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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나발 Oct 04. 2023

낭만이 필요한 이유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최근에 재미있게 본 낭만닥터 김사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의사인데 바바리를 즐겨 입은 김사부는 가슴 설레는 대사를 읊어댄다. ‘가끔은 미치지 않고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더라고요. 그걸 사부님은 낭만이라고 하셨고요.’ 개츠비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 이러한 ‘낭만’이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한 여자에게 빠져 모든 것을 걸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되는 개츠비는 정말 위대해 보인다. 5년 전 사랑했던 데이지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노력하는 개츠비를 보면 너무 순수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데이트 비용도 각자내고, 모든 것을 분담해서 공정함으로 위장된 연인들을 보면 이러한 개츠비가 이해가 되지 않고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스토리나 구성도 단순한 것 같은 이 책이 미국에서 지금까지 오랫동안 인정받고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는 1920년대 1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새롭게 강대국이 되어가는 미국의 모습을 개츠비의 ‘무모한 낙관주의’로 묘사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주인공과 작가인 피츠제럴드의 결혼생활과 삶에 닮은 부분이 많아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외부적인 것도 시대적인 것도 아닌 문체나 문장들에서 나타나는 환상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이 낭만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서 그런 때가 있었지... 하는 회상에 젖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모임에서 자신의 아들이 개츠비처럼 철부지 여자를 사랑해서 주기만 할까 봐 걱정된다면서 최근 ‘퐁퐁남’이라는 신조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요즘은 결혼해서 남편이 부인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해서 설거지부터 모든 집안일까지 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거다. 그래서 아들을 둔 엄마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아들이 있어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돌아보면 감정 조절이 안되어 마음이 상하자 손해 보는 감정 줄여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무언가를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손해를 보고 감정을 낭비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사람은 딱 준 만큼 받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언젠가는 그 사랑을 주게 되어있다. 사랑을 줄 생각보다 받을 생각만 하면 상대방도 그럴 것이고 억울함과 손해 본다는 마음 때문에 사랑해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개츠비가 왜 살아야 하는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기에 더 순수하고 멋있어 보였던 것이 아닐까? 물론 사랑을 물질적인 면에서 채우려 하자 결국 배신과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개츠비의 노력이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는 유치환 시인의 시처럼 개츠비의 위대함은 주는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안의 낭만이 많이 약해져 있기는 하지만 돌아보면 나도 한 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노력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 믿고, 내가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여유도 없고, 사는 게 힘든데 웬 낭만 타령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낭만이 있을 때 우리는 힘들어도 힘이 들지 않았고, 진정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적이 있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이 맛이 있듯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다 행복하지 않다. 삶이 힘들 때 가슴속에 게츠비처럼 잡히지 않는 초록 불빛을 잊지 않고 갈 수 있다면 그 여정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삶을 더 재밌고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면 이 가을이 지나기 전에 내게 남아있는 낭만을 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개츠비는 오직 저 초록색 불빛만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가슴 설레는 미래를, 그것은 이제 우리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무슨 문제인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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