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라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잘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면 역시 잘하는 사람이 좋겠다. 소질이 있으나 좋아하지 않는다니 괜히 멋있다.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나는 늘 축구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청소년의 체육 계급 사회에서는 상위 계급일수록 공격수가 되고 하위 계급일수록 골대를 지킨다. 나는 늘 수비수였다. 게다가 중앙 수비를 맡기기에는 불안함이 있었는지 오른쪽이나 왼쪽 수비수로 있는 날이 많았다.
나는 살아생전에 축구를 하며 골을 넣은 적이 딱 두 번 있다. 그러니 그 순간들도 잘 기억한다. 심지어 한 번은 헤딩이었다. 다만, 그때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부끄러움이 들어 내 골을 주장하지 못했다. 그러니 비공식 중에서도 비공식 기록인 셈이다.
또 한 번은 제각기 11명이 뛰는 축구가 아니라 풋살이었다. 축구에 비해 골이 여럿 터지는 경기였으니 이 역시 축구를 하며 골을 넣었다고 하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번 목표는 축구에서 골을 넣기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고 이제 와서 골을 넣고 싶다는 마음에 조기 축구회에 가입하거나 친구를 불러 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직접 몸을 부딪치는 축구에서 골을 넣는 순간도 기대하면서.
가끔 하던 게임 피파 21에서 선수를 한 명 만들었다. 나와 비슷한 체격의 오른쪽 수비수.
이 게임에서는 전에 없던 선수를 직접 만들어 프로 세계에서 조작할 수 있다. 최대한 수준이 낮은 경기를 원했기에 잉글랜드 4부 리그의 팀을 골랐다.
이래저래 설정하니 점심시간에 느끼던 학교 축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게임에서는 선수를 생성한 뒤로 각종 훈련을 통해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축구 실력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가볍게 무시하고 바로 실전에 돌입한다.
가끔 공이 오면 무언가 발재간을 부리려다 빼앗기기 일쑤다. 달리기는 느리고 공을 섬세하게 다루는 능력도 없다. 이러면 성취감을 느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정신적인 타격을 주는 과정일 뿐이지 않은가?
평소 이 게임을 하면서는 재빠른 공격수를 주로 조작했다. 호쾌하게 움직이면서 수비진을 무너뜨리고 골을 넣는 과정이 꽤나 즐거웠는데, 수비수를 하며 느끼는 감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다들 어쩜 그리 빠르게 내 옆을 지나가는지 반칙으로 넘어뜨리고 싶어도 닿질 않는다.
몇 번인가 슛을 시도했으나 골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사이에 점수차는 조금씩 조금씩 벌어져 끝내 7-1이 되고 말았다.
그런 고로... 오늘의 도전도 실패! 그렇지만 직접 움직여 축구를 할 때에는 시도조차 한 적이 없었던 크로스에 몇 번인가 성공했다. 헤딩도 몇 번인가 성공했고.
골은 넣지 못했지만, 제법 슛으로 보이는 슛도 몇 번인가 성공했다. 대단한 능력으로 종횡무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그야말로 대단치 못한 수준으로 움직여 이룬 결과라 괜한 성취감을 얻었다. 응원하는 마음은 덤.
언젠가는 직접 달려서 골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전후반 45분이라면 조금은 더 가능성이 있을지도?