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권조 Aug 31. 2021

오늘의 성취 : 초콜릿

어쩌면 터키 아이스크림

무언가 이루고 싶을 때가 있다. 올림픽 출전과 세계 신기록 경신과 같이 거창한 건 아니다. 박수갈채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가슴을 도닥여 주는 수준의 성공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성취감은 필요하니까.


그런 이유로 내가 고른 첫 번째 목표는 초콜릿 만들기였다. 시판되는 초콜릿을 모아 중탕으로 녹이고 굳혀 모양을 만드는 그런 초콜릿은 아니다. 우유에서부터 출발하는 초콜릿이다. 젖소에게서 우유를 짜고 사탕수수를 재배해 설탕을 만든다면 대단하겠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도전은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다.


만드는 방법은 유튜브 채널 '집밥요리 Home Cooking'의 '[재료 4가지] 우유로 간단하게 초콜릿 만드는 방법'을 참고했다. 그러니 자세한 용량 등은 소개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서 당신도 초콜릿에 도전하고 싶다면, 아래 영상을 참고하면 좋겠다.

[재료 4가지] 우유로 간단하게 초콜릿 만드는 방법

초콜릿 제작에 필요한 4가지 재료 : 우유, 설탕, 버터, 코코아 파우더

생활감 넘치는 재료를 준비했다. 집에 없던 코코아 파우더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며칠이 걸렸다. 집에 계량컵이 있어 다행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샀을 뿐인데 곳곳에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우선 우유에 설탕을 풀어 끓인다. 여기까지는 재미있었다. 예상을 넘는 다량의 설탕을 붓는 게 즐거웠고 냄비에서 우유를 젓는 과정도 수월했다.

거품이 넘치도록 오르면 불을 줄였다가 다시 키우길 반복

거품이 오르면서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터까지 넣은 우유에 열을 계속 가하면 색이 변하고 걸쭉해진다는데 내 앞에서는 도통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의자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세상에, 우유를 끓이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하다니!


뒤늦게 생각하기로는, 불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강한 열이 우유와 버터의 결합을 오히려 방해하지 않았을까.


여하간 싱숭생숭한 마음에 불을 약하게 줄이고 침대에 누웠다.

보기만 해도 끈적끈적

묘한 패배감에 멍하니 있다 '초콜릿을 만드는 중이었지?' 하고 돌아가니 색이 변했다. 이건 분명 우유가 아니다. 마음이 들뜨고 다시 초콜릿 만들기가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제 이걸 볼에 놓고 카카오 가루를 뿌린다. 이 과정도 즐겁다. 체를 통통 치는데 손에 가루가 다 묻는데도 왜인지 싫지가 않다.

카카오 가루를 뿌리고 섞으면 반죽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예상처럼 잘 섞이지가 않는다. 영상으로 보기에는 쉬웠는데. 손가락에 쥐가 날 것만 같아 멈추기를 여러 번. 노랗게 변했을 때 약간의 탄내를 맡았는데, 아마 침대에서 절망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 모양이다.


초콜릿을 먹겠다는 마음과, 이미 저질렀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양손에 하나씩 잡는다. 중간에 견디다 못해 우유를 조금 섞고 살짝 찍어서 맛을 보았다. 음, 맛이 없다.

목표가 터키 아이스크림 만들기였다면 이미 성공

초콜릿이라 우기면 열 명 중 한두 명은 상냥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일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이제 이걸 납작하게 펼쳐서 식힌다.

보이차 : 우유에 설탕, 버터를 넣고 카카오 가루와 섞으면 만들 수 있다

뭉친 반죽을 식히는 과정이 가장 즐거웠다. 다시 생각해도 그렇다. 식힌 반죽은 양을 나누어 자르고 동글동글 굴려서 또 겉에 코코아 가루를 묻힌다. 그러면 드디어 초콜릿 완성이다.

중요한 건 보정 필터와 귀여운 우유 컵

만들고 보니 크기가 제각각이다. 초콜릿보다는 팥죽에 들어가는 새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맛만 좋으면 그만... 일 것인데 맛은 있다. 맛은 분명 있다.


그런데 씹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것 역시 우유를 지나치게 끓인 탓이 아닐까 싶다. 초콜릿보다는 캐러멜에 가까운 게 만들어졌다.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터키 아이스크림 30%, 캐러멜 30%, 초콜릿 30%, 새알 10% 정도가 나오겠다.


그런 고로 오늘의 도전... 실패!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성취감과는 만났다. 게다가 '액체와 가루뿐 아니라 그사이 끈적한 것을 섞어야 반죽이 된다'는 사소하고도 검증되지 않은 원리도 얻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