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그곳에 마음이 있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by ㅈㅑㅇ


하루하루 담백하게 살고자 합니다.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임하되, 전력을 다해 마음 쏟진 않습니다. 주말에는 이메일이나 원자재 시세를 확인하지 않아요. 대체로 퇴근 후엔 집에 충실한 마음으로 청소하고 밥 먹습니다. 유행에 호들갑 떨기 싫고, 연예인 험담은 재미없어요.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지요.


세상에 취중진담은 없고 취중과담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술 취해서 하는 이야기는 믿지 않습니다. 소설이나 수필로 치면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인물에 가깝고,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의 나티코처럼 마음의 평화를 수호하려 하는 편입니다.


물론 그 상태를 지향할 뿐, 성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대체로 귀찮음과 게으름이 훼방을 놓고, 가끔 증폭되는 감정도 시비를 겁니다. 퇴근 후 집에 쌓여 있는 설거지 더미나 옷더미, 핸드폰 삼매경 아이들을 보면 쉽게 화가 납니다. 그럴 때면 청소, 글쓰기, 산책으로 마음을 다독이거나, 독서의 세계로 휴가를 다녀옵니다. 휘몰아치는 마음에 제 일상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합니다.


그리고 그게 성숙한 것이라 여깁니다. 삶을 현명하고 평화롭게 사는 요령이라고.



에밀리 브론테의 1847년작 <폭풍의 언덕> 주인공들은 아주 다르더라고요.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제멋대로 살더군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요.




캐서린과 힌들리 오누이의 아빠, 언쇼는 여행 갔다가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갑. 자. 기. 가족과 한 마디 상의도 예고도 없이요. 길거리를 헤매는 아이를 도저히 버려둘 수 없어서라는 도의적인 마음이었겠지만, 가족들에겐 날벼락이었죠. 아빠는 장남 힌들리에게 그 여행 선물로 바이올린을 사주기로 했었는데, 난데없이 어떤 아이를 품고 오느라 힌들리의 바이올린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이후 힌들리의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 아빠에 그 아들이라, 아들 히들리도 누구와의 상의나 예고 없이 아내를 데리고 옵니다. 매우 병약하여 곧 죽을 것 같았던 그녀, 역시나 힌들리 2세인 헤어턴 언쇼를 남기고 일찍 죽습니다. 힌들리는 심지가 곧은 인물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피해의식이 심한 편이죠. 그나마 아내가 죽기 전까지는 어른으로서의 명목을 유지하다가 아내가 죽자, 막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빠가 데려왔던 아이, 히스클리프를 학대합니다. 술과 도박에도 빠집니다.


캐서린은 어떻고요. 히스클리프와 둘이서 집안의 사고뭉치로 자라납니다. 예쁜 얼굴이지만 머리는 빗지 않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히스클리프와 뛰어다니고, 어른들한테 혼나는 게 일상입니다. 훗날 힌들리의 압제 속에서 더 엇나가지요. 결혼은 더 가관으로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히스클리프를 교육시킬 돈도 마련하고 자신의 품위도 유지할 수 있게 이웃집 점잖은 에드가 린턴과 결혼합니다. 에드가하고 놀다가 수 틀리면 그의 뺨도 후려칩니다. 에드가도 사랑하고 히스클리프도 사랑한대요. 이건 뭐 <아내가 결혼했다> 1800년대 하드코어 버전입니다.




그런데 만일 히스클리프와 내가 결혼하면 우리 둘 다 거지꼴을 면치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그에 반해 내가 린턴이랑 결혼하면 나는 히스클리프가 성공하도록 도와줄 수 있고, 오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도 있어.





히스클리프는 어땠을까요? 언쇼 집안에 얹혀사는 입장에서 캐서린이 에드가 린턴과 결혼하기 전까지, 그는 캐서린이 하자는 대로 같이 뛰어놀고 어른들한테 혼나고 힌들리의 압제를 묵묵히 참아냅니다. 캐서린이 그가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요. 그러나 캐서린이 자신과 결혼하면 품위가 떨어질 거고 린턴과 결혼할 거라는 말을 듣고 집을 나갑니다. 수년 후 돈이 많아져서 돌아오는데, 그때부터 처절한 복수극을 시작합니다.


캐서린 주변을 맴돌며 에드가 린턴의 여동생 이사벨라와 결혼해 버려요. 이사벨라를 무관심과 폭력으로 대하고 그녀가 반 실성한 채 도망치게 둡니다. 힌들리의 도박과 타락을 부추기고 결국 언쇼 가문의 저택을 본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 집 이름이 워더링 하이츠 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덕입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나뭇가지가 창문을 두드리는 황량한 저택입니다. Wuther는 거센 바람을 나타내는 지역 방언이래요. 워더링 하이츠는 키 작은 관목인 히스가 무성한 황야의 집이죠. 이름으로만 보면 히스클리프와 참 잘 어울리는 장소이긴 합니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가 자신한테 그랬던 것처럼, 힌들리의 어린 아들을 학대하고 교양은 전혀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유를 주전자채로 마셔도 그냥 둡니다.


히스클리프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사벨라와의 짧은 결혼에서 생긴 병약한 아들을 억지로 캐서린의 딸과 결혼시켜요. 왜? 남자 쪽이 집을 상속받으니까, 린턴 가문의 저택도 자기 것이 될 수 있거든요. 린턴 가문은 대체로 병약해서 다들 단명합니다.


그렇게 린턴가의 저택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 Thrushcross Grange, 개똥지빠귀 노니는 정원이 아름다운 린턴가의 장원도, 사실상 히스클리프 소유가 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캐서린은 이 꼴을 보지 않고 먼저 죽습니다. 나중에 귀신으로 되돌아오긴 합니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히스클리프와 며느리 사이의 대화를 볼까요:

히스클리프: "아니, 거기서 또 빈둥거리고 있었군! 다른 사람들은 다 밥값을 하는데, 너는 내 자비심을 뜯어먹고 사는구나! 쓰레기 같은 책은 저리 치워버리고 할 일이나 좀 찾아봐. 항상 눈앞에서 얼쩡대며 나를 성가시게 하는 대가를 언젠가는 치르게 해 주고 말 테다. 이 망할 공주님아, 알아들어?"

히스클리프의 며느리이자 캐서린의 딸, 캐서린: "당신이 그렇게 혀가 닳도록 욕을 한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말고는 하지 않을 거야!"

시아버지 히스클리프는 손을 번쩍 쳐듭니다.

며느리는 그 손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안전한 거리로 휙 물러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감정을 활활 불태웁니다. 감추지도 않아요. 감정의 평정 따위 바람 부는 황야에 던져버린 사람들. 에드가 린턴을 제외하면 예의를 차리는 인물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은 아주 투명합니다. 아무리 소설이고, 이야기라지만, 어쩜 이럴 수가 싶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죄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른이 없어요.


캐서린 언쇼가 에드가 린턴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 날, 가정부 엘런 넬리에게 하는 말은 더 어린아이 같습니다. 확실히 풋내가 나요.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가리켜 '나보다 더 나 자신'이라고 말하거든요.


이런 어리숙한 사람들을 봤나.



"나는 지상으로 돌려보내달라며 가슴이 터지도록 울었어. 그러자 천사들은 크게 화를 내며 나를 워더링 하이츠 꼭대기에 있는 히스가 무성한 황야 한가운데로 내던져버렸지. 나는 그 대목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깨어났어.

다른 이야기는 할 것도 없이 이 이야기만으로도 내 비밀을 알았을 거야. 나는 천국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듯 에드거 린턴과 결혼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야. 저기 저 사악한 인간이 히스클리프를 그렇게 천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나는 이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겠지. 지금으로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내 품위가 떨어지고 말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그리고 넬리, 그건 그 애가 잘생겨서 그런 게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 그리고 린턴의 영혼은 달빛과 번갯불이 다르듯, 혹은 서리와 불꽃이 다르듯 우리의 영혼과는 다르지."



나이 마흔이 넘고 깨달은 게 있다면 '나보다 더 나 자신인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 내가 너를 품을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는 있어도, 네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일 수는 없지요.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면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거나, 감정의 홍수 속에서 질식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 피곤한 이야기 속에서 제 마음에 남겨진 글귀는, 역설적이게도 캐서린이 한 감정 과잉의 어리숙하고 풋내 나는 말들입니다. 에드가 린턴의 청혼을 수락한 것에 대해 영혼이나 마음에서 뭔가 잘못했다는 확신이 든다거나. 히스클리프는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에 떨어질 수 없다거나. 이런 괴상하고 유치한 말들이 잔상을 남깁니다. 왜?






"여기! 그리고 여기!"
캐서린이 한 손으로는 이마를,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치며 대답했어요.
"영혼이 어디 깃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영혼이나 내 마음에서
내가 잘못했다는 확신이 든단 말이야!"



만일 다른 모든 게 사라지고
그 애만 남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하겠지만,
다른 모든 게 남고 그 애가 소멸한다면
온 세상은 완전히 낯선 곳으로
변해 버릴 거야. 나는
이 세상에 속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거야.
린턴을 향한 나의 사랑은
숲 속의 나뭇잎과도 같아.
겨울이 오면 나무가 변하듯
시간이 지나면 변할 거라는 걸
나도 잘 알아.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나의 사랑은
땅 아래 있는 영원한 바위와도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서.

그러니 우리가 떨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캐서린의 과한 발언들이, 나의 평온한 일상에 노크를 합니다. 똑똑 아니고 쾅쾅.


애써 정리해 둔 책상을 뒤집어 없을 기세로 흔들어요. 아름다운 얼굴에 곱실거리는 긴 머리를 흔들면서, 이게 전부일리 없다고, 질문하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 황야에서 방황했다고, 안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당신 일상에 뭔가 분명 부족한 것이 있다고 외칩니다.


왜, 뭐가 부족하다는 걸까요.

아니, 알고 싶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그런 외침일랑 창문 밖 황야에 바람으로

내버려두고 싶습니다…




언젠가.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때. 감정의 홍수 속에서 악수를 거듭했던 때가 분명 있었거든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부여잡고 드라이브 나가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운전석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태풍이 몰아치기 전 여름날, 구름 낀 하늘 아래 바람을 거스르는 강물을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에 집착하고, 규칙을 깨고, 진창에서 진주 같은 진실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명치가 저리는 감정 자체가 궁극의 행복이라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


젊으니까, 어리니까, 가능했던 일이죠. 돌이켜보면 사실 지옥 같은 시간입니다. 에덴이라 착각했는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선악과를 먹고 알게 된 거죠. 부끄러움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에덴으로 돌아갈 일은 없습니다. 입구에 천사 케루빔과 불칼이 지키고 있잖아요.


Unsplash - Deny Hill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던

그때를 재생해 봅니다.


지금껏 잘 이해되지 않던 어느 영화의 대사가 마음에 훅 들어옵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시작 부분에 인용되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요.


제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묻길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입니까? 바람이 흔들리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스승이 답하길 '무릇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나뭇가지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니라' 했다. 사람에, 감정에, 몹시 흔들리던 그때에도,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은 상대도 폭풍 치는 주변도 아니었어요. 나 자신이었네요. 하긴 누가 흔들었겠어요. 내 마음이 흔든 거지. 당시엔 누가 내 옆에 있어도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상황이었든 감정의 휘몰아침을 겪을 타이밍이었을 수 있어요. 바람 부는 황야가 내 안에 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나에게 마음이 있네요.


바람 부는 그곳에 마음이 있었네요. 삶을, 일상을 평화롭고 성숙하게 하루하루 이어 가느라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마음이 있다. 바람 부는 황야가 내 안에 있다. 어리숙하고 풋내 나고 예의도 모르는 내가 있다. 원석처럼 볼품없고 아름답다. 가꿀수도 공유할 수도 없는 그것.


마음이 이렇게나 사적인 것이었나 봅니다.


마음 깊은 곳을 폭풍의 언덕 즉 Wuthering Heights 워더링 하이츠라 치면,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마음의 표면은 Thrushcross Grange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겠죠?! 정원이 아름다운 린턴 저택,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는 워더링 하이츠와 한 쌍입니다.


지금 내 가족과 머무는 일상이 린턴 저택에 비유될 수 있겠지요. 물론 실제로 살고 있는 집은 정원 있는 저택 아닌 아파트에, 하인 없이 셀프 땜빵 위주로 흘러가는 엉망진창 일상이지만서도, 사람들과 연결되는 지점은 분명 가족이네요.


회사도 끼워줄까요? 성숙한 어른으로서 나와 주변을 가꿔야 하는 곳이잖아요. 저택이나 정원은 손 볼 데가 아주 많습니다. 사람들이 드나들도록 배려할 것이 꽤 있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사람 사이의 사람, 인간이 되죠.


지나간 인연들에 괜히 미안해집니다. 내 삶의 문제도 해결책도 당신들이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고 하자니, 그들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네요. 사실 본래도 딱히 버겁진 않았지만, 아주 먼지가 되어 흩어집니다.


너무 늙어버려서 미안- 당신들도 충분히 나이 들었기를, 각자 바람 부는 황야의 집에서 마음 편히 혼자 머무를 수 있기를, 그렇게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꽤 행복합니다. 바람 부는 황야도, 잘 가꾼 정원이 딸린 저택과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서, 적어도 지금은, 꽤 행복합니다.



Unsplash - Joran Quinten. - Heath




추신. 스포일러.

<폭풍의 언덕>은 어마무시한 막장 드라마이지만, 마지막에는 극적 화해를 이룹니다. 히스클리프는 죽은 후에 캐서린 언쇼와 맺어지고, 힌들리의 아들과 캐서린의 딸이 맺어지거든요. 에드가 린턴은 무덤에 누운 채 의문의 일패. 사촌끼리 결혼하는 것은 좀 이해 안 되지만, 암튼 두 저택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한 집이 됩니다. 한 집이 맞지요. 마음의 속과 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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