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변론 읽기 Day 25, 26, 27
소크라테스 <변론>은 마무리로 넘어갑니다.
당시 재판은 하루 만에 결론이 났다고 합니다. 원고와 피고 양측이 입장을 이야기한 후 최대 500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유/무죄 표결을 하고(소크라테스의 법정도 대략 500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측이 모두 피고 즉 죄인의 형벌을 제안하여, 당일 안에 형까지 확정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형 집행도 보통 며칠 안에 이뤄졌다고 해요. 속전속결.
그는 막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유죄와 무죄의 표차는 단 30표. 사회 분위기상 유죄가 확실시되었던 재판 치고는 의외의 결과입니다. 그래도 유죄는 유죄. 이제 형벌을 정할 차례입니다. 멜레토스 측은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스스로의 형벌을 제시해야 합니다. 사형보단 약한 걸로 해야겠죠.
주변 사람들이 제안한 것은 벌금형이나 추방형이었습니다. 당시 법정 배심원들이 예상한 것도 비슷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평생 나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돌보기보다 아테네 사람들의 미덕과 지혜를 찾아주는 봉사를 해왔으니 분명 좋은 것을 받아야 한다'며 '아테네 시청사에서의 무료식사 (maintenance in the Prytaneum)'를 제안했습니다. 아니, 요구했습니다.
I went, and sought to persuade everyman among you that he must look into himself, and seek virtue and wisdom....(중략)...
What would be a reward suitable to a poor man who is your benefactor, and who desires leisure that he may instruct you? There can be no reward so fitting as maintenance in the Prytaneum.
사형과 식사 사이의 간극이 오묘합니다. 배심원들이 얼마나 어이없었을까요. 몇몇은 분명 웃었고, 대부분은 화를 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웃었습니다. 기가 막히네 하면서요.
추방형에 대해서도 그는 매우 회의적이었어요. 당시 평균수명으로 나이가 지긋했기에 ‘뭔 영화를 누리겠다고’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아테네 사람들도 자신을 못 봐주는데 타지인들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거니와. 거기서도 젊은이들이 따를 테고 문제는 반복될 거란 거죠. 일리 있어요.
마지막에 플라톤, 크리톤 등 주변인들의 강권에 따라 소정의 벌금형을 제안하긴 했습니다만. 그는 돈을 벌지 않았기에 많은 돈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낼 수 있는 만큼, 주변인들이 보증 서줄 수 있는 만큼만 제안합니다. 이래 저래 배심원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괘씸죄'가 추가 적용됐을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눈물로 배심원들 감성에 호소했다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선고를 받고 소크라테스는 '이제 나이 들어 곧 죽을 사람을 굳이 사형에 처한다'라고 한 마디 합니다만. 그렇다고 읍소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여전히 죽음이 정말 나쁜 일인지 본인은 알지 못한다며. 미지의 것을 피하려고, 스스로 옳다고 믿고 행해온 바를 뒤집어 자기모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사형은 확실하고 만찬은 멀어졌습니다.
프뤼타네이온은 난로와 불의 여신 헤스티아에게 헌정된 건물입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동쪽 비탈에 있었다 합니다. 헤스티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거의 유일한 신이 아닌가 싶어요. 헤스티아의 보살핌 속에서 불에 익힌 따뜻한 음식을 매 끼니 대접받는 소크라테스를 상상해 봅니다.
(음식을 불에 익혀먹으면서 소화기관에 쓸 열량을 두뇌활동에 쓰게 됐다는 학설도 있으니, 철학은 화덕에서 시작했다고 비약해 볼까요. 철학의 토대를 세웠다는 소크라테스에게 헤스티아의 품을 허락하지 않은 결정은 이치에 맞지 않네요. 웃자고 하는 억지 이야기입니다.)
당시 프뤼타네이온에서는 국빈급 손님에 대한 식사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천병희 선생님 번역본 각주에 올림피아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선수들, 도시의 저명인사 가족들, 외국 사절들이 그 대상이었다고 하네요. 학교나 복지시설에서 저렴하게 제공하는 급식 느낌보다는, 국빈급 만찬이었던 것이죠.
주요 메뉴는 뭐였을까요?
소크라테스가 만약 만찬을 대접받았다면 메뉴가 뭐였을까요? 지금의 그리스 식당을 생각하면 될까요? 올리브, 곡물 시리얼, 염소젖치즈, 요구르트, 와인, 양고기와 채소 꼬치구이인 수블라끼?
조만간 그리스 식당에 가야겠습니다.
소크라테스 책을 식탁에 놓아주고 싶네요.
배부른 소크라테스 시늉이라도 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