데 이름도 어렵고 힘들다며. 정말 안 들어가도 되냐고. 뿌에에에엥. 빠지고 싶어. 등 문자 폭탄을 날리네요.


줌 미팅 15분 전, 1분 전까지도 계속된 문자 폭탄으로 전화기가 계속 진동음을 냈습니다. 도서관에서 민망했습니다. 이런 마마보이 같은 행태를 봤나. 나고야 여행 3일 차를 떠올리며 끄적이려다, 결국 이런 지루한 개미지옥 같은 말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뻗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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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시죠?!

이렇게 꺼내놓고 나면 좀 나아집니다.


쓰면서 이렇게 저렇게 들여다보면, 아이가 불안했구나 싶어 집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괜히 발 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겠네 싶어요.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하렴", "엄마가 네가 그러는 거 보고 싶지 않아서 나와있는 거다", 이런 말보다는. "불안하구나" 공감해 주고, "차근차근 같이 준비해 보자",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코치해 줬으면 좋았겠다. 이런 생각까지 갈 수 있거든요. 이게 아들의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말인지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이렇게 풀어놓고 나니 제목을 수정하고 싶어 집니다.


제목에 쓴 말을 고칩니다.

"그 정도는 알아서 했으면 좋겠구나"에서

"사랑한다"로.




추신1.

아들은 결국 줌 미팅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갔고 망했다고 문자가 와 있네요. 애썼다. 중학생 아들.


추신2.

아들의 문자메세지 캡처사진은 지웠습니다.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요.


Unsplash의Piotr Wojn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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